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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DF] 부산, 경남지역 판소리 유파
- ↑다운 받으세요. 부산(釜山)․경남지역(慶南地域) 판소리 유파(流波) 부산(釜山)․경남지역(慶南地域) 출신(出身) 판소리 명창(名唱)은 조선시대(朝鮮時代)때에 극히 드물게 나왔던 것 같다. 주로 서남지역(西南地域)에 판소리가 전승(傳承)되어 이선유(李善裕)와 같은 명창(名唱)이 나왔던 것이다. 일제(日帝) 초기(初期)에는 송만갑(宋萬甲), 유성준(劉成俊), 이선유(李善裕), 이동백(李東伯), 정정렬(丁貞烈) 등이 잠시 진주(晋州), 마산(馬山) 등지에서 제자(弟子)를 길러 김녹주(金綠珠), 신금홍(申錦紅), 권금주(權錦珠), 신숙(愼淑) 등 여류명창(女流名唱)이 많이 배출되었다. 현재(現在) 부산(釜山)에는 많은 판소리 명창이 활동하고 있는데 거의 전라도(全羅道), 서울 등지의 타지(他地) 출신(出身)이다. 부산(釜山)을 제외한 기타(其他) 지역(地域)에서는 판소리 기능보유자들을 찾아보기 힘들었고 그나마 서남지역(西南地域)에 전승되던 이선유(李善裕)제도 전승이 끊어져 가고 있는 현실이다. 그러나 순천지역(順天地域)과 인접한 지역에서는 박봉술(朴奉述)제가 전승되고 있었음을 볼 수 있었다. 본조사(本調査)에 나타난 판소리 기능보유자들은 부산지역(釜山地域)의 김명심(金明心),김수련(金壽蓮) 김애란(金愛蘭), 김영애(金榮愛), 김정애(金丁愛), 신태형(申泰亨), 류정이(柳貞二), 이정화(李靜和), 조태용(曺兌庸), 지수복(池壽福), 최장술(崔長述), 한봉혜(韓鳳惠), 창원지역(昌原地域)의 박미숙(朴美淑), 울산지역(蔚山地域)의 김순례(金順禮), 마산지역(馬山地域)의 김망내(金望乃), 충무지역(忠武地域)의 박일진(朴一鎭), 사천지역(泗川地域)의 김재근(金在根), 선동옥(宣東玉)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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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DF] 부산, 경남지역 판소리 유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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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음악이 된 판소리
- 판소리는 2003년 11월 7일에 유네스코 세계무형문화유산으로 인정받았다. 우리나라의 전통음악이면서 세계의 음악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정작 한국 사람들이 판소리를 잘 모른다. 일부 사람들은 판소리를 좋아하고 판소리에 대한 지식도 꽤 갖고 있지만 대부분의 국민들은 판소리가 있다는 사실 정도를 알고 있지 그 이상을 잘 모르고 있다. 이번 강의는 그런 한국인들에게 최소한의 판소리 상식을 갖게 하고 판소리의 가치를 알게 하는 것이 목적이다. 1. 판소리의 토양 지금은 판소리가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되어 국가의 보호를 받는 것처럼 되어있지만 그 동안의 판소리는 철저히 자생력에 의해서 발달되어 왔다. 판소리의 자생력이란 결국 소리하는 사람(광대)들과 그 소리를 소비하는 서민 대중들과의 사의에서 형성된 것이고 그 소비층의 변화에 따라서 판소리의 내용도 변화되고 발전되었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판소리는 줄거리가 있는 긴 이야기를 성악적인 방법으로 연출해 내는 것이니까 그것을 발달시킨 수요자의 측면으로 눈을 돌리면 판소리는 수요자인 우리들이 옛날 얘기와 같은 ‘이야기’와 그것을 음악으로 표현하는 ‘소리’ 또는 ‘노래’를 좋아하는 성향이 있기 때문에 그 두 가지 요소가 만나면서 만들어낸 극음악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런 음악의 생성발달은 철저히 자연 발생적이고 우리의 생활이라고 하는 문화 속에서 이루어진 것이지 누구의 특별한 아이디어나 국가적인 정책에 의해서 형성된 것이 아니다. 