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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악정보 검색결과

  • 충남 서천군, 문화의 달 맞아 10월 16일 중고제 판소리 시연회
    서천문화원은 16일 조선 5대 명창으로 손꼽히는 이동백, 김창룡 선생의 여운을 느낄 수 있는 '중고제 판소리' 시연회를 개최한다.문화체육관광부와 충남도, 서천군이 주최하는 이번 시연회는 조선 5대 명창으로 이름을 떨친 서천태생 이동백, 김창룡 선생의 '중고제 판소리' 흔적을 찾을 수 있는 음원이 소개될 예정이어서 관심을 모으고 있다.또 이애리 심화영류 '승무'와 정규헌 이야기 송서 '아리랑', 이은우 심화영제 판소리 춘향가 중 '쑥대머리', 박명언 판소리 흥보가 중 '첫째박 타는 데', '돈타령' 등이 시연돼 흥미를 더할 예정이다. 군 관계자는 "중고제는 지역적으로 충정 경기 일대를 중심으로 한 판소리로 1940년대까지 오랜 시대를 풍미했던 고졸하고 담백한 판소리"라며 "문화의 달을 맞아 서천에서 중고제 판소리가 시연되는 만큼 많은 분들의 관심과 참여해 줄 것"을 당부했다. ☞ 서천문화원 홈페이지 해당기사 원문 보기 --> http://www.cc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729683 강산제(岡上制)란 서편제(西便制) 자체의 지나치게 애절한 면은 지양하고, 동편제(東便制)의 웅건함과 중고제의 분명함을 적절하게 배합힌 중도의 판소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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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10-16
  • 판소리에 영어자막, 외국인도 얼~쑤~
    ▲ 9월 16일 전주 한옥마을 학인당에서 박복희 명창(가운데)과 군산대 최동현 교수(왼쪽), 영국인 음악전문지 편집자 사이먼 브라이튼이 판소리 심청가의 자막을 보면서 얘기를 나누고 있다. [프리랜서 오종찬] 교수 셋 판소리 세계화 의기투합 “화초장, 화초장, 화초장 하나를 얻었네/ 어따, 이것이 무엇인고?/ 구들장, 방장, 천장, 뗏장, 고초장/ 옳다! 고초장이다.”9월 16일 오후 4시 세계소리축제가 열린 전북 전주시 한옥마을의 학인당. 무대 위에선 채수정 명창이 판소리 ‘흥보가’ 중 놀부가 흥부의 화초장을 빼앗아 가는 장면을 열창했다. 판소리 다섯 바탕 중에서도 가장 해학적인 대목이라 객석에선 웃음보가 터졌다. 박장대소를 참지 못한 관객 가운데엔 외국인 10여 명의 모습도 눈에 띄었다. 한국 사람도 온전히 알아듣기 힘든 판소리를 외국인들이 웃고 즐길 수 있었던 건 판소리 사설(노랫말)을 번역한 영문 자막이 흘러나온 덕분이다.화초장 대목은 이렇게 번역됐다. “Flower Wardrobe, Flower Wardrobe, I got Flower Wardrobe/ Gee, what is this?/ Stone, Curtain, Roof, Grass Wardrobe, Pepper Wardrobe/ Right! Pepper Wardrobe.” 사흘 연속 공연장에 왔다는 영국 음악잡지 ‘송라인즈’의 편집자 사이먼 브라이튼은 “지난해까지는 판소리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분위기만 대충 파악하는 정도였는데 노래에 맞춰 영문 자막이 나오니 비로소 제대로 판소리를 감상하는 느낌이 든다”고 말했다. 올해로 12회째를 맞은 세계소리축제에서는 춘향가·심청가·흥보가·수궁가·적벽가의 사설을 완역해 영문 자막과 함께 공연했다. 소리꾼 혼자서 창과 몸짓으로 이야기를 전달하는 ‘1인 오페라’인 판소리는 순수 우리말과 옛 문어체·한문 표현이 많아 해외 진출에 걸림돌이 된다는 지적을 받아 왔다. 지금까지 영문 자막이 부분적으로 시연된 적은 있지만 다섯 바탕 전체가 선보인 것은 처음이다. 해당기사 더 보기 -> https://news.joins.com/article/9353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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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09-18
  • 세계의 음악이 된 판소리
    판소리는 2003년 11월 7일에 유네스코 세계무형문화유산으로 인정받았다. 우리나라의 전통음악이면서 세계의 음악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정작 한국 사람들이 판소리를 잘 모른다. 일부 사람들은 판소리를 좋아하고 판소리에 대한 지식도 꽤 갖고 있지만 대부분의 국민들은 판소리가 있다는 사실 정도를 알고 있지 그 이상을 잘 모르고 있다. 이번 강의는 그런 한국인들에게 최소한의 판소리 상식을 갖게 하고 판소리의 가치를 알게 하는 것이 목적이다. 1. 판소리의 토양 지금은 판소리가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되어 국가의 보호를 받는 것처럼 되어있지만 그 동안의 판소리는 철저히 자생력에 의해서 발달되어 왔다. 판소리의 자생력이란 결국 소리하는 사람(광대)들과 그 소리를 소비하는 서민 대중들과의 사의에서 형성된 것이고 그 소비층의 변화에 따라서 판소리의 내용도 변화되고 발전되었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판소리는 줄거리가 있는 긴 이야기를 성악적인 방법으로 연출해 내는 것이니까 그것을 발달시킨 수요자의 측면으로 눈을 돌리면 판소리는 수요자인 우리들이 옛날 얘기와 같은 ‘이야기’와 그것을 음악으로 표현하는 ‘소리’ 또는 ‘노래’를 좋아하는 성향이 있기 때문에 그 두 가지 요소가 만나면서 만들어낸 극음악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런 음악의 생성발달은 철저히 자연 발생적이고 우리의 생활이라고 하는 문화 속에서 이루어진 것이지 누구의 특별한 아이디어나 국가적인 정책에 의해서 형성된 것이 아니다. 수요자인 일반 대중과 공급자인 음악가의 상호 작용에 의해서 생성 발달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판소리의 기원에 대해서도 여러 가지 설이 나오게 된 것이다. 이보형 같은 학자는 판소리가 ‘판놀음’에서 나왔다고 본다. ‘판놀음’이란 여러 패의 놀이꾼들이 너른 마당을 놀이판으로 삼고 각기 ‘소리’나 ‘춤’ ‘줄타기’ 등을 한판씩 노는 것을 뜻하는데 이런 경우의 예능을 ‘판소리’ ‘판춤’ ‘판줄’과 같이 불렀을 것으로 보는 것이다. 하기는 지금도 판을 짜서 한판 노는 농악을 ‘판굿’이라 하고 그런 식으로 추는 춤을 ‘판춤’이라 하고 그런 식의 염불을 ‘판염불’이라 하니까 ‘판소리’도 한 판으로 짜서 판놀음에서 부르던 소리라고 하는 주장이 상당히 설득력을 가진다. 그런데 또 다른 견해도 있다. 무가(巫歌)기원설이다. 무당들이 하는 굿에는 서사적인 내용을 노래도 연출하는 무가가 많이 있다. 동해안 별신굿의 ‘심청굿’도 그렇고 경기 도당굿의 ‘손님굿’도 그렇다. 진도 씻김굿의 ‘제석굿’도 마찬가지이다. 모두 긴 이야기를 노래로 연출하며 듣는 이들에게 큰 재미를 안겨주기도 한다. 또 무가를 부르는 형태가 경기도와 전라도의 서사무가는 판소리 하는 것과 비슷하다. 특히 경기 도당(都堂)굿의 경우는 남자 무당이 북 장단에 맞추어 무가를 하는 것이 판소리하는 것과 똑 같은 형태로 보일 정도이다. 전라도 굿을 많이 본 사람들도 ‘판소리는 굿에서 왔을 것’이라고 느끼기 쉽게 되어있다. 서사무가의 연출방법도 비슷하고 음악적인 내용도 유사성이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판소리의 명창 대부분이 전라도 세습무 집안 출신이라는 것도 그런 짐작을 하게 하는 한 요인이다. 하긴 판소리는 전라도 무속 출신들의 전유물처럼 되어 있기 때문에 무속 출신 아닌 사람이 판소리를 할 경우 ‘비가비(非甲)’라 하여 실력을 낮추어 보려는 경우가 많은데 권삼득처럼 ‘비가비’이면서도 정말 소리를 잘하게 되면 ‘양반광대’라고 하여 높여 부르기도 한다. 이 ‘비가비’란 동류가 아니라는 뜻이고 그 동류란 무속이 아니라는 뜻이다. 이처럼 판소리의 기원에 대해서는 ‘판놀음 기원설’도 있고 ‘무가 기원설’도 있는데 또 다른 추측을 하는 경우도 있다. 굳이 이름을 붙인다면 ‘이야기꾼 기원설’이라고 할 수 있는데 전통사회 시절에는 이곳 저곳을 돌아다니며 ‘이야기’를 파는 이야기꾼이 있었다는 것이다. 이야기꾼은 ‘장화홍련전’이나 ‘춘향전’같은 재미있는 이야기를 구연해 주고 돈을 받아 생활하는 직업인이었다고 하니까 그들의 이야기 연출 솜씨도 대단했을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런데 그런 이야기꾼이 이야기를 말로만 했겠느냐 하는 것이다. 이야기를 하면서 노래도 하고 재미있는 표정도 짓고 춤도 추고했을 터이니까 그런 것이 발전하여 판소리가 되었을 것이라고 보는 것이다. 하기는 나도 ‘이야기꾼’이 있었다는 얘기를 들은 바 있고 그런 이야기꾼들의 구연 솜씨는 대단하다는 얘기도 들은 바 있다. 그러나 그것이 곧 바로 판소리로 연결 될 수 있을까하는 점에 대해서는 해결되어야 할 과정들이 너무나 많다. 어쨌든 판소리는 그렇게 이야기라는 문학적 요소와 노래라는 음악적 요소와 연출이라는 연극적 요소가 어우러져 발달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우리 서민 대중들의 여러 가지 욕구와 관련을 가지고 발달하는 판소리는 전라도 지역을 중심으로 발달하게 된다. 판소리를 음악으로 연출할 때의 중요한 요소가 ‘아니리’와 ‘소리’인데 ‘아니리’는 반드시 전라도 사투리로 하여야 하고 ‘소리’도 전라도의 민요 토리인 육자백이 토리의 계면조가 기저를 형성하고 있는 점을 보면 판소리는 전라도에서 자생하고 전라도를 배경으로 발달했다고 할 수 있다. 실제 전라도 사람은 판소리를 무척 좋아한다. 심지어는 국악은 곧 판소리를 가리킨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나는 ‘82년도에 전남대학교에 국악과를 만들고 초대 국악과장을 한 적이 있는데 그 때 전라도 시골에 민요채집을 가서 “저는 국악하는 사람 최종민입니다” 하고 인사를 하면 “그러먼 판소리 잘 허시것네요”하고 말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그 만큼 전라도 사람은 판소리를 국악의 전부인 것처럼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전라도 사람들이 판소리를 좋아하는 정도는 대단하다. 아무리 시골이라도 판소리 판이 벌어진다고 하면 사람들이 모여들고 전주 대사습이나 남원 춘향제에는 엄청난 인파가 몰려드는데 그들 대부분이 판소리를 들으러 오는 분들이라고 보아도 된다. 