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5회 방일영국악상 송방송
유신(維新) 말기였던 1977년 캐나다 맥길대 음대 교수로 있던 그는 단호했다. "돌아가겠어, 조국으로." 교수도 아닌, 국립국악원장이란 공직으로 귀국을 결정했을 때 주위에선 '정신 나간 사람'이라고 혀를 찼다.
김포공항을 빠져나올 때 그가 보물처럼 가슴팍에 품었던 건 국악용어를 빼곡히 채워넣은 낱말 카드 수백 장. "이걸로 우리 음악의 용어사전을 만들겠다"고 다짐했다. 그 후 '한국음악학'은 그가 "아내도, 자녀도 한쪽으로 밀쳐둔 채 모든 걸 바친 인생 최대의 과제"였다. 제25회 방일영국악상 수상자인 송방송(76) 한국예술종합학교 명예교수 얘기다.
방일영국악상이 음악이론 학자에게 주어진 것은 만당 이혜구(2회), 이보형(16회)에 이어 세 번째다.
송방송은 1960년대 말 국악계 인사로서는 드물게 선진 음악학의 정수(精髓)를 배워 국내 음악학의 학문적 기반을 다졌다. 국립국악원장, 문화재 전문위원, 한예종 교수를 지내며 우리 음악의 뿌리를 집대성한 산증인으로 꼽힌다.
1991년 펴낸 저서 '조선왕조실록 음악기사 총색인'은 후배 연구자들에게 든든한 발판이 됐다. 조선 세종 때 궁중음악 연주를 담당했던 아악서(雅樂署)와 전악서(典樂署)의 체제와 사회적 신분을 살피고 악공·악생들의 봉록 제도 등을 고찰했다.
1994년부터 방일영 국악상을 주최해온 방일영문화재단은 평생 국악 발전에 기여해온 공로를 바탕으로 하되 최근 3년 실적을 중점적으로 평가해 현재 정력적으로 공연 활동을 펼치는 국악인을 수상자로 뽑고 있다.
역대 수상자
만정 김소희(제1회), 만당 이혜구(제2회), 박동진(제3회), 심소 김천흥(제4회), 관제 성경린(제5회), 만당 오복녀(제6회), 양암 정광수(제7회), 석암 정경태(제8회), 낭월 이은관(제9회), 황병기(제10회), 묵계월(제11회), 이생강(제12회), 이은주(제13회), 오정숙(제14회), 정철호(제15회), 이보형(제16회), 박송희(제17회), 정재국(제18회), 성우향(제19회), 안숙선(제20회), 이춘희(제21회), 김영재(제22회), 김덕수(제23회), 이재숙(제24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