수요자인 일반 대중과 공급자인 음악가의 상호 작용에 의해서 생성 발달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판소리의 기원에 대해서도 여러 가지 설이 나오게 된 것이다. 이보형 같은 학자는 판소리가 ‘판놀음’에서 나왔다고 본다. ‘판놀음’이란 여러 패의 놀이꾼들이 너른 마당을 놀이판으로 삼고 각기 ‘소리’나 ‘춤’ ‘줄타기’ 등을 한판씩 노는 것을 뜻하는데 이런 경우의 예능을 ‘판소리’ ‘판춤’ ‘판줄’과 같이 불렀을 것으로 보는 것이다. 하기는 지금도 판을 짜서 한판 노는 농악을 ‘판굿’이라 하고 그런 식으로 추는 춤을 ‘판춤’이라 하고 그런 식의 염불을 ‘판염불’이라 하니까 ‘판소리’도 한 판으로 짜서 판놀음에서 부르던 소리라고 하는 주장이 상당히 설득력을 가진다. 그런데 또 다른 견해도 있다. 무가(巫歌)기원설이다. 무당들이 하는 굿에는 서사적인 내용을 노래도 연출하는 무가가 많이 있다. 동해안 별신굿의 ‘심청굿’도 그렇고 경기 도당굿의 ‘손님굿’도 그렇다. 진도 씻김굿의 ‘제석굿’도 마찬가지이다. 모두 긴 이야기를 노래로 연출하며 듣는 이들에게 큰 재미를 안겨주기도 한다. 또 무가를 부르는 형태가 경기도와 전라도의 서사무가는 판소리 하는 것과 비슷하다. 특히 경기 도당(都堂)굿의 경우는 남자 무당이 북 장단에 맞추어 무가를 하는 것이 판소리하는 것과 똑 같은 형태로 보일 정도이다. 전라도 굿을 많이 본 사람들도 ‘판소리는 굿에서 왔을 것’이라고 느끼기 쉽게 되어있다. 서사무가의 연출방법도 비슷하고 음악적인 내용도 유사성이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판소리의 명창 대부분이 전라도 세습무 집안 출신이라는 것도 그런 짐작을 하게 하는 한 요인이다. 하긴 판소리는 전라도 무속 출신들의 전유물처럼 되어 있기 때문에 무속 출신 아닌 사람이 판소리를 할 경우 ‘비가비(非甲)’라 하여 실력을 낮추어 보려는 경우가 많은데 권삼득처럼 ‘비가비’이면서도 정말 소리를 잘하게 되면 ‘양반광대’라고 하여 높여 부르기도 한다. 이 ‘비가비’란 동류가 아니라는 뜻이고 그 동류란 무속이 아니라는 뜻이다. 이처럼 판소리의 기원에 대해서는 ‘판놀음 기원설’도 있고 ‘무가 기원설’도 있는데 또 다른 추측을 하는 경우도 있다. 굳이 이름을 붙인다면 ‘이야기꾼 기원설’이라고 할 수 있는데 전통사회 시절에는 이곳 저곳을 돌아다니며 ‘이야기’를 파는 이야기꾼이 있었다는 것이다. 이야기꾼은 ‘장화홍련전’이나 ‘춘향전’같은 재미있는 이야기를 구연해 주고 돈을 받아 생활하는 직업인이었다고 하니까 그들의 이야기 연출 솜씨도 대단했을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런데 그런 이야기꾼이 이야기를 말로만 했겠느냐 하는 것이다. 이야기를 하면서 노래도 하고 재미있는 표정도 짓고 춤도 추고했을 터이니까 그런 것이 발전하여 판소리가 되었을 것이라고 보는 것이다. 하기는 나도 ‘이야기꾼’이 있었다는 얘기를 들은 바 있고 그런 이야기꾼들의 구연 솜씨는 대단하다는 얘기도 들은 바 있다. 그러나 그것이 곧 바로 판소리로 연결 될 수 있을까하는 점에 대해서는 해결되어야 할 과정들이 너무나 많다. 어쨌든 판소리는 그렇게 이야기라는 문학적 요소와 노래라는 음악적 요소와 연출이라는 연극적 요소가 어우러져 발달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우리 서민 대중들의 여러 가지 욕구와 관련을 가지고 발달하는 판소리는 전라도 지역을 중심으로 발달하게 된다. 