전주 실내체육관을 가득 메운 청중들이 판소리를 들으며 뿜어내는 열기는 자연 “얼씨구” “조오타”와 같은 추임새로 나타나게 되는데 그 추임새 하는 수준이 서울의 국악과에 다니는 학생들 보다 더 높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춘향제 때에 남원 광한루원에 모이는 청중들도 마찬가지이다. 심청가의 슬픈 대목에서는 눈물을 흘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흥겨운 중중모리 장단이 나오면 일어서서 덩실덩실 춤을 추는 사람을 쉽게 볼 수 있다. 전라도 사람들은 정말 판소리를 좋아하고 판소리에 대한 안목도 대단히 높다. 그래서 판소리하는 사람들을 좋아하고 판소리 명창 되는 것을 큰 영광으로 안다. 그러니까 자기 자녀들에게 판소리를 가르치는 사람도 많아져서 오늘날의 판소리는 전라도 출신들에 의해서 계승 발전되어 간다고 해도 될 정도이다. 결국 판소리의 발달 배경에는 우리 민족이 좋아하는 ‘이야기’와 ‘노래’ ‘연극’등의 요소가 있고 그것을 공연물로 가꾸어 온 전라도 사람들의 음악적인 안목과 사랑이 있었다는 것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2. 판소리의 큰 흐름 판소리는 시조나 가곡처럼 혼자서 유유자적으로 즐기는 노래가 아니다. 소릿군이 청중을 대상으로 소리를 파는 공급자와 수요자가 있는 노래이다. 시조나 가곡 같은 노래들은 청중을 생각하지 않는다. 노래 부르는 사람들 개인의 수양이나 교양을 위하여 하는 노래이기 때문에 수양과 관련되는 철학과 그것을 소리로 표현하는 표현방법을 모색하며 발달하게 되었다. 그래서 그런 노래를 하는 사람들 스스로가 사특한 마음과 욕심을 버리도록 하는 그런 음악을 발달시켰던 것이다. 이런 노래와 달리 판소리는 청중을 대상으로 하는 음악이기 때문에 청중들에게 즐거움을 줄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어떻게 보면 수양의 음악과는 전혀 다른 상품의 음악인 셈이다. 그래서 공급자인 소리광대가 수요자인 청중을 상대로 하여 하나의 문화상품으로 개발해 온 것이 판소리라고 보아도 된다. 게다가 우리네의 음악작품은 서양의 음악작품처럼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계속 변모하면서 발달했으니까 판소리의 작품 내용은 시대와 지역에 따라서 상당한 차이를 가지고 발달했을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렇게 발달한 판소리의 역사가 얼마나 오래 되었는지는 확실히 알 수 없다. 다만 판소리에 관한 최초의 문헌이라고 하는 유진한(柳振漢 1711~1791)의 만화집(晩華集 영조30년 1754)에 “가사 춘향가 2백귀”라는 것이 있고 순조(純祖 1790~1834, 재위 1800~1834)때의 문인 송만재(宋晩載 1788~1851)의 관우희오십수(觀優戱五十首)에 판소리나 줄타기 땅재주에 관한 기록이 있는 것을 보면 아마 18세기 무렵이나 19세기에는 상당한 수준의 판소리가 불리어졌을 것으로 보여진다. 그렇다면 판소리라는 공연물이 어떤 식으로 발달해 왔을까?. 국가가 장려하는 음악도 아니었고 처음부터 패트론(후원자)이 있었을 턱도 없고 순전히 서민 대중들을 상대로 소리를 팔면서 살아야 하는 광대들이 어떤 소리를 어떻게 하면서 판소리를 발달시킬 수 있었을까하는 것이 궁금한 것이다. 이에 대한 정확한 해답이나 기록이 있는 것은 아니다. 다만 우리의 상상력으로 그런 과정을 재구성해 볼 수밖에 없다. 초창기의 판소리는 사설이 재미있고 곡조가 민요와 비슷한 간단한 것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런 때의 재미있는 내용이란 대개 음란한 얘기일 것으로 짐작된다. 하기는 음란한 이야기만큼 재미있는 것이 어디 있겠는가?. 유교적인 덕목으로 낙이불음(樂而不淫)한 것이 좋다고 하는 생각도 뒤집어 보면 정말 즐거운 것은 음란한 것이기 때문에 즐거워하면서도 음란하지 않게 하는 것 그런 것을 수양의 덕목으로 삼아 수양하자는 것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니까 그런 시대에 일반 대중들이 척 들어서 재미를 느끼게 하기 위해서는 좀 음란한 내용의 얘기를 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니까 판소리는 그런 내용의 얘기를 실감나게 하면서도 노래의 재미를 맛 볼 수 있도록 음악적으로 각색하여 들려주었을 것이다. 송만재의 관우희에 나오는 열두 마당 중에서 사랑을 내용으로 하는 것은 춘향가를 비롯하여 배비장전․변강쇠타령․강릉매화전․왈자타령등인데 그 내용의 야한 정도는 당시가 유교적인 분위기라는 것을 고려한다면 정말 대단한 것이다. 그런 야한 얘기나 횡재하는 얘기, 신선의 얘기 등 그 당시의 현실과는 상당히 거리가 있는 내용들을 거침없이 들려줌으로서 한 바탕 웃기기도 하고 울리기도 하면서 마음껏 카타르시스 하도록 하는 역할을 했을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판소리가 차츰 인기를 얻고 독립된 공연물로 확산되니까 판소리를 좋아하는 수용층도 다양해지고 판소리 광대들도 세련되어져서 한 단계 높은 수준의 판소리가 발달하게 되었을 것으로 본다. 초기에는 그냥 야한 얘기를 상스러운 표현으로 막 표현하던 것이 한문을 배우고 먹물 먹은 사람들이 판소리를 좋아하게 되니까 가사의 표현방법이 한문투로 바뀌고 같은 내용이라도 중국의 고사를 끌어다가 명분 있게 표현하는 방법이 사용되게 되었을 것이다. 또 음악적으로도 기존의 토속적인 음악언어 외에 젊잖은 음악언어와 다양한 음악언어를 수용하여 보다 풍부한 표현력을 가지도록 발달시켰을 것으로 본다. 전체적으로 보면 사설의 내용이나 음악의 내용이 훨씬 유교적인 가치관을 수용하게 되었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처음에는 재미위주로 발달했던 판소리가 재미와 명분을 함께 지닌 판소리로 발달하면서 판소리에 대한 미학과 함께 판소리의 구조조정이 이루어졌다고 할 수 있다. 12마당 즉 12개 이상의 작품으로 발달했던 판소리가 이 시기로 내려오면 5마당 정도로 줄어드는 현상이 일어난다. 정절(貞節)을 중시한 춘향가나 효심(孝心)를 그리는 심청가가 인기를 얻으며 가꾸어진다. 횡재하는 얘기에다가 형제의 우애를 내용으로 하는 흥보가는 재미의 요소와 교육적인 내용을 함께 담고 있어서 또한 널리 알려 지게 된다. 수궁가 역시 토끼의 위기극복의 지혜가 재미를 주는가하면 별주부의 충성스러움이 유교의 덕목과 합치한다. 적벽가는 가장 많이 읽히는 삼국지의 한 부분을 판소리로 각색하여 인정과 의리의 문제를 잘 그리고 있어서 또한 인기를 끌 수 있었다. 이런 내용들을 표현하기 위한 음악의 언어는 우선 가곡의 음악요소를 상당부분 판소리가 수용하게 되고 경기 토리나 경상도 토리도 판소리가 수용하게 된다. 그러면서 전체적인 분위기가 토속적이고 슬픈 정서에서 으젓하고 젊잖은 분위기로 바뀌게 된다. 초기의 판소리가 토속적이고 계면조의 성격이었다면 이 시기의 판소리는 가곡과 경토리를 받아드리면서 평조나 우조의 요소를 많이 가지게 된다. 판소리의 이야기 내용이 명분이 있으면서도 재미를 느낄 수 있는 것으로 재편되면서 음악의 내용도 그것을 사실적으로 표현할 수 있도록 다양한 음악언어를 받아드렸고 이 모든 것이 청중․관객의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도록 연극적인 요소도 발달하게 되었다. 이러한 것을 가능케 하는 것은 소리의 공급자인 광대와 소리의 수요자인 청중들의 상호작용인데 “귀명창이 있어야 진짜 명창이 나온다”는 말도 있지만 과거의 우리 사회에는 “판소리는 이러 이러해야 한다”는 공통된 미학의 틀이 있었기 때문에 많은 사람이 함께 발달시킨 판소리가 뚜렷한 흐름을 가지고 발달할 수 있었던 것이다. 3. 신재효의 광대론 신재효(申在孝1812~1884)는 조선조 후기 전라북도 고창출신으로 상당한 재력을 바탕으로 판소리 인들을 후원하고 판소리 사설을 정리한 사람이다. 그가 정리한 판소리는 춘향가․심청가․박타령․토별가․적벽가․변강쇠가 등이고 그가 지은 단가 사설은 광대가․도리화가 등 30여편에 달한다. 고창에 가면 고창읍성 앞에 신재효가 살던 신재효 고택(중요민속자료 제39호)이 있고 그 바로 앞에 신재효의 호를 딴 동리국악당(桐里國樂堂)이 있다. 동리 신재효는 그 만큼 뚜렷한 판소리에 업적을 쌓았던 인물이어서 “한국의 쉐익스피어”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높이 평가되기도 하는 인물이다. 그는 많은 광대(판소리를 업으로 삼는 음악가)들을 상대하고 그들에게 자기의 의견을 얘기하기도 하고 직접 가르치기도 했을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 잘 못된 사설을 바로 잡아 준다든지 판소리에 대한 미학적인 기준을 일러주는 일 등은 그의 장기로 하는 일이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그래서 그가 새롭게 시도한 것이 춘향가를 남창(男唱)과 동창(童唱)으로 구분하여 사설을 정리한 것이고 남자만 부르던 판소리를 여자도 부를 수 있도록 한 것이다. 그가 진채선이란 여자에게 판소리를 가르쳐서 경복궁 낙성연에서 ‘방아타령’등을 부르게 한 것은 유명한 일이고 그 진채선 이후에 허금파 강소향등의 여류가 등장하면서 오늘날과 같은 여류 명창의 시대가 열리게 되었다는 것은 다 아는 사실이다. 그런 신재효이기 때문에 판소리와 관련된 많은 얘깃꺼리가 전하지만 오늘은 그가 지은 광대가를 통해서 신재효가 가지고 있었던 명창에 대한 이상이랄까 명창의 조건에 대한 얘기를 해 볼까 한다. 광대가는 “고금에 호걸문장 절창으로 지어내어 후세에 유전하나 모두 다 허사로다”하면서 도연명이나 백낙천 같은 이들의 대단한 작품들도 다 허황사설(虛荒辭說)이라면서 차마 못 듣겠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거려천지(蘧廬天地) 우리행락 광대행세 좋을씨고”하면서 광대가 대단하다는 말을 꺼낸다. “그러나 광대행세 어렵고 또 어렵다. 광대라 하는 것은 제일은 인물치례 둘째는 사설치례 그 지차 득음(得音)이요 그 지차 너름새라.”로 이어지는데 바로 이 대목이 광대의 조건을 구체적으로 언급한 대목이다. 여기서 보면 신재효는 광대를 참 좋은 예능인이랄까 멋진 직업을 가진 사람들로 보았다. 광대란 그 당시 사회에서 천인 계급이었고 살아가기도 어려운 직업이었는데도 신재효는 그 광대들의 멋진 삶을 제대로 간파했던 것이다. 여기서 광대란 판소리를 하는 소리꾼을 말한다. 광대란 말은 본래 가면극과 관련하여 많이 쓰이던 말이다. 양반광대 또는 각시광대 같은 경우는 가면 자체를 가리키는 말이고 고성오광대 가산 오광대하면 가면놀이나 가면극을 하는 사람들을 가리키게 된다. 그러나 후대로 내려오면 판소리하는 명창을 가리키는 말로 많이 쓰이고 이 경우도 판소리 명창을 뜻하는 말로 사용되고 있다. 그런데 광대란 말도 앞에 다른 말을 얹어서 사용하는 여러 가지 용례를 보면 그 의미를 더 분명하게 이해 할 수 있다. “진짜광대”․“또랑광대”․“화초광대”․“아니리 광대” 같은 말이 있기 때문인데 신재효가 말하는 광대는 소위 말하는 진짜광대이다. 