• 최종편집 2024-03-28(목)
 

이희문은 '국악계의 이단아'로 불린다. 우리 소리에 외국 음악 장르를 뒤섞어 독특한 무대를 선보이기 때문이다. 27살의 나이로 뒤늦게 '민요'에 입문 했지만 빠르게 두각을 나타냈다. 경기민요를 이수했고 출전한 대회에서 온갖 상을 휩쓰는가 하면 2017년에는 프로젝트 그룹 '씽씽'으로 세계적인 관심을 받았다.


이희문 프로필


국내보다 국외에서 먼저 반응했다. '민요'라는 구성진 가락을 록, 댄스와 결합해 펼쳐냈고 무엇보다 차림이 예사롭지 않았다. 형형색색의 가발과 짙은 화장 그리고 구두. 이를 두고 그는 "제2의 자아를 장착"한다고 말했다.



 
그의 어머니는 한 시대를 풍미한 소리꾼 고주랑이다. 하지만 그는 어려서 대중 가수를 꿈꿨다. 마돈나를 듣고 마이클 잭슨을 팠으며 민해경의 파워풀한 목소리에 열광했다. 기획사에 들어가 혹한의 연습생 시절을 견디기도 했다. 미래는 뜻대로 흐르지 않았다. 군대를 다녀와 일본으로 도피성 유학을 떠났고 음악의 대안으로 뮤직비디오 감독을 택했다. 실제로 몇 작품에서 조감독으로 활약하며 음악에 대한 열정을 대신 채웠다. 그렇게 먼 길을 돌아 국악인 이춘희 선생님의 제안으로 다시 소리를 시작하던 때를 그는 "더 이상 갈 데도, 더 이상 도망칠 곳도 없었다. 절박했다"고 회상한다.


민요는 내 역사이기도, 주눅 들고 싶진 않다
 
- 며칠 전 공연을 끝낸 걸로 안다. 컨디션은 괜찮나?
 "이 시국에 당장 어제도 곱창전골(홍대의 라이브 클럽)에서 공연을 하고 왔다. 사람이 없을 것 같아 취소하려 했는데 단골손님들이 꽤 자리를 채워줬다. 얼마 전까지 2016년부터 매년 진행 중인 경기 민요 무대에 서기도 했다. 새해부터 바쁘다."
 
- 경기 민요 무대는 무엇인가?
 "어머니가 소리를 하셨기 때문에 내 역사를 이야기 하다보면 그 중심에 민요가 자연스럽게 자리한다. 지금은 민요, 특히 내가 전공한 '경기 민요'에 대한 관심이 많이 적어지지 않았나. 개인적인 역사와 민요의 역사를 정리하고 싶었다. 2016년 공연이 시작이었고 이번에는 지난 3년간 진행했던 무대를 종합하는 느낌으로 일주일간 막을 올렸다. 민요 아카이브 정도로 보면 된다."
 
- 매진됐다고 들었다.
 "매진 됐'었'다. (웃음) 그래도 생각보다 빈 자리가 많진 않았다. 한 명만 와도 준비한 시리즈를 완주하는 게 목표였기 때문에 그대로 밀고 나갔는데 잘한 일 같다. 코로나를 뚫고 와준 거 아닌가. 어찌나 고맙던지 한 회도 빼놓지 않고 감사의 큰 절을 올렸다."


- 주 관객층은 어떻게 되나?
 "중년 여성분들이 제일 많다. 요즘에는 남성분들도 꽤 오시고. 20, 30대는 간혹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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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서 주목한 '우리 민요'... "주눅들지 않는 장르 만들고파" - 국악계의 이단아 이희문의 대중 성공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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