판소리를 음악으로 연출할 때의 중요한 요소가 ‘아니리’와 ‘소리’인데 ‘아니리’는 반드시 전라도 사투리로 하여야 하고 ‘소리’도 전라도의 민요 토리인 육자백이 토리의 계면조가 기저를 형성하고 있는 점을 보면 판소리는 전라도에서 자생하고 전라도를 배경으로 발달했다고 할 수 있다. 실제 전라도 사람은 판소리를 무척 좋아한다. 심지어는 국악은 곧 판소리를 가리킨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나는 ‘82년도에 전남대학교에 국악과를 만들고 초대 국악과장을 한 적이 있는데 그 때 전라도 시골에 민요채집을 가서 “저는 국악하는 사람 최종민입니다” 하고 인사를 하면 “그러먼 판소리 잘 허시것네요”하고 말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그 만큼 전라도 사람은 판소리를 국악의 전부인 것처럼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전라도 사람들이 판소리를 좋아하는 정도는 대단하다. 아무리 시골이라도 판소리 판이 벌어진다고 하면 사람들이 모여들고 전주 대사습이나 남원 춘향제에는 엄청난 인파가 몰려드는데 그들 대부분이 판소리를 들으러 오는 분들이라고 보아도 된다. 전주 실내체육관을 가득 메운 청중들이 판소리를 들으며 뿜어내는 열기는 자연 “얼씨구” “조오타”와 같은 추임새로 나타나게 되는데 그 추임새 하는 수준이 서울의 국악과에 다니는 학생들 보다 더 높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춘향제 때에 남원 광한루원에 모이는 청중들도 마찬가지이다. 심청가의 슬픈 대목에서는 눈물을 흘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흥겨운 중중모리 장단이 나오면 일어서서 덩실덩실 춤을 추는 사람을 쉽게 볼 수 있다. 전라도 사람들은 정말 판소리를 좋아하고 판소리에 대한 안목도 대단히 높다. 그래서 판소리하는 사람들을 좋아하고 판소리 명창 되는 것을 큰 영광으로 안다. 그러니까 자기 자녀들에게 판소리를 가르치는 사람도 많아져서 오늘날의 판소리는 전라도 출신들에 의해서 계승 발전되어 간다고 해도 될 정도이다. 결국 판소리의 발달 배경에는 우리 민족이 좋아하는 ‘이야기’와 ‘노래’ ‘연극’등의 요소가 있고 그것을 공연물로 가꾸어 온 전라도 사람들의 음악적인 안목과 사랑이 있었다는 것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2. 판소리의 큰 흐름 판소리는 시조나 가곡처럼 혼자서 유유자적으로 즐기는 노래가 아니다. 소릿군이 청중을 대상으로 소리를 파는 공급자와 수요자가 있는 노래이다. 시조나 가곡 같은 노래들은 청중을 생각하지 않는다. 노래 부르는 사람들 개인의 수양이나 교양을 위하여 하는 노래이기 때문에 수양과 관련되는 철학과 그것을 소리로 표현하는 표현방법을 모색하며 발달하게 되었다. 그래서 그런 노래를 하는 사람들 스스로가 사특한 마음과 욕심을 버리도록 하는 그런 음악을 발달시켰던 것이다. 이런 노래와 달리 판소리는 청중을 대상으로 하는 음악이기 때문에 청중들에게 즐거움을 줄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어떻게 보면 수양의 음악과는 전혀 다른 상품의 음악인 셈이다. 그래서 공급자인 소리광대가 수요자인 청중을 상대로 하여 하나의 문화상품으로 개발해 온 것이 판소리라고 보아도 된다. 게다가 우리네의 음악작품은 서양의 음악작품처럼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계속 변모하면서 발달했으니까 판소리의 작품 내용은 시대와 지역에 따라서 상당한 차이를 가지고 발달했을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렇게 발달한 판소리의 역사가 얼마나 오래 되었는지는 확실히 알 수 없다. 