그러나 크게 이름이 나지 않고 어떤 조그만 지역에서만 활동하는 기량이 우수하지 못한 광대는 또랑광대라고 비하해 말하기도 하고, 소리는 제대로 하지 못하면서 인물이나 팔아 먹고사는 광대는 화초광대라고 한다. 또 소리 중심으로 수준 높게 판소리를 하지 않고 재담이나 늘어놓으며 이야기만 계속하는 광대는 아니리 광대라고 한다. 이런 광대들은 바람직한 광대가 아니다. 그래서 신재효는 광대가 기막히게 좋은 것이지만 광대 되기가 너무나 어렵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런데 신재효가 말하는 광대의 조건은 무엇인가?. 첫째는 <인물>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인물은 천생(天生)이라 변통할 수 없다고 했다. 둘째는 <사설치례>라고 했는데 광대가에서 말하는 사설은 이런 것이다. “사설이라 하는 것은 정금미옥(精金美玉) 좋은 말로 분명하고 완연하게 색색이 금상첨화(錦上添花) 칠보단장(七寶丹粧) 미부인(美婦人)이 병풍 뒤에 나서는 듯 삼오야(三五夜) 밝은 달이 구름 밖에 나오는 듯 새눈 뜨고 웃게 하기 대단히 어렵구나” 그냥 읽어서는 무슨 뜻인지 알아보기 어려운 내용이다. 그러나 판소리에 있어서 사설이 중요하다는 것은 다 아는 사실인데 광대는 그러한 사설을 짜기도 하고 멋진 시어(詩語)를 구사할 줄도 알고 같은 내용이라고 더 멋있게 더 분명하게 표현해야 듣는 사람들이 감동한다는 식으로 이해하면 된다. 그 시대의 광대들은 즉석에서 판소리의 내용을 창조적으로 짜서 부르는 것이 유행했을 것이기 때문에 더욱 그 창조의 역량중에서 가사를 짜는 문학적 역량을 사설치례라는 말로 표현했는지도 모른다. 이런 사설치례 다음이 <득음(得音)>이라는 것인데 광대가에서 말하는 득음은 이런식으로 되어 있다. “득음이라 하는 것은 오음(五音)을 분별하고 육율(六律)을 변화하여 오장(五臟)에 나는 소리 농락(籠絡)하여 자아낼 제 그도 또한 어렵구나.” 여기서 ‘오음을 분별하고 육율을 변화’한다는 것은 음악의 언어방법을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작곡능력이 있어야 한다는 뜻으로 생각하면 되겠고 ‘오장에 나는 소리 농락하여 자아낼제’는 그러한 음악내용을 실제 소리로 표현하는 표현기교와 발성등을 말하는 것으로 보면 되겠다. 그러니까 광대에게 있어서 득음을 했다는 것은 판소리를 하는데 필요한 소리를 자유자재로 낼 수 있는 발성의 문제를 해결했다는 뜻도 되지만 가사의 내용을 음악으로 작곡하는 작곡능력도 함께 갖추었다는 것을 뜻한다고 생각하면 되겠다. 그리고 맨 마지막이 <너름새>라고 했는데 광대가에서는 “너름새라 하는 것은 귀성 끼고 맵시 있고 경각(頃刻)에 천태만상(千態萬像) 위선위귀(爲仙爲鬼) 천변만화(千變萬化) 좌상(座上)에 풍류호걸 구경하는 노소남녀 웃게 하고 울게 하니 어찌 아니 어려우며”라고 하였다. 너름새는 연기에 해당하는 몸짓 표현이라고 할 수 있는데 순식간에 신선이 됐다가 귀신이 됐다가 할 수 있어야 하고 천변만화하는 표정과 몸짓으로 모든 사람들을 웃기기도 하고 울리기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정리하면 명창은 <인물>을 잘 타고 나야 하고, <사설>을 잘 짜고 멋 있게 표현하는 문학적 창작능력이 있어야 하고 ,작곡능력이 있어야 하고 소리를 자유자재로 구사할 수 있는<득음>이 되어야 하고 연기와 몸짓을 통하여 청중을 웃기고 울릴 수 있는 <너름새>를 잘 하여야 한다는 것이 신재효의 광대론이다. 4. 음악가들의 ‘득음(得音)’ 이야기 ‘득음’이란 말은 판소리에서 많이 사용하는 용어이지만 기악에도 해당하는 말이다. 직역하면 “음을 얻는다” 또는 “소리를 얻는다”가 되어서 마치 ‘발성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을 말하는 것처럼 들린다. 득음이란 우선은 발성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을 말한다. 음악가가 음악에 필요한 소리를 충분하게 낼 수 있게 되는 것이 첫째의 필요조건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득음은 발성문제만 해결하는 것을 말하지는 않는다. 신재효가 ‘광대가’에서 말한 득음에 관한 것을 살펴보면 “득음이라 하는 것은 오음(五音)을 분별하고 육율(六律)을 변화하여 오장에서 나는 소리, 농낙하여 자아낼 제 그도 또한 어렵구나”라고 하였다. 여기서 보면 득음은 오음을 분별하고 육율을 변화할 줄 알아야 된다는 것이 먼저 나오는데 이것은 요즘 말로 표현하면 음악언어의 구조를 훤히 알아서 가장 합리적인 표현방법을 구사할 줄 아는 작곡능력이 있어야 된다는 말이다. “오장에서 나는 소리”란 입이나 목에서 나는 소리가 아니라 온 몸에서 나는 소리라는 것이고 “농낙하여 자아낼 제”란 자유자재로 멋지게 꾸며내는 소리라고 생각하면 별 무리가 없을 듯 하다. 그러니까 득음이란 그냥 소리만 잘 내는 것이 아니라 ‘음악의 속’을 훤히 알고 합리적으로, 멋지게, 온몸으로 마음껏 소리를 낼 수 있게 되는 것을 말한다. 음악가가 되기 위해서는 우선 득음을 해야 한다. 그런데 득음이 그렇게 쉽지 않다. 실제 음악가가 되느냐 되지 않느냐는 득음을 하느냐 못하느냐에 달려 있다. 그 만큼 득음은 음악가가 반드시 해결하여야 할 문제이다. 음악가들은 그 득음을 위해서 각기 독특한 혼자만의 연습시간을 가져야 하는데 흔히 <독공>이라고 하여 매일 매일 계속되는 장기간의 연습도 있고 ‘100일 공부’처럼 집중적으로 온통 연습에만 매달리는 방법도 있다. 장우벽(1735~1809)은 영조 때 활약한 가곡의 대가인데 매일 인왕산 바위 위에 올라앉아 장안을 굽어보며 노래를 불렀다 하고 김계선(1891~1943)같은 대금의 명인은 매일 새벽 서울의 남산에 올라가 대금을 연습하였다고 한다. 이들이 연습할 때에는 같은 음악을 반복하여 연습하는데 대개는 신발을 벗어 놓고 조금만 조약돌을 모아다가 한번 불고 돌 하나 신에 넣고 또 한번 불고 돌 하나 신에 넣고 하면서 연습하여 조약돌이 신 하나가득 수북하게 쌓이면 산을 내려 왔다고 한다. 그 만큼 계속 같은 음악을 반복 연습하는 가운데 악기를 다루는 기술이 능통하게 되고 또 ‘음악 속’도 훤하게 알게 되어 무슨 악기든지 다룰 수 있는 힘과 음악을 해석하고 표현하는 능력을 함께 배양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들과 달리 대부분의 판소리 명창들은 집중적인 훈련을 통하여 득음 하였다는 얘기가 많이 전한다. 박동진 명창만 하드라도 100일 공부한 얘기가 유명하다. 박 명창은 처음 소리를 배운 다음 이곳 저곳 다니면서 소리선생도 하고 조그만 자리의 소리도 하면서 조금은 방탕하게 한동안 지냈는데 청년기에 접어들면서 그러한 생활을 크게 반성하고 고향에 돌아가 100일 공부를 시도하였다고 한다. 부친에게 그러한 결심을 얘기하고 아무도 찾아오지 못하게 부탁해놓고는 혼자 산 중턱에 움막을 짓고 독공에 들어갔다. 밥 먹고 잠자는 시간 빼고는 하루 종일 소리만 하는 맹훈련이었다. 그런데 판소리 명창들의 훈련방법은 전력을 다해 통성으로 소리를 지르면서 연습하기 때문에 목에 무리가 가게 된다. 그러면 자연 목이 잠기고 소리가 잘 나지 않게 될 뿐만 아니라 몸에도 무리가 누적되어 병이 나게 마련이다. 박 명창도 그렇게 맹훈련을 하는 중에 몸이 붓고, 이가 솟고, 목이 잠기어 소리가 나오지 않는 고비를 넘기게 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그 고비란 것이 말이 쉽지 본인으로서는 이렇게 소리하다가 산에서 죽는가보다 할 정도로 꼼짝달싹 하지 못하고 앓아 눕는 상태에 이르게 되었다고 한다. 그래도 마음은 오직 득음에 있을 뿐 몸이 아프고 괴로운 것은 별 문제가 되지 않는 모양이다. 그러니까 그런 상태에서도 계속 쉬지 않고 소리를 질러 대며 소리를 끌어내려고 애 썼다는 것이 아닌가?. 그렇지만 몸은 한계가 있는 것이다. 박동진도 마지막에는 소리는커녕 몸을 움직이지 조차 못하고 죽은 듯이 늘어져 있게 되었는데 마침 박동진의 부친이 혹시나 하고 찾아오셨더라 는 것이다. 박동진은 평소에 그럴 때에는 인분 거른 물을 마시면 낫는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기에 그의 부친에게 인분 거른 물을 가져다 달라하였다. 그래서 그것을 마셨는데 정말이지 금방 몸의 부기가 빠지고 회복의 기미가 보이게 되어서 다시 연습에 연습을 거듭하면서 백일공부를 마쳤다고 한다. 박동진 명창은 이 백일공부를 통하여 득음했다는 말을 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그것을 계기로 그 전과는 훨씬 다른 생활태도와 오직 판소리에만 정진하는 자세로 일관했기 때문에 오늘날과 같은 대 명창이 된 것이다. 함동정월이라는 가야금의 명인도 연습을 많이 하기로 소문난 분이다. 함 여사가 김명환씨와 함께 살 때에는 식전에 한 바탕 오전에 두 세 바탕 식으로 거의 종일을 가야금 산조를 몇 바탕씩 타면서 생활했다고 한다. 말하자면 생활이 온통 연습이었던 셈이다. 그래서 함 명인은 보통 사람보다 왼팔이 더 굵고 강하게 발달했고 그녀가 타는 가야금은 줄을 보통 가야금 보다 훨씬 되게 죄어 줄을 고르기 때문에 다른 가야금 연주자들은 그 가야금을 타기 힘들었다고 한다. 그 만큼 늘 같은 곡을 반복하여 타면서도 계속 그 음악의 삼매경에 들어가 음악의 여행을 하기 때문에 지루하기는커녕 늘 새로운 음악의 체험을 하는 것이었다. 그런 음악가들의 경우 연습을 한다는 것이 무슨 장단을 지키고 곡조를 익힌다는 차원이 아니다. 그 산조라는 음악 속에 들어가 장단과 어우러지면서 차츰 차츰 죄이고 절정을 이룬 다음에는 풀고 또 죄이고 풀고 하면서 마음과 몸이 혼연일체가 된 음악여행을 즐기는 것이다. 그렇게 공력을 쌓아 나가기 때문에 이런 분들에게 있어서 음악은 생활이고 도(道)이고 인생 그 자체인 것이다. 또 그런 과정을 통해서 득음을 하고 음악가가 되고 그들의 음악이상에 접근해 갔던 것이다. 득음에 대한 일화는 판소리 명창들에게서 많이 찾을 수 있다. 폭포에 가서 소리를 지르면 처음에는 자기 귀에도 안 들리던 소리가 나중에는 그 폭포 소리를 뚫고 멀리까지 들렸다는 얘기도 얼마든지 있다. 이런 것이 음악가들의 득음과 관련한 얘기들이고 이러한 과정이 국악인들에게는 꼭 필요한 것이기에 소개하였다. 5. “이면”이라는 용어의 의미 국악에서는 “이면”이라는 말을 많이 쓴다. “이면에 맞는다”든지 “이면에 맞지 않는다”는 말을 자주 들을 수 있다. 그런데 이럴 경우 그 이면이란 말의 한자(漢字)는 理面으로 생각하는 것이 옳다. “이면에 맞는다”는 것은 대개 이치(理致)에 합당하다는 의미로 쓰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판소리를 하는데 엎드리어 땅을 치면서 통곡하여야 할 대목인데 그 소리를 그냥 뻣뻣하게 서서 부른다면 그것은 “이면에 맞지 않는다”고 하는 것이다. 춘향가를 창극으로 하는데 춘향을 남자로 하고 이도령을 여자로 했다면 그런 것도 “이면에 맞지 않는다”고 한다. 