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0-10-24(토)
 


3월 19일 국악방송 라디오 프로그램 <음악의 교차로>(22:00~24:00)를 통해 1942년 발표작 <애국아리랑> 음원 공개.. 일본군과 대동아 평화 기원

 

아리랑과 민족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라는 생각, 오늘날은 거의 상식이 되어 있다. 하지만 아리랑이 처음부터 그런 민족의 노래였던 것은 물론 아니다. 특정 지역에서 일상의 노래로 불리던 지역 민요 아리랑이 한반도 곳곳으로 퍼지기 시작한 때는 19세기 후반부터였고, 대중성을 갖춘 아리랑이 민족성까지 품게 된 때는 1920년대 이후였다.


1945년까지 식민지 상황을 견디고 이겨내는 데에 아리랑이 민족의 노래로서 기여한 바가 있음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그 사실을 지나치게 강조하다 보면 때로 당대 상황을 왜곡하거나 제대로 살피지 못하는 부작용이 나타나기도 한다. 예컨대, 아리랑이 자유롭게 듣거나 부를 수 없는 금지곡이었을 거라 믿는 많은 이들의 생각과 달리, 당시 음반이나 방송 등 매체에서 아리랑에 제약이 가해진 흔적은 그리 많이 확인되지 않는다. 그리고, 민족의 노래 이미지와는 전혀 다른, 오히려 그에 반하는 내용이 담긴 특이 아리랑도 소수이지만 분명 존재했다.


1942년 7월 무렵 음반으로 발매된 신민요 <애국 아리랑>. 다른 때도 아닌 1942년에 애국이라는 문제적 단어가 등장하는 것이 이미 심상치가 않다. 음반 딱지에 김다인이 작사했다고만 적혀 있을 뿐 작곡자 이름이 없는 것으로 보아, 기존 아리랑 가락에 가사만 애국적인 내용으로 새로 붙였을 것이라 짐작되었던 곡이다. 의혹은 있었지만 자료가 제대로 공개되지 않아 구체적인 판단이 어려웠던 <애국 아리랑>이 결국 이번에 그 실체를 드러내게 되었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가 여기로구려
서백리아 변두리에 밤새는 님아/ ○○의 ○○ 것은 ○○ 달이냐
○○바늘에다 명주실을 끼워/ 사랑 애자 나라 국자 애국의 글자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가 여기로구려
옥으로 부서지려 휘○는 ○○/ 장고봉 상상봉에 대화송 되겠소
총대 메고 배낭 지고 넘는 고개는/ 대동아 새 동포에 평화가 온다


간단한 피리 반주에 맞춰 <긴아리랑>처럼 느릿하게 부르는 곡조이지만, 널리 알려진 그 어떤 아리랑과도 다른 독특한 가락이기도 하다. 부분적으로 명확하지 않은 대목도 있으나, 채록된 가사만으로도 노래의 대강을 살피는 데에는 어려움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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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랑 arirang@sori.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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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록 반동적인 아리랑이라니.. 그 이름도 '애국 아리랑' 음원 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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