다만 판소리에 관한 최초의 문헌이라고 하는 유진한(柳振漢 1711~1791)의 만화집(晩華集 영조30년 1754)에 “가사 춘향가 2백귀”라는 것이 있고 순조(純祖 1790~1834, 재위 1800~1834)때의 문인 송만재(宋晩載 1788~1851)의 관우희오십수(觀優戱五十首)에 판소리나 줄타기 땅재주에 관한 기록이 있는 것을 보면 아마 18세기 무렵이나 19세기에는 상당한 수준의 판소리가 불리어졌을 것으로 보여진다. 그렇다면 판소리라는 공연물이 어떤 식으로 발달해 왔을까?. 국가가 장려하는 음악도 아니었고 처음부터 패트론(후원자)이 있었을 턱도 없고 순전히 서민 대중들을 상대로 소리를 팔면서 살아야 하는 광대들이 어떤 소리를 어떻게 하면서 판소리를 발달시킬 수 있었을까하는 것이 궁금한 것이다. 이에 대한 정확한 해답이나 기록이 있는 것은 아니다. 다만 우리의 상상력으로 그런 과정을 재구성해 볼 수밖에 없다. 초창기의 판소리는 사설이 재미있고 곡조가 민요와 비슷한 간단한 것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런 때의 재미있는 내용이란 대개 음란한 얘기일 것으로 짐작된다. 하기는 음란한 이야기만큼 재미있는 것이 어디 있겠는가?. 유교적인 덕목으로 낙이불음(樂而不淫)한 것이 좋다고 하는 생각도 뒤집어 보면 정말 즐거운 것은 음란한 것이기 때문에 즐거워하면서도 음란하지 않게 하는 것 그런 것을 수양의 덕목으로 삼아 수양하자는 것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니까 그런 시대에 일반 대중들이 척 들어서 재미를 느끼게 하기 위해서는 좀 음란한 내용의 얘기를 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니까 판소리는 그런 내용의 얘기를 실감나게 하면서도 노래의 재미를 맛 볼 수 있도록 음악적으로 각색하여 들려주었을 것이다. 송만재의 관우희에 나오는 열두 마당 중에서 사랑을 내용으로 하는 것은 춘향가를 비롯하여 배비장전․변강쇠타령․강릉매화전․왈자타령등인데 그 내용의 야한 정도는 당시가 유교적인 분위기라는 것을 고려한다면 정말 대단한 것이다. 그런 야한 얘기나 횡재하는 얘기, 신선의 얘기 등 그 당시의 현실과는 상당히 거리가 있는 내용들을 거침없이 들려줌으로서 한 바탕 웃기기도 하고 울리기도 하면서 마음껏 카타르시스 하도록 하는 역할을 했을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판소리가 차츰 인기를 얻고 독립된 공연물로 확산되니까 판소리를 좋아하는 수용층도 다양해지고 판소리 광대들도 세련되어져서 한 단계 높은 수준의 판소리가 발달하게 되었을 것으로 본다. 초기에는 그냥 야한 얘기를 상스러운 표현으로 막 표현하던 것이 한문을 배우고 먹물 먹은 사람들이 판소리를 좋아하게 되니까 가사의 표현방법이 한문투로 바뀌고 같은 내용이라도 중국의 고사를 끌어다가 명분 있게 표현하는 방법이 사용되게 되었을 것이다. 또 음악적으로도 기존의 토속적인 음악언어 외에 젊잖은 음악언어와 다양한 음악언어를 수용하여 보다 풍부한 표현력을 가지도록 발달시켰을 것으로 본다. 전체적으로 보면 사설의 내용이나 음악의 내용이 훨씬 유교적인 가치관을 수용하게 되었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처음에는 재미위주로 발달했던 판소리가 재미와 명분을 함께 지닌 판소리로 발달하면서 판소리에 대한 미학과 함께 판소리의 구조조정이 이루어졌다고 할 수 있다. 12마당 즉 12개 이상의 작품으로 발달했던 판소리가 이 시기로 내려오면 5마당 정도로 줄어드는 현상이 일어난다. 정절(貞節)을 중시한 춘향가나 효심(孝心)를 그리는 심청가가 인기를 얻으며 가꾸어진다. 횡재하는 얘기에다가 형제의 우애를 내용으로 하는 흥보가는 재미의 요소와 교육적인 내용을 함께 담고 있어서 또한 널리 알려 지게 된다. 수궁가 역시 토끼의 위기극복의 지혜가 재미를 주는가하면 별주부의 충성스러움이 유교의 덕목과 합치한다. 적벽가는 가장 많이 읽히는 삼국지의 한 부분을 판소리로 각색하여 인정과 의리의 문제를 잘 그리고 있어서 또한 인기를 끌 수 있었다. 이런 내용들을 표현하기 위한 음악의 언어는 우선 가곡의 음악요소를 상당부분 판소리가 수용하게 되고 경기 토리나 경상도 토리도 판소리가 수용하게 된다. 