말하자면 “이치에 맞지 않는 것”은 “이면에 맞지 않는다”고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면에 맞는 소리”라고 하면 좀 복잡해진다. 판소리에서 좋은 소리인지 좋지 않은 소리인지를 따질 때에도 이런 말을 쓰기 때문이다. 이럴 경우는 그 “이면에 맞는 소리”라는 말이 일종의 미학용어처럼 사용되는 것이다. “천리만리”라는 가사를 표현하는데 “천리”는 좀 짧게 부르고 “만리”는 더 길게 “마아아아알리”로 부르는 것이 “이면에 맞는 소리”를 하는 것이라고 한다. 또 놀보가 흥보를 나가라고 할 때에는 막 내쫓는 것이니까 ‘우조’로 불러야 이면에 맞고 흥보가 쫓겨 나갈 때에는 슬픈 마음으로 부르는 대목이니까 ‘계면조’로 불러야 이면에 맞는다. 말하자면 슬픈 대목에서는 슬픈 소리로 부르고 기쁜 대목에서는 기쁜 소리로 부르는 것을 이면에 맞는 소리라고 한다. 마찬가지로 판소리의 극적인 흐름이 ‘어사 출도’ 대목처럼 바쁘게 도망가고 법석을 떨 때에는 그런 극적 상황에 합당하게 빠른 장단으로 노래하고 한가하게 광한루에 올라 사방 경치를 살펴보는 ‘적성의 아침 날’ 같은 대목에서는 느린 진양조로 부르는 것이 “이면에 맞는 소리”를 하는 것이 된다. 만약 그런 상황을 거꾸로 생각하여 ‘어사 출도’ 대목을 진양조로 느리게 부르고 ‘적성의 아침 날’을 빠른 휘모리장단으로 부른다면 그것은 이면에 맞지 않는 것이다. 극적인 내용에 따라서 장단을 어떻게 배열하느냐 하는 것도 이면에 맞게 배열해야 한다는 얘기이다. 가사의 내용이나 극적인 상황에 맞게 소리를 짜고 부르는 것을 “이면에 맞는 소리를 한다”고 하는 것이다. “ 이면에 맞는 소리”란 말은 작곡의 미학용어가 되기도 하고 연주의 미학용어가 되기도 한다. 이럴 경우 이면이란 말의 한자는 理面보다는 裏面으로 생각하는 것이 옳을 것으로 본다. 나는 어느 날 아침 산을 오르다가 문득 그 “이면”을 깨닫게 되었다. 이면의 한자는 理面․裏面․二面을 두루 써도 될 만큼 세 가지 의미를 다 포함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판소리 명창들이 “이면에 맞다”라는 말도 쓰고 “이면에 맞는 소리”라는 말도 쓰고 또 “이면을 그린다”는 말도 쓰는데 이 세 가지의 경우 그 <이면>이란 말의 뜻이 서로 다른 것이 아니라 결국은 같은 것이라는 것이다. 어느 한 가지의 의미만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세 가지 의미를 다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면>이란 용어는 한문(漢文)을 많이 쓰는 전통사회 시절부터 써 온 용어이다. 분명 한자로 된 성어(成語)인데 그 동안 국악계에서는 그 한자에 대한 논의도 없었고 또 어느 것이 옳은지 한자로 표기하는 예도 거의 없었다. 그냥 “이면”이란 말을 써 오기만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용어가 한문성어(漢文成語)인 것이 분명한 이상 한문으로 따져 보아야 하는데 그런 노력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런데 오랫동안 생각해 보니까 “이면”이란 말의 한문은 앞서 예를 든 세 가지 한문이 다 해당하는 용어라는 것이다. 다르게 생각하면 그 동안 판소리계에서 “이면”이란 말의 한문을 사용하지 않은 것은 그렇게 복합적인 의미가 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하게 된다. 어떻게 보기에 “이면”이란 말에 세 가지 한문의 뜻이 다 있다는 것일까?. 먼저 “이면”을 二面으로 생각하는 사고가 필요하다. 사전 조건이라는 한 면과 그것을 나타낸 현상으로서의 한 면을 생각하자는 것이다. 가사(사설)라는 사전 조건을 음악으로 작곡했을 때의 현상이 서로 잘 맞으면 “이면에 맞는 소리”가 된다. 또 그 작품을 합당하게 창(唱)으로 표현했을 때에도 “이면에 맞는 소리”가 된다. 그리고 작곡이 잘 되었다든지 창으로 잘 표현되었을 때에는 그것이 “이치에 합당하게 된 것”이니까 “理面에 맞는다”라는 말과 같은 뜻이 되기도 한다. 또 그렇게 작곡이 잘 된 ‘소리 대목’을 잘 표현한 연주가 이루어졌을 때 “이면을 잘 그렸다”고 말하는데 그런 경우의 “이면”은 한문의 裏面에 해당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사전 조건과 표현된 현상이 잘 맞으면 “二面이 잘 조화된 것”이고 “裏面을 잘 그린 것”이고 또 “理面에 맞는 소리가 된다”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아이디어는 음악이란 표현의 예술이기 때문에 무엇을 표현했을 때 그 <표현된 내용>은 결국 <사전 조건을 표현한 것>이라는 생각이다. 그 사전 조건이란 판소리의 경우 가사의 내용이 가장 중요한 것이지만 그 가사를 어떤 기준에서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서 여러 가지 현상이 나타날 수 있는 것이다. 춘향가의 ‘신연맞이’대목을 동초 김연수명창은 세마치라고 하는 빠른 진양조장단으로 작곡했는데 다른 판소리 작품들은 대부분 자진모리로 되어있다. 이런 것이 바로 같은 사설이지만 작곡자의 해석에 따라서 다른 조건이 되어 다른 현상으로 나타나는 예이다. 해석의 문제 역시 중요한 것이지만 <사전 조건>에 포함시키면 된다. 그 동안 판소리에서 “이면에 맞지 않는다”고 하면 평가 점수에서 불가(不可) 판정을 받은 것과 같은 것으로 생각해 온 것이 사실이다. 그 만큼 “이면에 맞는 소리”를 하는 것이 중요하고 “이면에 맞는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아는 것이 중요한 것이었다. 민속악에서 “이면의 뜻을 모른다”고 하면 그것은 음악에 대한 안목이 전혀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제 여러분께서는 “이면”이 한문성어로 ‘二面’․‘裏面’․‘理面’의 뜻을 함께 가진 포괄적인 용어라는 것을 알았을 것이고 <사전 조건>과 <표현된 현상>이 잘 조화되었을 때 “이면에 맞는 소리를 했다”고 말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6. 20세기에 출현한 새로운 공연물 <창극> 한국의 20세기는 외래 문물이 물밀 듯이 밀려들어 온 한 세기였다. 1900년대의 시작은 대륙으로부터 들어오는 중국문화의 영향력이 감소되는 한편 일본을 거쳐 들어오는 서양문화의 영향력이 크게 증대되는 한 세기였다. 이런 문화의 변혁기에 나타나는 새로운 공연물이 앞으로 얘기하려고 하는 우리의 ‘창극’이다. 창극은 ‘창(唱)’과 ‘극(劇)’이 합쳐진 공연물이다. ‘음악극’이라 말해도 좋고 ‘창악인들이 개발한 연극성이 강한 공연물’이라고 해도 좋은 것이다. 창극 이전에도 우리에게는 훌륭한 음악과 극을 결합시킨 공연물이 있었다. 판소리가 바로 그것이다. 판소리는 가장 경제적으로 큰 효과를 내는 수준 높은 공연물인데 한 사람의 명창(가객)과 한 사람의 고수가 공연 전체를 이끌어 나가는 것이다. 우리 조상들은 몇 백 년 동안 이러한 판소리를 다양하고 수준 높게 발달시켜 많은 사람들이 즐기게 했다. 춘향가․심청가․흥보가․수궁가․적벽가․등이 다 그러한 판소리 작품들 아닌가?. 그런데 20세기를 맞으면서 우리네 판소리와 다른 외국 공연물이 서울에서 공연되기 시작한 것이다. 지금의 청계천2가쯤에 해당하는 수표교 다리 건너편의 청국관에서는 중국의 전통 연극이 자주 공연되었고 1902년에 협률사라는 이름으로 지어졌다가 나중에 원각사라고 부르게 되는 서양식의 극장이나 광무대․연흥사․단성사․장안사 같은 서양식 극장에서도 일본의 신파극이나 가부키나 신연극 등이 자주 공연되었다. 이처럼 극장이 많아지고 그런 곳에서 새로운 공연물을 공연하는 것 자체가 우리 문화계에 던져주는 변화의 파장은 클 수밖에 없었다. 창극의 시작 1902년에 지어진 협률사는 우리 나라 최초의 서양식 극장이다. 처음에는 고종의 즉위 40주년을 기념하는 칭경식 축하 공연을 그곳에서 할 작정이었다. 그래서 궁중 소속으로 있는 관기(官妓)나 예능이 뛰어난 예기(藝妓)들을 모으고 경․서도 명창이나 판소리 명창들을 모아서 다양하고 큰 공연 준비를 한다. 첫 번째의 공연은 전염병이 돌게 되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왕실이 지은 신식 극장에서 많은 예술가들이 돈을 받으며 공연을 할 수 있었다는 것은 대단한 의미를 갖는 것이었다. 초창기의 공연물들은 기생들의 노래나 춤과 경기명창들의 재담과 판소리하는 사람들이 배역을 나누어 하는 창극 등이 주 공연물이었던 것 같다. 그런데 협률사는 1906년에 문을 닫게 되고 1908년에 협률사를 내부 수리하여 원각사라는 이름으로 다시 개관하게 되는데 이 때의 운영진은 친일세력들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인직을 비롯한 친일 연극인들이 원각사를 무대로 신연극 등을 공연하였는데 그래도 그 곳에는 김창환 등의 명창 40명과 기생 24명이 이동백을 단장으로 하여 전속 단체를 구성하고 판소리․민속무용․창극 등을 공연하였다. 그리고 1909년 말 원각사의 전속 단체마저 폐지되자 협율사 명창들은 김창환․강용환․유공열 등을 중심으로 하는 파와 송만갑․이동백․김창룡 등을 중심으로 하는 파로 나뉘어 전국 순회 공연에 들어간다. 이 협률사의 공연이 전국적으로 대단한 인기를 끌고 창극 보급에 크게 공헌하지만 1910년 한․일 합방이 발표되자 모두 공연을 중단하고 흩어지게 된다. ‘창극’이라는 이름의 유래 창극이라는 명칭도 1910년대에는 신연극(新演劇)이나 신파극에 대한 구연극(舊演劇) 또는 구파극(舊派劇)이라고 했었다. 그러다가 1930년대가 되면서 조선성악연구회가 발족되고 판소리와 창극을 개발한 것이 새로운 공연물로 각광을 받게 되는데 이 무렵에는 판소리나 창극 모두를 창극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말하자면 정노식은 판소리의 역사를 쓰면서 「조선창극사」라고 했고 조선성악연구회에서는 ‘창극좌’라는 명칭으로 단체를 만들어 창극 활동을 하였다. 그러니까 창극이라는 용어는 한동안 판소리와 창극을 함께 지칭하는 용어로 사용되기도 했다는 말이다. 그러다가 창극이 인기를 얻고 많은 창극단이 생긴 다음 해방을 맞으면서 서양적인 것이 본격적으로 들어오니까 창극이라는 말 대신 국극(國劇)이라는 말을 많이 사용하게 되어 ‘여성국극단’이 생겨나게 되고 또한 인기를 얻게 된다. 이런 연유로 현재의 국립창극단이 1962년 국립극장 소속 단체로 처음 발족할 때에는 국립국극단이라는 명칭을 사용했었다. 지금 사용하고 있는 ‘국립창극단’이라는 명칭은 1973년부터 사용하기 시작한 이름이다. 초창기의 음악극은 판소리를 하는 남도명창들에 의하여 개발되었다고 할 수 있다. 청국관에 가서 중국의 경극 등을 자주 구경한 강용환은 원각사라는 새로운 무대가 만들어지고 판소리인들이 함께 공연할 공연물을 모색할 때에 <춘향전>을 입체창으로 하여 여러 사람이 배역을 나누어 연극에 가까운 공연물을 만든 것이다. 