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 최종민교수 (철학박사, 국립극장예술진흥회 회장, 동국대문화예술대학원 교수)
언젠가 어느 학생이 나에게 질문을 하였다. “종교와 미신은 어떻게 다릅니까?”하는 것이었다. 평소에 무척 진지하게 공부하는 학생의 질문이라 나는 종교와 미신이 어떻게 다를까 하는 문제를 한참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학생의 대답이 걸작이었다. “내가 믿으면 종교이고 남이 믿으면 미신이래요”하는 것이었다. 나와 그 학생은 깔깔 웃으면서 농담 비슷하게 지나쳐 버린 적이 있다. 내가 믿는 것은 긍정적으로 생각하니까 종교가 되지만 남이 믿는 것은 배타적으로 생각하니까 미신이 된다는 것인데 이것은 농담으로 하는 얘기여야지 실제로 그렇게 생각한다면 올바른 생각이라고 할 수 없다.
종교의 범주에는 여러 가지 종교가 다 들어가는 것이지 어느 특정 종교만 들어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나라 몇 몇 대학의 종교음악과를 보면 또 다른 생각을 하지 않을 수가 없다. 학과의 명칭은 종교음악과인데 가르치는 내용은 기독교음악이기 때문이다. 기독교 선교사들이 세운 학교라는 것을 전제로 하면 이해할 수 있는 것이기는 하다. 그렇지만 “종교음악은 곧 기독교음악이다”라는 생각이 팽배해져서는 곤란하다는 말이다.
우리 나라에는 많은 종교가 공존하고 있다. 무당들이 주재하는 무속종교(巫俗宗敎) 즉 무교(巫敎)가 있고 불교가 있고 유교가 있고 천주교나 개신교가 있다. 이 중에서 무교는 우리 고유의 종교이지만 나머지는 다른 지역으로부터 들어온 외래 종교이다. 삼국시대에 들어 온 불교․도교․유교등은 기존의 우리종교와 적당히 습합하면서 한국화되어 우리의 외래종교로 자리를 잡아 오랜 세월동안 우리 나라의 종교로서 큰 역할을 담당하게 된다. 그런데 도교는 의식이 끊어져서 이제는 종교로서의 기능이 없어진 것이나 마찬가지이지만 나머지 불교나 유교와 무속종교는 큰 마찰 없이 잘 공존 해 온 셈이다.
그러다가 조선조에 천주교가 들어오고 조선조말에 개신교가 들어오고 현대에 와서 회교등이 들어오고 하여 지금은 동서고금의 종교가 공존하는 한국의 종교현황이 되었다. 이처럼 많은 종교가 공존할 수 있는 것은 우리네의 종교심성이 그 만큼 많은 것을 포용할 수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다른 나라에서는 종교가 다르면 전쟁도 불사한다는데 우리는 한 집안에 살면서 할머니는 무당에게 묻고 어머니는 절에 다니고 아버지는 향교에 나가고 누나는 성당에 동생은 교회에 다녀도 아무런 마찰 없이 지내는 경우가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실제로 한 집안의 귀한 아들이 대학진학을 앞두었을 때에는 그런식으로 식구마다 자기가 다니는 종교에 가서 그 수험생이 소원하는 대학에 진학하도록 비는 일이 얼마든지 있는 것이다.
종교는 무슨 종교이든지 의식에서는 음악을 사용하게 되어있다. 우리 나라사람들이 종교심성이 풍부하여 많은 종교를 잘 발전시켰다는 것은 곧 많은 종교음악을 잘 발달시켰다는 얘기도 된다. 더구나 우리는 음악을 잘 하는 민족이기 때문데 많은 종류의 훌륭한 한국적 종교음악을 수준 높게 발달시켰다. 무속종교라고 하는 굿을 할 때 하는 음악만해도 각 지방에 많은 양이 전승되며 수준 높게 발달되어 있다. 엄청난 양의 무가(巫歌)도 훌륭한 음악이지만 무가나 무무(巫舞)에 반주하는 기악도 대단히 중요한 합주음악이다.
서울지역의 염불․타령․굿거리․당악같은 기악은 지금도 각종 민속무용의 반주음악으로 사용되는 음악이고 경기 도당굿에서 사용하던 시나위 음악도 도살풀이나 태평무의 반주음악으로 쓰이는 귀중한 기악이다. 전라도 굿의 무가나 반주음악도 훌륭한 민속음악의 장르가 되어 있다. 그런데 굿 음악의 대부분은 순 한국음악어법으로 되어 있어서 더욱 소중한 우리의 음악유산이다.
불교의 음악 역시 엄청난 양의 범패(梵唄)와 기악등이 전승되고 있다. 불교음악이 한국에 들어 온 것은 신라 때인데 그 당시에 이미 고풍(古風)․당풍(唐風)․향풍(鄕風)이 있었다고 한다. 말하자면 인도음악 스타일로 된 고풍과 중국음악 스타일로 된 당풍과 한국음악 스타일로 된 향풍이 있었다는 것이다. 지금의 범패를 분석한 한만영씨도 한국의 범패에는 인도음악 스타일이 많이 남아 있는 짓소리와 가사가 중국의 정형시로 된 홋소리와 가사와 곡조가 한국 스타일로 된 화청등이 있다고 한 적이 있다.
현재의 불교음악은 중국으로부터 들어 온 후 계속 한국화를 거듭해온 짓소리나 홋소리 외에 순 한국식으로 발달한 화청도 있다는 것이다. 유교 음악 역시 중국으로부터 받아 들였을 것으로 본다. 그러나 조선조 세종 때에는 유교음악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문묘제례악과 종묘제례악을 모두 한국에서 작곡했는데 문묘제례악은 중국음악어법으로 작곡하고 종묘제례악은 한국음악어법으로 작곡하였다. 유교음악도 한국식 유교음악이 있는 것이다.
모든 종교는 한국에 와서 한국의 심성에 맞게 변형되면서 한국의 종교로 발전한다고 보아야 한다. 종교음악도 마찬가지로 외래종교와 함께 외국음악이 한국에 들어오지만 시간이 지나면 한국화 하기도 하고 종래에는 한국음악어법의 한국식 종교음악을 발달시키게 된다. 불교음악이 그랬고 유교음악이 그랬다. 그런데 현재 한국의 기독교 음악은 어떤가?. 우리 나라에 선교사로 왔던 미국사람들은 바이블과 함께 그들의 종교음악도 가지고 와서 선교를 하였다.
예수만 전한 것이 아니라 그들의 음악문화도 함께 전파하였다. 그런데 지금 우리 나라의 선교사들이 외국에 나가 선교할 때에는 어떻게 하고 있는가?. 우리의 기독교 음악이 없기 때문에 우리의 음악문화를 전파하지 못하고 있다. 미국선교사의 심부름꾼과 같은 역할 밖에 못하는 것이다. 왜 그렇게 되었을까?. 우리 나라 각 교회 지도부의 그릇된 종교음악관 때문이다.
저들은 선교사들이 선교할 때 사용한 그 음악이 기독교 음악의 표준인줄 알고 있다. 그래서 노래 곡조와 가사가 전혀 안 맞는 그 불편한 찬송가를 부르면서도 우리 가사에 맞는 한국식 찬송가를 만들 생각을 못하는 것이다. 이런 편견과 잘못된 생각 때문에 한국의 기독음악은 외국음악에 머물고 한국식 기독교 음악이 발달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래서 종교음악이라는 용어도 왜곡되게 사용하고 있고 외국 선교에서도 우리음악을 전파하지 못하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