그러면서 전체적인 분위기가 토속적이고 슬픈 정서에서 으젓하고 젊잖은 분위기로 바뀌게 된다. 초기의 판소리가 토속적이고 계면조의 성격이었다면 이 시기의 판소리는 가곡과 경토리를 받아드리면서 평조나 우조의 요소를 많이 가지게 된다. 판소리의 이야기 내용이 명분이 있으면서도 재미를 느낄 수 있는 것으로 재편되면서 음악의 내용도 그것을 사실적으로 표현할 수 있도록 다양한 음악언어를 받아드렸고 이 모든 것이 청중․관객의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도록 연극적인 요소도 발달하게 되었다. 이러한 것을 가능케 하는 것은 소리의 공급자인 광대와 소리의 수요자인 청중들의 상호작용인데 “귀명창이 있어야 진짜 명창이 나온다”는 말도 있지만 과거의 우리 사회에는 “판소리는 이러 이러해야 한다”는 공통된 미학의 틀이 있었기 때문에 많은 사람이 함께 발달시킨 판소리가 뚜렷한 흐름을 가지고 발달할 수 있었던 것이다. 3. 신재효의 광대론 신재효(申在孝1812~1884)는 조선조 후기 전라북도 고창출신으로 상당한 재력을 바탕으로 판소리 인들을 후원하고 판소리 사설을 정리한 사람이다. 그가 정리한 판소리는 춘향가․심청가․박타령․토별가․적벽가․변강쇠가 등이고 그가 지은 단가 사설은 광대가․도리화가 등 30여편에 달한다. 고창에 가면 고창읍성 앞에 신재효가 살던 신재효 고택(중요민속자료 제39호)이 있고 그 바로 앞에 신재효의 호를 딴 동리국악당(桐里國樂堂)이 있다. 동리 신재효는 그 만큼 뚜렷한 판소리에 업적을 쌓았던 인물이어서 “한국의 쉐익스피어”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높이 평가되기도 하는 인물이다. 그는 많은 광대(판소리를 업으로 삼는 음악가)들을 상대하고 그들에게 자기의 의견을 얘기하기도 하고 직접 가르치기도 했을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 잘 못된 사설을 바로 잡아 준다든지 판소리에 대한 미학적인 기준을 일러주는 일 등은 그의 장기로 하는 일이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그래서 그가 새롭게 시도한 것이 춘향가를 남창(男唱)과 동창(童唱)으로 구분하여 사설을 정리한 것이고 남자만 부르던 판소리를 여자도 부를 수 있도록 한 것이다. 그가 진채선이란 여자에게 판소리를 가르쳐서 경복궁 낙성연에서 ‘방아타령’등을 부르게 한 것은 유명한 일이고 그 진채선 이후에 허금파 강소향등의 여류가 등장하면서 오늘날과 같은 여류 명창의 시대가 열리게 되었다는 것은 다 아는 사실이다. 그런 신재효이기 때문에 판소리와 관련된 많은 얘깃꺼리가 전하지만 오늘은 그가 지은 광대가를 통해서 신재효가 가지고 있었던 명창에 대한 이상이랄까 명창의 조건에 대한 얘기를 해 볼까 한다. 광대가는 “고금에 호걸문장 절창으로 지어내어 후세에 유전하나 모두 다 허사로다”하면서 도연명이나 백낙천 같은 이들의 대단한 작품들도 다 허황사설(虛荒辭說)이라면서 차마 못 듣겠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거려천지(蘧廬天地) 우리행락 광대행세 좋을씨고”하면서 광대가 대단하다는 말을 꺼낸다. “그러나 광대행세 어렵고 또 어렵다. 광대라 하는 것은 제일은 인물치례 둘째는 사설치례 그 지차 득음(得音)이요 그 지차 너름새라.”로 이어지는데 바로 이 대목이 광대의 조건을 구체적으로 언급한 대목이다. 여기서 보면 신재효는 광대를 참 좋은 예능인이랄까 멋진 직업을 가진 사람들로 보았다. 광대란 그 당시 사회에서 천인 계급이었고 살아가기도 어려운 직업이었는데도 신재효는 그 광대들의 멋진 삶을 제대로 간파했던 것이다. 여기서 광대란 판소리를 하는 소리꾼을 말한다. 광대란 말은 본래 가면극과 관련하여 많이 쓰이던 말이다. 양반광대 또는 각시광대 같은 경우는 가면 자체를 가리키는 말이고 고성오광대 가산 오광대하면 가면놀이나 가면극을 하는 사람들을 가리키게 된다. 