지금의 창극과는 훨씬 다른 형태라고 할 수 있다. <춘향전>이라는 판소리를 그냥 그대로 배역만 나누어 여러 사람이 창을 하는 음악극인 것이다. 그래서 그후에 등장하는 ‘창극’이란 말이나 ‘국극’이란 말이 다 판소리인들이 판소리를 바탕으로 하는 음악극을 가리키는 용어로 사용되어 왔다. 그런데 요즘은 ‘창극’이라는 말이 서양음악에서 사용하는 뮤지컬이나 오페라와 다른 우리 나라 음악을 사용하는 전통적인 음악극을 가리키는 용어로 사용하게 되었다. 경․서도 명창들이 창작 창극으로 공연한 <남촌별곡(南村別曲)>도 창극이라는 명칭을 사용했었고 경기명창들이 만들어 공연한 <장대장타령>도 역시 창극이라는 명칭을 사용했었다. 그러니까 지금은 ‘창극’이라는 용어가 전통음악을 사용하는 음악극 모두를 가리키는 용어로 정착되어 가고 있는 시기라고 할 수 있다. 창극의 시발점 ‘협률사’ ‘협률사’라는 용어도 여러 가지 의미로 사용되었다는 것을 집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 그 유명한 이화중선도 남원에 협률사가 들어와서 공연하는 것을 보고 집을 뛰쳐나와 판소리의 길을 걷게 되었다고 했고 많은 명창들이 협률사의 순회공연에 대단한 감동을 받고 명창이 되어야겠다는 결심을 했다고 하는 얘기를 들었다. 그렇다면 협률사라는 명칭도 처음에는 1902년에 국고에 해당하는 왕실의 내탕금(內帑金)으로 지은 극장 이름이었는데 나중에는 송만갑의 협률사처럼 창극의 공연 단체를 가리키는 용어로 사용되었던 것을 알 수 있다. 박황은 ‘협률사’라는 용어가 중국인들이 쓰는 ‘협률창희(協律唱戱)’에서 온 말이라고 설명한 바 있는데 백현미도 협률사라는 용어의 한자가 ‘協律社’나 ‘協律司’로 쓰이고 있어서 그 뜻이 극장을 가리키는 것인지 무슨 회사와 같은 단체를 가리키는 것인지 아니면 어떤 조직의 한 부서를 가리키는 것인지 분명치 않다고 한 바 있다. 어쨌든 협률사라는 용어는 우리네의 창극이 처음 출발하는 출발점과 함께 나타나는 중요한 용어이고 그 뜻이 다양하게 사용되었던 것은 틀림없다. 때문에 가능하면 협률사의 의미를 어느 정도 파악하는 것이 필요하고 창극이라는 명칭도 제대로 알고 사용하면 좋으리라고 생각된다. 역사란 과거의 기록이지만 미래를 위하여 꼭 알아야 하는 것이다. 창극을 제대로 발전시키기 위해서도 반드시 창극이 걸어 온 역사를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오늘날의 창극이 어떤 과정을 거쳐서 그렇게 형성되었는지 미래의 창극은 어떻게 가꾸어 가야하는지를 알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창극이 걸어 온 역사를 재조명해 보고 반성하고 비판하면서 새 시대에 맞는 창극다운 창극 만들기에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故 최종민교수 (철학박사, 국립극장예술진흥회 회장, 동국대문화예술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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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08-31
  • 국악 전주대사습 신설 '창작국악경연' 첫 우승 '소릿결'
    '제37회 전주대사습놀이 전국대회'가 신설한 '2012 창작국악경연'의 첫 우승은 '소릿결'(대표 김희성)에게 돌아갔다. 총 26팀이 예선을 거쳐 본선에 오른 10팀 중 '소릿결'의 '로또 당첨을 위한 주문'(돈타령)은 심사위원단(위원장 최상화 중앙대 교수)의 압도적 지지를 받았다. 민요·판소리·정가 전공자 등이 만나 새로운 소리 결을 만든다는 뜻에서 2008년 창단된 '소릿결'은 국악 아카펠라 그룹. 지난 몇 년 간 멤버들이 들락날락하면서 부침은 겪었지만, 88년생 이건형 씨부터 69년생 민경아 씨까지 아우른 현 대오는 지난해 마련됐다. 본래 피아노 반주에 맞춰 노래를 불러온 '소리결'은 이번 경연이 제시한 참가자격 따라 가야금·대금·피리·장구 등을 급조해 나왔다. 김희성 대표는 "'흥보가'의 '돈타령'에서 착안했다"면서 "요즘 사람들의 최대 관심사가 돈 아니냐. '로또 한 방'을 통한 인생 역전을 꿈꾸는 현대인들의 심정을 풍자했다"고 했다. 막내 이건형 씨는 "이 곡으로 2008년부터 수많은 무대를 서봤지만, 이렇게 객석과 무대가 가까운 무대는 극히 드물었다"면서 "관객들 표정을 보면서 한 사람이라도 더 웃게 만들어야겠다는 각오로 끝까지 최선을 다했더니 좋은 결과가 나온 것 같다"고 했다.1등한 '소릿결'은 상금 700만원과 상패, 2등을 차지한 '그리音'은 상금 300만원과 상패, 3등을 하게 된 '불세출'은 상금 100만원과 상패를 받았다. 상금 100만원과 상패를 받는 관객상은 'Sori愛'에 돌아갔다.하지만 심사위원단은 이번 '창작국악경연'을 두고 정체성이 애매하다는 지적도 했다. 순수 국악기(개량악기 포함)를 사용한 창작 연주곡을 대상으로 한 이번 경연은 반주가 있는 노래곡도 포함되면서 '21세기 한국음악프로젝트' 등과 같은 기존 대회와 차별성이 없어져 경연의 성격을 고민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전북일보 해당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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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08-30
  • 판소리, 외국인도 쉽게 즐긴다… 춘향가 등 다섯 바탕 사설집 내고 영문 자막 완성 국악
    “역사와 문화적 배경이 다른 외국인을 이해시키기 위해 적절한 영어 표현을 찾는 것이 가장 어려웠습니다.” 전북 군산대 최동현 교수 연구팀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판소리에 대해 최근 ‘춘향가’ ‘심청가’ ‘흥보가’ ‘수궁가’ ‘적벽가’ 등 판소리 다섯 바탕의 사설집과 국·영문 자막을 완성했다고 6일 밝혔다. 연구팀은 판소리 다섯 바탕의 사설집을 발간하고 이를 영문으로 번역해 국·영문자막을 제작했다. 판소리 공연 중에 관객들에게 국·영문 자막을 제공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는 문화체육관광부와 전주세계소리축제의 지원을 받아 5년에 걸친 장기프로젝트로 완성한 쾌거로 평가되고 있다. 판소리는 고전 문체와 한자성어 등 생소한 표현들이 많아 외국인들이 이해하기 쉽지 않은 점이 판소리 세계화의 걸림돌로 지적됐다. 그러나 이번 영문자막의 완성으로 1인 오페라 판소리가 세계무대로 나갈 교두보를 마련한 셈이다. 영문 번역된 판소리 사설집은 영어 이외의 외국어로 판소리를 번역할 때 참고자료로 활용될 수 있다. 지난해 열린 ‘2011전주세계소리축제’에서 김경호 명창의 적벽가, 장문희 명창의 심청가 공연 중에 국·영문 자막을 시연한 바 있다. 연구팀은 판소리 한 바탕 당 평균 6개의 바디(판소리의 버전)를 수집했고, 5년간 매년 평균 300쪽 분량의 책 4권씩을 번역해 모두 21권의 사설집을 편찬하는 작업을 거쳤다. 최 교수는 “판소리가 이야기를 전달하는 예술인 만큼 오페라처럼 세계인의 사랑을 받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줄거리를 전달해 줄 영문자막이 필요하다고 생각해 사업을 제안했다”고 말했다. -->쿠키일보 기사 원문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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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08-29
  • 창극의 스타와 판소리명창
    창극은 스타의 산실이었다. 초창기에는 판소리로 이름 높은 명창들이 창극을 시도했기 때문에 김창환·이동백·송만갑은 그 자체 스타이고 명창이었다. 정정열까지도 명창이 스타가 된 경우이지만 오태석은 조금 달랐다. 오태석은 판소리명창으로 보다는 창극의 스타로 유명했다. 그가 출연한 춘향전(방자역)이나 수궁가(원숭이역) 등에서는 관객들이 오태석의 연기를 보기 위해 극장을 찾을 정도로 인기가 높았다. 여성국극이 성공할 수 있었던 것도 박귀희·김소희(햇님·달님) 같은 스타가 있었기에 가능했고 그 후의 임춘앵이나 김진진·김경수도 명창이라기 보다는 스타성으로 크게 명성을 떨쳤다. 반대로 임방울은 대단한 명창이었지만 창극에서는 스타가 되지 못한 경우이다. 하여 창극의 스타와 판소리명창은 약간 차이가 나는 개념이라는 것을 전제로 이야기를 엮어 보기로 하겠다. 1962년 국립국극단이라는 이름으로 지금의 국립창극단이 만들어 질 때에는 영화나 TV 등 새로운 공연물이 늘어나면서 판소리와 창극이 극도로 위축된 시기였다. 이 무렵 김창구를 비롯한 국립극장 관계자들이 창극과 판소리를 함께 보호 육성할 방안으로 국립창극단을 만들었다. 김연수가 초대 단장을 맡고 당시 한 참 활동하던 김소희·박초월·박귀희·김경애·김득수·강종철·김정희·남해성·박봉선·박초선·임유앵·장영찬·정권진·한농선·한승호·허희 등이 단원으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이들 중 몇 사람에 대해서는 창극과 판소리에 공헌한 점을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우선 단장을 맡았던 김연수(1907~1974)에 대한 얘기부터 해 보겠다. 김연수는 일제강점기 ‘쑥대머리’ 한 방으로 스타가 된 임방울과 쌍벽을 이루며 창극과 판소리 두 분야에 크게 공적을 남긴 인물이다. 그는 어려서 한문을 배워 유식한 편이었고 성격이 따지기를 좋아하고 남에게 지기 싫어하는 성품이라 많은 일화를 남긴 사람이다. 29세의 늦은 나이에 순천의 성군수 집에서 유성준에게 수궁가를 배울 때 선생님이 가르쳐주는 수궁가의 가사가 틀렸다고 우겨서 유성준이 그 곳을 떠나게 했다는 얘기가 유명하고 그 일 때문에 서울로 올라와서 조선성악연구회에 출입하게 되었다. 이 무렵 조선성악연구회에는 정정열이 있어서 창극좌를 만들어 창극을 재건하고 흥행에 성공을 거둘 때인데 김연수는 그 단체에 끼어 활동하면서 본인도 나중에 정정열처럼 창극을 각색·연출·작창 할 수 있는 능력을 가져야겠다는 포부를 가지게 되었다고 한다. 김연수는 그런 생각을 가진 사람이었기 때문에 그 후에도 늘 지도자의 위치에서 단체를 운영하기도 하고 판소리를 새롭게 만들어 보려 애썼는데 그 결실의 하나가 국립창극단이 출범했을 때 단장이 되어 판소리를 창극으로 각색·작창·연출하는 일이었다. 그리고 판소리도 본인의 미학에 맞게 사설과 곡조를 다시 짜서 새로운 판소리를 만들었다. 본인은 춘향가만 발표했었고 나머지는 모두 오정숙이 차례차례 완창으로 발표했는데 수궁가를 완창하기 직전 김연수는 작고하고 말았다. 오늘날 동초제 판소리라고 하는 춘향가·심청가·흥보가·수궁가 등은 오정숙이 공을 들여 퍼뜨려 전주지역을 중심으로 전국에 퍼져나가고 있는데 오정숙의 제자 이일주·조소녀·민소완(성준숙)·김소영 등이 거점이 되어 활발하게 전수하고 있다. 김연수는 토막창극을 재미있게 각색하여 무대에 올린 것으로도 유명한데 지금 그런 작품은 대부분이 전승되지 않고 있다. 판소리로 1964년 인간문화재가 되기도 했던 김연수는 판소리 작품 여러 바탕을 남겼고 많은 창극작품을 무대에 올렸던 초대 국립창극단의 단장이었다. 김소희(1917~1995)는 13~4세 때부터 소녀명창으로 당시 경성방송국에서 판소리 한 대목을 방송할 정도로 실력을 인정받았다. 1935년 콜롬비아레코드에 취입하기 위해 정정열 일행으로 일본에 갈 때는 일행이 정정열·이화중선·임방울·박록주·신숙·한성준이었으니 김소희가 최연소 10대 후반의 나이였다. 김소희는 송만갑·정정열·박동실 등에게 판소리를 배우고 가곡과 거문고·가야금·양금 등을 배워 국악전반에 실력을 갖추고 있었다. 어려서부터 총명하고 무엇이든지 잘 하면서 공부하기를 좋아하여 한문과 서예를 신호열선생에게 배워 서예작품이 국전에 3년이나 입선하는 개가를 올리기도 했다. 이런 학습과 경륜을 가진 김소희였기 때문에 창극과 판소리에 기여한 공적 또한 적지 않다. 해방 후 여성국극이 폭발적인 인기를 누리는 시기가 있었다. 그런데 그 기폭제가 된 것은 박귀희와 김소희가 출연한 햇님·달님이라는 작품이었다. 그 작품은 실제 박귀희와 김소희를 모델로 하여 김아부가 대본을 만든 것으로 대중들의 대단한 성원을 받았고 박귀희는 남자역할로 굉장한 스타덤에 올랐었다. 박귀희를 실제 남자로 착각하고 사모하는 여성들이 줄을 이어 찾아다닐 정도로 유명했었다. 그처럼 여성국극 붐을 만들었던 김소희는 그 후 국립창극단의 여러 창극작품을 작곡하는 작창을 맡아 하기도 했다. 김소희가 한 일은 여러 방면에 걸쳐 참으로 다양하고 많다. 여성국악동호회를 만들어 활동했고 그들이 힘을 합쳐 국악예술학교를 만들고 이사장을 한 일이라든지 말년에 국악협회 이사장을 한 일 등도 중요한 일이다. 그러나 그가 남긴 가장 큰 업적은 판소리의 격을 높이고 판소리를 국내·외에 선양한 일이라 하겠다. 해방공간에서는 건국의 핵심인사들과 미군정청 관계자들이 회식이라도 하게 되면 김소희·박귀희 등이 그런 자리에 나아가 판소리와 가야금병창을 들려주곤 했는데 그것이 한국의 문화를 알리는 중요한 일을 하는 것이었다. 또 1962년에는 한국민속예술단의 일원으로 파리를 비롯한 유럽 여러 나라를 순회 공연했고 1964년에는 삼천리가무단의 일원으로 미국 여러 도시를 순회 공연했다. 1972년 봄 뉴욕 카네기홀에서는 판소리 연주도중 청중들이 기립박수를 할 정도로 크게 감동을 주기도 했는데 서울에 돌아 온 다음 나에게 “저들은 한국말을 모르면서도 판소리에 그처럼 감동을 받는데 한국 사람들은 왜 그런 음악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지 모르겠어요.”라고 했었다. 김소희는 명창으로서의 프라이드도 대단했다. 그는 13세에 판소리를 시작한 것으로 잡고 있기 때문에 63세되던 1979년이 국악생활 50주년이 되는 해였다. 한국 최초로 김소희는 국악생활 50주년 기념공연을 세종문화회관 소강당에서 최종민의 사회로 뜻 있게 잘 마쳤다. 그런데 그 후 김소희명창은 큰 무대에 서지 않으려 했다. 내가 왜 그러느냐고 말하면 “나는 명창으로서의 자존심이 있습니다. 내 소리가 나의 마음을 따라 주지 않아 제대로 고음이 나지 않는데 나의 청중들에게 실망스러운 내 모습을 보여줄 수 없습니다. 그래서 무대에 서지 않으려는 것이니 그리 아세요.”하는 것이었다. 참으로 깨끗하고 고고한 김소희명창의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제자 복이 없다고 한탄 한 적이 있다. 제자들 중 오정숙은 김연수에게 가고 성창순은 정응민에게 가고 안향련·김동애·박소영은 고인이 되었다. 신영희·안숙선·박윤초·유수정·이명희·한정하·이영태·오정해·김미숙 등이 판소리의 길을 가고 있을 뿐이다. 국립창극단 출신의 명창을 꼽으라면 박동진을 빼 놓을 수 없다. 박동진은 1975부터 1979까지 제2대 국립창극단단장을 한 명창이다. 박동진도 어린 시절은 판소리를 공부했지만 먹고 살 방도가 없어 지방의 소리선생이나 여성국극단의 반주악사(장구)등을 하면서 살았지만 1962년부터 1972년까지 국립국악원 악사로 있으면서 정력적인 판소리독공을 계속하여 최초로 대중을 상대로 한 흥보가 완창공연을 통해 판소리 중흥에 불을 지핀 인물이다. ‘68년에 흥보가를 5시간에 걸쳐 완창하고 ’69년에는 춘향가를 8시간 동안 완창으로 명동국립극장에서 공연했다. 이 후 박동진은 언론이 주목하는 판소리의 대명사처럼 되었고 계속된 ‘70년 심청가(6시간),’71년의 수궁가(5시간), 적벽가(6시간)완창으로 그는 ‘73년에 판소리의 인간문화재가 되었다. ’70년에는 성서판소리 ‘예수전’과 ‘팔려간 요셉’등을 발표하여 한국기독교음악의 새로운 지평을 열기도 했다. 이 후 ‘성웅 이순신’ 같은 장편의 서사시는 직접 사설을 짓고 작창 하여 녹음하는 등 판소리 역사에 빛나는 업적을 많이 남겼다. 판소리를 들으러 오는 청중이면 어떤 청중들이라도 쉽고 재미있게 판소리를 감상할 수 있도록 현장에 맞는 소리를 척척 만들어 불러주는 창조능력을 가진 명창이었다. 청중을 울리고 웃기는 능력을 충분이 가지고 있었던 명창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무대에서 즉흥적으로 가사를 만들고 내용을 꾸려서 멋지게 전달하는 실력은 누구도 따를 수 없는 최고의 명창이었다. 박동진에 버금가는 여류명창으로는 오정숙(1935~2008)을 꼽을 수 있다. 박동진이 완창으로 명성을 떨치게 되자 오정숙도 판소리 완창에 도전하게 된다. ‘72년에 춘향가, 73년에 흥보가, 74년에 수궁가, 75년에 심청가를 완창했는데 여류명창이 이처럼 여러 바탕의 판소리를 완창으로 발표한 것은 오정숙이 최초이다. 박동진이 본인의 판소리를 발표했다면 오정숙은 그의 스승 김연수의 작품을 발표한 것이 다를 뿐이다. 이 판소리들은 오늘날 김연수의 호를 따서 동초제 판소리라 부르고 지금 전주를 중심으로 오정숙의 제자들이 잘 전수하고 있다. 오정숙은 1977년부터 90년대 말까지 20여년 국립창극단에 있으면서 많은 배역을 멋지게 해 내었지만 특히 춘향가의 월매 역은 따를 사람이 없을 정도로 명연기를 보여주는 명배우였다. 소리와 연기가 모두 완벽에 가까울 정도 야무지게 활동했던 명창·명배우였던 분이 바로 오정숙이라 할 수 있다. 조상현도 국립창극단 출신의 명창으로 빼 놓을 수 없는 사람이다. 1939년생인 그는 1971부터 1982까지 국립창극단에 있었고 늘 주연을 하며 창극의 대중화에 기여했었다. ‘70년대 말에는 MBC. TV에 창극 프로그램을 만들어 계속 출연하면서 시청자들의 인기를 얻기도 했었다. 무엇보다 그는 한국 최고의 명창이다. 정응민에게 배운 판소리 춘향가·심청가·수궁가를 주로 부르고 박녹주에게 배운 흥보가를 부를 수 있긴 하지만 정응민이 흥보가를 부르지 않아서인지 조상현도 흥보가를 자주 부르지는 않는다. 그의 장기는 춘향가·심청가·수궁가라 할 수 있다. 그는 어떤 청중이라도 “야 - ! 판소리가 참으로 멋있구나.” 할 정도로 감동을 줄 수 있는 명창이다. 발성이 완벽에 가깝고 세세상청을 통성으로 낼 수 있는 유일한 명창이다. 배운 판소리의 작품성이 높기 때문에 본인이 손 댈 필요가 없기도 하지만 본인의 생각(미학)이 멋대로 뜯어고치는 것을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배운 그대로 부르는데 완성도가 높은 판소리를 부른다. 그는 광주광역시 국극단을 만들어 오래 단장으로 있었고 사단법인 판소리보존회 회장으로 역시 오래 활동했다. 다른 명창들처럼 판소리를 개인지도형식으로 한 사람씩 가르치는 교수보다는 다수를 모아놓고 그룹지도처럼 가르치는 강의 식 판소리 교습으로 유명한데 그렇게 가르친 제자들이 수 백 명에 이른다. 조상현은 판소리명창으로 최고의 명창이지만 창극의 배우로서도 최고의 배우라 할 수 있다. 춘향전의 이도령역이나 심청가의 심봉사역을 특히 잘 하고 무슨 역이든지 척척해내는 명배우이다. 내가 국립창극단 출신의 명창들을 몇 사람 소개하는 것은 지금의 후학들이 이런 선배들의 여러 가지 특징 중에 무엇이라도 참고하여 각자의 미래를 더 훌륭하게 설계하고 더 열심히 공력을 쌓았으면 하는 소망이 있어 소개하는 것이다. 지면관계로 너무 간략하게 다룬 것을 죄송하게 생각한다. 故 최종민교수 (철학박사, 국립극장예술진흥회 회장, 동국대문화예술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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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08-15
  • [런던올림픽 응원] 유태평양, 런던서 판소리 공연
    "판소리 공연을 통해 한국의 멋을 세계에 알리고 선전하는 우리 선수들에게도 힘을 보태겠습니다." '국악 신동'에서 대한민국 국악계를 이끌 유망주로 손꼽히는 유태평양(20. 전북대 한국음악학과 2년)씨가 우리 소리를 세계에 알리고 올림픽 선수단 응원을 위해 런던올림픽 현장을 찾는다. 정읍이 고향인 유군은 생후 28개월째인 1994년 전남 도립국악단의 정기공연 '별주부전'에서 사물놀이로 무대에 선 '국악 신동'. 두 살 때부터 인간문화재 조통달 명창을 사사하고 100차례가 넘는 공연을 했으며 1998년 10월에는 여섯 살이라는 한국 판소리 사상 최연소 나이로 3시간에 걸쳐 흥보가 완창 무대를 여는 등 갖가지 기록을 남겼다. 전북대는 유씨가 경기도 고양시 문화재단과 함께 8월 4∼13일 런던에서 전통 타악기 연주자들과 '유태평양 트리오'를 결성, 판소리를 비롯해 외국인들에게 호응을 받는 다양한 국악 공연을 선보인다고 1일 밝혔다. --> 해당뉴스 더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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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악인소식
    2012-08-11

공연소식 검색결과

  • 국립민속국악원, 2023 판소리마당 소리판 꿈나무 무대 개최 (2월 4일, 11일, 18일 토요일)
    □ 국립민속국악원(원장 왕기석)은 2월 4일, 11일, 18일 토요일 2시, 안숙선명창의여정 내 국악체험실에서 2023 판소리마당 <소리 판-꿈나무무대>를 개최한다. <소리판- 꿈나무무대>는 소리의 본 고장인 남원에서 전통 소리꾼 인재 발굴 및 판소리 저변확대에 기여하고자 2021년부터 지속적으로 개최하는 기획공연이다. https://namwon.gugak.go.kr (국립민속국악원 홈페이지)□ 판소리마당 <소리 판-꿈나무무대>는 지난해 12월 공모를 통해 초,중고등학생 소리꾼 9명을 선발했다.□ 2월 4일 홍가연(중1/흥보가), 전서은(초5/적벽가), 조찬주(고2/춘향가)의 무대를 시작으로 11일은 김상아(중2/흥보가), 권규리(초4/흥보가), 조영종(중3/춘향가)이, 18일은 박혜인(고1/심청가), 서예지(초4/춘향가), 남규민(중2/흥보가)이 출연한다.□ 자세한 사항은 국립민속국악원 누리집에서 확인할 수 있으며, 전화(063-620-2329) 또는 국립민속국악원 카카오톡 채널(상담원과 대화)을 통해 예약할 수 있다.
    • 공연소식
    • 광주,전라
    2023-02-13
  • 12월 21일~23일 민속극장 풍류 - The story 인간문화재 '신영희'
    1. 공연명 : 「The story 인간문화재 신영희」2. 일시 : 2022. 12. 21.(수)~23.(금)3. 시간 : 19:304. 장소 : 서울 민속극장풍류 ▶ 지도보기5. 가격 : 전석 10,000원6. 신청 : 네이버 예약(검색 : The story 인간문화재 신영희)https://booking.naver.com/booking/12/bizes/598814/items/47622567. 주최 : 한국문화재재단8. 예약문의 : 02-3011-17289. 공연소개○ 국가무형문화재 판소리 보유자 신영희의 소리 인생 이야기를 스토리가 있는 드라마 내용으로 구성한 공연○ 소리꾼으로 살아온 70년 세월의 고된 여정과 삶을 봄․여름․가을․겨울 사계절에 이미지화하여 표현 <프로그램>○ 봄(어린 신영희) : 어린 신영희에 대한 아버지의 사랑 이야기- 판소리 곡 : 흥보가- 출연 : 변서영, 신영희○ 여름(젊은 신영희) :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의 집안의 가장 역할과 결혼 후 남편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변하지 않는 판소리에 대한 열정 이야기- 판소리 곡 : 심청가- 출연 : 신시온, 신영희○ 가을(중년 신영희) : 성공한 후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 판소리 곡 : 심청가- 출연 : 김백송, 변서영○ 겨울 그리고봄(현재 신영희) : 세월이 무상하지만 변하지 않는 판소리에 대한 열정- 판소리 곡 : 흥타령, 춘향가- 출연 : 변서영, 신시온, 김백송, 신영희<출연진>○ 신영희(국가무형문화재 판소리 보유자)○ 김백송(국가무형문화재 판소리 이수자)○ 김장호(전 국립극단 단원, 연극 이층의 비밀)○ 신시온(뮤지컬 넌센스, 로미오와 줄리엣, 연극 보잉보잉)○ 변서영(제18회 사천 수궁가 전국 판소리 고법 경연대회 초등부 대상)
    • 공연소식
    • 서울
    2022-12-15
  • 12월 8일 서울 문화공간 아이원 - 2022 운당풍류 '김선이' 동초제 흥보가
    1. 공연명 : 2022 운당풍류 '김선이' 동초제 흥보가2. 장소 : 서울 금천구 문화공간아이원 ▶ 지도보기3. 날짜 : 2022년 12월 8일 (목요일)4. 시간 : 오후 7시 30분 5. 티켓료 : 전석 20,000원6. 문의 : 02-3286-00777. 공연정보 더보기 ▶ 인터넷 예매하기 ◆ 출연진 : ▶ 김선이 프로필 , 사회 고정균, 박시양, 이은비, 조문주 등
    • 공연소식
    • 서울
    2022-12-02
  • 전남 고흥군 11월 29일, 국악기획공연 '지향의 국악산책' 선보여 (지향전통예술회원,박애숙 등 출연)
    2022년 11월 29일 (화) 15:00 고흥종합문화회관 김연수실에서 공연 고흥군(군수 공영민)은 오는 11월 29일 오후 3시 고흥문화회관 김연수실에서 기획공연으로 ‘지향의 국악 산책’ 막을 올린다고 밝혔다. ‘지향의 국악 산책’은 고흥에서 활동 중인 명창 지향전통예술보존회 라경자 이사가 고흥의 전통예술 발전을 위해 노력한 성과를 다양한 작품으로 선보이는 공연이다.이날 공연은 ▲흥양아리랑 ▲가야금병창 ‘방아타령’ ▲한국무용, ’지전춤’, ▲판소리, ‘흥보가’ ▲퓨전국악가요, ’쑥대머리‘와 ’너영나영’ ▲시나위연주, 대금·아쟁 병주(倂奏) ▲육자배기 ▲사물놀이로 진도북춤, 김병섭류 설장구 등 뛰어난 국악으로 꾸며진다.출연진은 지향전통예술회원을 비롯해 박애숙 가야금병창을 포함한 무형문화재 이수자 7명, 전통연희예술단 굴렁쇠, 보성아리랑예술단 등 뛰어난 실력을 갖춘 국악인으로 구성돼 관심을 모으고 있다.공연 관람료는 1인당 1,000원이며 각 읍·면사무소, 고흥 작은영화관에서 예매할 수 있으며 공연당일에는 고흥문화회관에서 구매할 수 있다.고흥군 관계자는 “이번 국악 공연은 라경자 명창이 공을 들여 준비한 공연으로 뛰어난 국악인들이 대거 출연한다”며 “많은 군민이 흥겨운 공연에 함께해 우리 국악의 흥과 열정을 즐기길 바란다”고 전했다. 고흥군 문화예술과 (문화예술 ☎ 061-830-6716)
    • 공연소식
    • 광주,전라
    2022-11-25
  • 11월 13일 한국문화의집 KOUS - 류가양 완창 강도근바디 '흥보가'
    1. 공연명 : 류가양 완창공연 本 vol.1 〈흥보가〉2. 장소 : 서울 강남구 한국문화의집 코우스 (KOUS) ▶ 지도보기3. 날짜 : 2022년 11월 13일 (일요일)4. 시간 : 오후 3시 5. 티켓료 : 전석 20,000원6. 문의 : 1544-155557. 공연정보 더보기 ▶ 인터넷 예매하기◆ 출연진 : ▶ 류가양 프로필, 고수 김태영
    • 공연소식
    • 서울
    2022-11-08
  • 국립민속국악원 '제4회 대한민국 판놀음' - 7월 6일(수)부터 8월 6일(토)까지 총 10회 공연
    창극과 이 시대 예인들의 축제가 열린다- 춘향문화예술회관에서 창극<춘향전>을 시작으로, 별별창극 8작품,<명불허전>등 총 10회의 공연을 선보인다.- 지리산 소극장에서 매주 목, 금요일 명창들의 완창무대 <소리 판>도 이어져 □ 국립민속국악원(원장 왕기석)은 오는 7월 6일(수)부터 8월 6일(토)까지 춘향문화예술회관, 지리산소극장에서 창극과 명인, 명무, 명창의 무대인 <제4회 대한민국 판놀음>을 개최한다. □ 7월 6일(수) 오후 7시 춘향문화예술회관에서 개막공연으로 국립민속국악원 대표작품인 ‘춘향전-몽룡을 기다리며’가 무대에 오른다. 당대를 대표하는 류기형(연출), 왕기석(작창), 이태백(음악), 채향순(안무)가 제작진으로 참여했다. 이 작품은‘춘향전’의 무게중심을 춘향과 이도령에서 여섯기생(六妓)로 옮겨와서 도전적으로 꾸며낸 작품이다. 육기는 도창으로 참여하여 춘향이 생각하는 평등한 세계를 알려주고 약속을 소중하게 생각하며 진정한 사랑을 추구하는 몽룡을 제시한다. □ ‘별별창극’은 공모를 통해 선정된 민간단체 8개의 창극 작품이 펼쳐지는 무대이다. 참여하는 단체는 중견부터 신예에 이르기까지 전통에 기반을 두고 새롭게 해석해낸 창극에서부터 서양의 고전을 창작 창극으로 꾸민 무대, 그리고 연희창극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7월 9일(토) 창작하는 타루의 ‘두아-유월의 눈’, 13일(수) 문화예술협동조합 섬진강의 ‘가인춘향’, 16일(토) 연희점추리의 ‘백수지왕’, 20일(수) 거꾸로 프로젝트의 ‘3색소리극-흥보가 비하인드 스토리’, 23일(토) 랑커뮤니케이션의 ‘토선생, 용궁가다’, 27일(수) 입과손스튜디오의 ‘판소리 레미제라블’, 30일(토) 아트프랫폼 동화의 ‘광대가 리골레토’, 8월 3일(수) 판소리 앙상블 하랑가의 ‘콜비츠와의 대화’가 공연된다. 공연 시간은 평일은 오후 7시, 토요일은 오후 3시이며, 공연 장소는 춘향문화예술회관이다. □ ‘소리 판’ 무대는 지리산 소극장에서 오후 3시에 개최된다. 오롯이 판소리 완창무대를 감상할 수 있는 무대로 7월 7일(목)은 우정문의 ‘한승호제 적벽가’, 8일(금)은 허애선의 ‘강산제 심청가’, 14일(목)은 유하영의 ‘박초월제 수궁가’ 15일(금)은 서진희의 ‘강산제 심청가’, 21일(목)은 한금채의 ‘강산제 심청가’, 22일(금)은 김송의 ‘김세종제 춘향가’, 28일(목)은 최영란의 ‘동초제 춘향가’, 29일(금)은 김금희의 ‘박초월제 흥보가’ 로 총 8명의 명창의 무대가 열린다. □ 8월 6일(토) 폐막공연은 대한민국의 대표 예인들이 함께 어우러지는 종합무대로 구성되는 최고의 무대이다. 김무길(거문고), 송화자(가야금), 원장현(대금), 한세현(피리), 김영길(아쟁), 이동훈(해금), 정화영(고수)명인이 함께 여는 ‘시나위’연주를 시작으로 안숙선, 김일구 명창의 ‘판소리’, 국립민속국악원 연주단의 기악합주‘걸음마다 꽃이피소’, 문정근, 진유림 명무의‘승무, 살풀이’, 왕기철, 왕기석, 유수정이 꾸미는 판소리 입체창‘흥보가 중 화초장 대목’으로 흥을 돋운다. 마지막 작품은 박양덕, 이난초, 김영자, 유수정, 박애리 명창이 함께하는 남도민요 ‘육자백이, 흥타령, 진도아리랑’ 이다. 반주에는 국립민속국악원 연주단이 참여한다. 공연장소는 춘향문화예술회관이며, 오후 4시에 개최된다. □ <제4회 대한민국 판놀음>은 7세 이상이면 관람이 가능하며, 관람문의 및 예약은 전화(063-620-2329) 혹은 카카오톡 채널(상담원과 대화)을 통해 가능하다.
    • 국악정보
    • 국악관련뉴스
    2022-07-05
  • 6월 3일 이탈리아 밀라노서 김정민 명창의 판소리 '적벽가' 완창 무대 열린다.
    김정민 명창이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한국 판소리의 정수를 선보인다. ▶ 김정민 프로필 김정민 명창은 오는 6월 3일 오후 7시 30분(현지 시간) 밀라노에 위치한 테아트르 달 베르메(Teatro Dal Verme )에서 ‘적벽가’ 완창 무대를 꾸민다. 김정민 명창은 지난 2019년 테아트로 안토니오 벨로니(teatro Antonio Belloni)에서 ‘흥보가’ 초연을 성황리에 마친 바 있으며2021년 12월 로마, 피렌체, 베네치아 등에서 ‘흥보가’ 순회 완창 공연을 이어갔다. 그 만큼 이탈리아에서 한국 전통문화에 대한 관심을 이끌어냈다. 김정민 명창이 이번에 오르는 테아트르 달 베르메는 1872년 개관한 공연장으로 1943년에 폭격됐다가 1946년 재개관을 거쳐 2001년 현대 공연장의 모습으로 개조한 밀라노를 대표하는 클래식 공연장 중 하나다. 테아트로 알라 스칼라(Teatro alla Scala), 아우디토리움 베르디(Auditorium Verdi) 등과 함께 밀라노의 3대 극장으로 불리며 객석은 1436석이다. ▶ 해당기사 더보기
    • 공연소식
    • 해외
    2022-05-16
  • 4월 2일 후생가외-두 번째 이영선 가야금병창 독주회 '흥보가 - 노닐다'
    1. 공연명 : 두 번째 이영선 가야금병창 독주회 '흥보가 - 노닐다'2. 장소 : 문화공간 아이원 ▶ 지도보기3. 날짜 : 2022년 4월 2일 (토요일)4. 시간 : 오후 4시 5. 티켓료 : 전석 10,000원6. 문의 : 02-3286-00777. 공연정보 더보기 ▶ 인터넷 예매하기◆ 출연진 : 이영선, 박영식, 이승연, 문하은
    • 공연소식
    • 서울
    2022-03-16
  • 2022 국립창극단 완창판소리 - 3월 12일 '왕기철의 박록주제 흥보가'
    1. 공연명 : 왕기철의 박록주제 '흥보가' 2. 장소 : 서울 장충동 국립극장 하늘극장 ▶ 지도보기 3. 날짜 : 2022년 3월 12일 (토요일) 4. 시간 : 오후 3시 5. 티켓료 : 전석 20,000원 6. 문의 : 02-2280-4114 7. 공연정보 더보기 ▶ 예매하기 ◆ 출연진 : ▶ 왕기철 프로필 , 고수 김규형·김학용, 해설·사회 유영대 이번에 왕기철 명창이 부를 ‘흥보가’는 송만갑-김정문-박록주-한농선으로 이어 져온 동편제 계열이다. 힘 있게 내지르는 시원한 소리이자 끝맺음이 간결하고 분명한 것이 특징이다. 왕기철 명창이 국립극장에서 ‘흥보가’를 완창하는 것은 2002년 이후 20년 만으로 더욱 기대를 모은다. 탄탄한 공력과 원숙한 경험을 바탕으로 소리 판을 압도할 왕기철 명창의 모습을 만나볼 수 있는 귀한 무대다.
    • 공연소식
    • 서울
    2022-02-28
  • 2월 27일 구미강동문화복지회관 - 윤상미의 박록주제 박송희바디 흥보가 완창판소리 공연
    1. 공연명 : 윤상미의 박록주제 박송희바디 흥보가 완창2. 장소 : 경북 구미시 강동문화복지회관 봉두아트홀 ▶ 지도보기3. 날짜 : 2022년 2월 27일 (일요일)4. 시간 : 오후 2시 5. 티켓료 : 전석 20,000원6. 문의 : 010-7753-25227. 공연정보 더보기 ▶ 인터파크 예매하기◆ 출연진 : 소리 ▶ 윤상미 프로필, 고수 ▶ 박근영 프로필
    • 공연소식
    • 대구,경북
    2022-0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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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악인프로필 검색결과

  • 강다은 프로필 - 가야금병창
    ☆ 강다은 프로필 사진 전공ㅣ분야 가야금병창 수련과정ㅣ학력 지현아, 정예진, 이선 선생 사사 전주예술고등학교 국악과 졸업수원대학교 국악과 졸업 활동 경력 국악앙상블 가온병창단 단원 2020 세종 한중국제영화제 맵시상 2021 서산 충청남도국악원 초청연주 2021 제주탐라문화재 대전대표 초청연주 2022 전주 조선팝페스티벌 공연2022 대전예술가의집 판소리5바탕 눈대목 출연2022 강다은 가야금병창 첫독주회 수상 경력 제4회 서천전국국악경연대회 일반부 대상제2회 흥타령전국국악경연대회 명창부 대상 (문화체육관광부장관상)제21회 창원전국국악경연대회 종합대상 (국회의장상) 홈페이지ㅣSNS 동영상 보기 https://youtu.be/83w55rQcGRg [강다은 가야금병창 첫독주회 '흥보가'] 기타 ◆ 본 국악인 프로필은 국악인 측에서 직접 제공한 자료 또는 공개된 정보를 토대로 정리한 내용이며, 공개된 정보를 수집, 정리한 것은 잘못된 정보를 포함할 수 있습니다.내용 수정 및 사진 교체, 혹은 삭제를 원하시는 경우에 연락 주시면 즉시 반영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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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나,다
    2023-02-07
  • 김완아 프로필 - 판소리
    ☆ 김완아 프로필 사진 전공ㅣ분야 판소리 수련과정ㅣ학력 조통달 선생 사사전주예술고등학교 졸업이화여자대학교 한국음악과 졸업 (판소리 전공)이화여자대학교 일반대학원 석사 졸업 (판소리 전공)이화여자대학교 일반대학원 박사과정 (판소리 전공) 활동 경력 김완아 미산제 흥보가 완창부암 영아티스트 김완아 판소리 발표회김완아 소리발표회 ‘素願’김완아 미산제 수궁가 완창전통국악사랑방 가례헌 ‘금요예술무대’ (2017년-2021년 총 90회)미국 LA한인음악회 및 필리핀 한인초청 공연 등현재 국악실내악팀 '다감' 동인가례헌예술단 단원 수상 경력 제26회 경기국악제 판소리 일반부 대상제21회 장보고국악대제전 판소리 일반부 대상제17회 숲쟁이전국국악경연대회 일반부 차상 홈페이지ㅣSNS https://ko-kr.facebook.com/wana9046 [김완아 페이스북] 동영상 보기 https://youtu.be/8_qi4QY6ClM [다감 - 흥 콘서트] 기타 2012년에 창립된 국악실내악팀 '다감'은 음악으로 관객들과 소통하고자 하는 연주자들이 모여 창단된 팀이다. ◆ 본 국악인 프로필은 국악인 측에서 직접 제공한 자료 또는 공개된 정보를 토대로 정리한 내용이며, 공개된 정보를 수집, 정리한 것은 잘못된 정보를 포함할 수 있습니다. 내용 수정 및 사진 교체, 혹은 삭제를 원하시는 경우에 연락 주시면 즉시 반영하도록 하겠습니다.
    • 국악인프로필
    • 가,나,다
    2022-11-05
  • 김지영 - 판소리
    ☆ 김지영 프로필 사진 전공ㅣ분야 판소리 수련과정ㅣ학력 진봉규, 한농선, 성우향, 송순섭 선생 사사국립전통예술고등학교 졸업중앙대학교 및 동대학원 한국음악학과 졸업 활동 경력 청주 극단꼭두광대 창립2022년 10번째 흥보가 완창판소리 공연 수상 경력 2000년 여수전남전국국악경연대회 일반부 입상2000년 종로전국국악경연대회 일반부 장원2002년 완산전국국악대제전 명창부 우수상2005년 국립극장 창작판소리경연대회 입상 (백두산다람쥐) 홈페이지ㅣSNS 동영상 보기 https://youtu.be/wliP13_zaHk [한농선제 흥보가 1부]https://youtu.be/NTYNN5u3Q7s [한농선제 흥보가 2부] 기타 논문 : 2007 한농선의 삶과 예술연구 ◆ 본 국악인 프로필은 국악인 측에서 직접 제공한 자료 또는 공개된 정보를 토대로 정리한 내용이며, 공개된 정보를 수집, 정리한 것은 잘못된 정보를 포함할 수 있습니다.내용 수정 및 사진 교체, 혹은 삭제를 원하시는 경우에 연락 주시면 즉시 반영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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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나,다
    2022-07-25
  • 이주현 - 판소리, 고수
    ☆ 이주현 프로필 사진 전공ㅣ분야 판소리고법, 고수, 판소리 수련과정ㅣ학력 권혁대, 오광오, 장보영 선생 사사 (판소리고법) 천희심 명창 춘향가, 故 남해성 명창 수궁가, 김화자 명창 흥보가, 허은선 명창 적벽가&심청가 사사남원국악예술고등학교 졸업전주 우석대학교 예술대학 국악과 졸업 활동 경력 현재 목포 장보영국악연구소 회원연리지예술단 회원 수상 경력 2014 서편제 보성소리축제 고수경연대회 일반부 대상포항천하명인국악제전 판소리 명창부 최우수상2021 제25회 송만갑 판소리고수경연대회 명고부 1위 (문화체육관광부장관상) 홈페이지ㅣSNS 동영상 보기 https://youtu.be/gdRNCjla62Q [소리 김찬미, 고수 이주현] 기타 ◆본 국악인 프로필은 국악인 측에서 직접 제공한 자료 또는 공개된 정보를 토대로 정리한 내용이며, 공개된 정보를 수집, 정리한 것은 잘못된 정보를 포함할 수 있습니다.내용 수정 및 사진 교체, 혹은 삭제를 원하시는 경우에 연락 주시면 즉시 반영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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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아,자,차
    2022-06-10
  • 강정희 - 가야금병창
    ☆ 강정희 프로필 사진 전공ㅣ분야 가야금병창 수련과정ㅣ학력 국가무형문화재 제23호 가야금산조 및 병창 이수자 활동 경력 한국국악협회 대전광역시지회 지회장 역임목원대학교 한국음악학부 외래교수 역임대전광역시 문화예술진흥위원회 위원소연병창단 단장 수상 경력 1997년 제23회 전주대사습놀이 가야금병창 부문 장원2002년 제27회 전국전통예술경연대회 대통령상 홈페이지ㅣSNS 동영상 보기 https://youtu.be/ofhuX_EN7Zc [흥보가 中 제비노정기] 기타 ◆ 본 국악인 프로필은 공개된 내용을 수집, 정리한 것으로 잘못된 정보를 포함할 수 있습니다. 내용 수정 및 사진 교체, 혹은 삭제를 원하시는 경우에 연락 주시면 즉시 반영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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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나,다
    2022-05-24
  • 안나 예이츠 - 판소리, 대학교수
    ☆ 안나 예이츠 (Anna Yates-Lu) 프로필 (1989년 독일 출생) 사진 전공ㅣ분야 판소리, 음악인류학, 대학교수 수련과정ㅣ학력 민혜성 선생에게 판소리 사사영국 스코틀랜드 세인트앤드루스대학교 (사회인류학전공) 졸업영국 런던대학교 아프리카·아시아연구원 (SOAS) 석사영국 런던대학교 아프리카 아시아 연구원 박사 (판소리에 관한 논문) 활동 경력 2018년 프랑스 엘리제궁(한·불 대통령 만찬)에서 프랑스소리꾼 로르마포(Laure Mafo)와 함께 판소리 공연현재 서울대학교 국악과 교수 수상 경력 2015년 프랑스에서 열린 유럽지역 판소리대회 'K-VOX Festival' 1등 홈페이지ㅣSNS 동영상 보기 https://youtu.be/98OwQSYOOL4 [흥보가 中 첫째박 타는 대목]https://youtu.be/wm8tYxLRdOM [판소리에 인생 바뀐 안나예이츠 서울대교수] 기타 독일인으로 영국에서 학창 시절을 보냈으며, 2020년 만31세의 나이에 서울대 국악과 최연소 조교수로 임용됐다. ◆ 본 국악인 프로필은 공개된 내용을 수집, 정리한 것으로 잘못된 정보를 포함할 수 있습니다. 내용 수정 및 사진 교체, 혹은 삭제를 원하시는 경우에 연락 주시면 즉시 반영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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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아,자,차
    2022-02-07
  • 유창선 (류창선) - 판소리
    ☆ 유창선 (류창선) 프로필 사진 전공ㅣ분야 판소리 수련과정ㅣ학력 남원국악예술고등학교 졸업한양대학교 국악과 졸업한양대학교 대학원 국악학과 재학국가무형문화재 제5호 판소리 흥보가 전수자 활동 경력 유창선 동편제 흥보가 완창발표회 (11살)정동극장 뮤지컬 '적벽' 노숙역사)정가악회 판소리대학전 (한양대 대표)신진국악실험무대 - 류창선의 그냥노래2009~2011 광주MBC얼씨구학당 고정패널2015 문화체육관광부 예술장학생2021 국립민속국악원 소리판 '류창선의 동편제 강도근바디 흥보가 완창발표회' 수상 경력 남원전국학생판소리경연대회 초등부 대상 어린이판소리왕중왕전 대상완산전국국악대제전 판소리 중등부 대상송만갑판소리.고수대회 고수 학생부 대상남해성전국판소리경연대회 중등부 대상진남전국국악경연대회 판소리 중.고등부 대상금파강도근전국판소리경연대회 중등부 대상팔마고수대회 학생부 대상 (교육부장관상)금파강도근판소리경연대회 고등부 대상송만갑판소리.고수대회 판소리 고등부 대상전국국악경연대회 판소리 고등부 대상남도민요경창대회 고등부 대상국창박초월전국판소리경연대회 고등부 대상남해성전국판소리경연대회 고등부 대상춘향국악대전 판소리 학생부 대상 (교육부장관상)동아국악콩쿠르 판소리 학생부 은상동아국악콩쿨 판소리 학생부 금상온나라국악경연대회 성악부분 금상 (문화체육관광부장관상) 홈페이지ㅣSNS 동영상 보기 https://han.gl/flmZN [앞날창창류창선 유튜브채널]https://youtu.be/excWTxTU1dI [판소리 수궁가 中 일개한퇴] 기타 2008년 광주월계초등학교 4학년때 판소리 ‘흥보가’를 3시간여에 걸쳐 완창하여 국악신동으로 많은 화제를 모았었다. ◆ 본 국악인 프로필은 공개된 내용을 수집, 정리한 것으로 잘못된 정보를 포함할 수 있습니다. 내용 수정 및 사진 교체, 혹은 삭제를 원하시는 경우에 연락 주시면 즉시 반영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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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1-15
  • 최은비 - 판소리
    ☆ 최은비 프로필 1994년생 사진 전공ㅣ분야 판소리 수련과정ㅣ학력 유수정 선생 사사국립전통예술고등학교 졸업한국예술종합학교 판소리 학사 중앙대학교 대학원 석사과정 재학 활동 경력 2018년 만정제 흥보가 완창판소리 공연2020년 미스트롯2 출연 수상 경력 제3회 박록주전국청소년국악경연대회 고등부 판소리 우수상2016 제21회 완산전국국악대제전 일반부 판소리 최우수상2017 제3회 세종대왕 전통예술경연대회 일반부 판소리 준우수상 홈페이지ㅣSNS 동영상 보기 https://youtu.be/MdoAUqBmGMw [흥보가 中 박타령]https://youtu.be/4ExsxJg5uGY [ 창밖의 여자 - 미스트롯2] 기타 ◆ 본 국악인 프로필은 공개된 내용을 수집, 정리한 것으로 잘못된 정보를 포함할 수 있습니다. 내용 수정 및 사진 교체, 혹은 삭제를 원하시는 경우에 연락 주시면 즉시 반영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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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1-07
  • 정미란 프로필 - 판소리
    ☆ 정미란 프로필 사진 전공ㅣ분야 판소리 수련과정ㅣ학력 성우향 선생 사사 (춘향가,심청가)박양덕, 안숙선 선생 사사임향림 선생 사사 (흥보가)조영숙 선생 사사 (발탈)용인대 국악과 졸업 단국대 교육대학원(음악교육)졸업국가무형문화재 제5호 판소리 춘향가 이수자국가무형문화재 제79호 발탈 전수장학생 활동 경력 사단법인 한국판소리보존회 분당지부 지부장 수상 경력 제37회 전국국악대전 판소리 일반부 대상 (국회의장상) 홈페이지ㅣSNS 동영상 보기 기타 ◆ 본 국악인 프로필은 공개된 내용을 수집, 정리한 것으로 잘못된 정보를 포함할 수 있습니다. 내용 수정 및 사진 교체, 혹은 삭제를 원하시는 경우에 연락 주시면 즉시 반영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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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12-27
  • 석지연 - 판소리
    ☆ 석지연 프로필 사진 전공ㅣ분야 판소리 수련과정ㅣ학력 경북예술고등학교 졸업이화여자대학교 음악대학 한국음악과 졸업이화여자대학교 일반대학원 한국음악과 석사졸업이화여자대학교 일반대학원 한국음악과 박사수료국가무형문화재 제5호 판소리 심청가 이수자대구광역시 무형문화재 제8호 판소리 흥보가 이수자 활동 경력 前 영남대, 대구교대, 계명대, 진주교대, 경상대, 경인교대 출강석지연판소리연구소 대표주식회사 메이커스플레이스 대표소정 성창순예술보존회 상임이사포항 무형문화재이수자협회 정회원영남판소리보존회 이사 수상 경력 제7회 서편제 보성소리축제 전국판소리경연대회 명창부 우수상제2회 명창 박록주전국국악대전 판소리 일반부 대상 (국무총리상) 홈페이지ㅣSNS 동영상 보기 https://youtu.be/-SIyLkLdEac [심청가 中 심봉사 황성가는 대목]https://youtu.be/NN6e9uqtsHk [춘향가 中 사랑가 대목] 기타 ◆ 본 국악인 프로필은 공개된 내용을 수집, 정리한 것으로 잘못된 정보를 포함할 수 있습니다. 내용 수정 및 사진 교체, 혹은 삭제를 원하시는 경우에 연락 주시면 즉시 반영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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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아,자,차
    2021-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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