그러나 후대로 내려오면 판소리하는 명창을 가리키는 말로 많이 쓰이고 이 경우도 판소리 명창을 뜻하는 말로 사용되고 있다. 그런데 광대란 말도 앞에 다른 말을 얹어서 사용하는 여러 가지 용례를 보면 그 의미를 더 분명하게 이해 할 수 있다. “진짜광대”․“또랑광대”․“화초광대”․“아니리 광대” 같은 말이 있기 때문인데 신재효가 말하는 광대는 소위 말하는 진짜광대이다. 그러나 크게 이름이 나지 않고 어떤 조그만 지역에서만 활동하는 기량이 우수하지 못한 광대는 또랑광대라고 비하해 말하기도 하고, 소리는 제대로 하지 못하면서 인물이나 팔아 먹고사는 광대는 화초광대라고 한다. 또 소리 중심으로 수준 높게 판소리를 하지 않고 재담이나 늘어놓으며 이야기만 계속하는 광대는 아니리 광대라고 한다. 이런 광대들은 바람직한 광대가 아니다. 그래서 신재효는 광대가 기막히게 좋은 것이지만 광대 되기가 너무나 어렵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런데 신재효가 말하는 광대의 조건은 무엇인가?. 첫째는 <인물>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인물은 천생(天生)이라 변통할 수 없다고 했다. 둘째는 <사설치례>라고 했는데 광대가에서 말하는 사설은 이런 것이다. “사설이라 하는 것은 정금미옥(精金美玉) 좋은 말로 분명하고 완연하게 색색이 금상첨화(錦上添花) 칠보단장(七寶丹粧) 미부인(美婦人)이 병풍 뒤에 나서는 듯 삼오야(三五夜) 밝은 달이 구름 밖에 나오는 듯 새눈 뜨고 웃게 하기 대단히 어렵구나” 그냥 읽어서는 무슨 뜻인지 알아보기 어려운 내용이다. 그러나 판소리에 있어서 사설이 중요하다는 것은 다 아는 사실인데 광대는 그러한 사설을 짜기도 하고 멋진 시어(詩語)를 구사할 줄도 알고 같은 내용이라고 더 멋있게 더 분명하게 표현해야 듣는 사람들이 감동한다는 식으로 이해하면 된다. 그 시대의 광대들은 즉석에서 판소리의 내용을 창조적으로 짜서 부르는 것이 유행했을 것이기 때문에 더욱 그 창조의 역량중에서 가사를 짜는 문학적 역량을 사설치례라는 말로 표현했는지도 모른다. 이런 사설치례 다음이 <득음(得音)>이라는 것인데 광대가에서 말하는 득음은 이런식으로 되어 있다. “득음이라 하는 것은 오음(五音)을 분별하고 육율(六律)을 변화하여 오장(五臟)에 나는 소리 농락(籠絡)하여 자아낼 제 그도 또한 어렵구나.” 여기서 ‘오음을 분별하고 육율을 변화’한다는 것은 음악의 언어방법을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작곡능력이 있어야 한다는 뜻으로 생각하면 되겠고 ‘오장에 나는 소리 농락하여 자아낼제’는 그러한 음악내용을 실제 소리로 표현하는 표현기교와 발성등을 말하는 것으로 보면 되겠다. 그러니까 광대에게 있어서 득음을 했다는 것은 판소리를 하는데 필요한 소리를 자유자재로 낼 수 있는 발성의 문제를 해결했다는 뜻도 되지만 가사의 내용을 음악으로 작곡하는 작곡능력도 함께 갖추었다는 것을 뜻한다고 생각하면 되겠다. 그리고 맨 마지막이 <너름새>라고 했는데 광대가에서는 “너름새라 하는 것은 귀성 끼고 맵시 있고 경각(頃刻)에 천태만상(千態萬像) 위선위귀(爲仙爲鬼) 천변만화(千變萬化) 좌상(座上)에 풍류호걸 구경하는 노소남녀 웃게 하고 울게 하니 어찌 아니 어려우며”라고 하였다. 너름새는 연기에 해당하는 몸짓 표현이라고 할 수 있는데 순식간에 신선이 됐다가 귀신이 됐다가 할 수 있어야 하고 천변만화하는 표정과 몸짓으로 모든 사람들을 웃기기도 하고 울리기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정리하면 명창은 <인물>을 잘 타고 나야 하고, <사설>을 잘 짜고 멋 있게 표현하는 문학적 창작능력이 있어야 하고 ,작곡능력이 있어야 하고 소리를 자유자재로 구사할 수 있는<득음>이 되어야 하고 연기와 몸짓을 통하여 청중을 웃기고 울릴 수 있는 <너름새>를 잘 하여야 한다는 것이 신재효의 광대론이다. 4. 음악가들의 ‘득음(得音)’ 이야기 ‘득음’이란 말은 판소리에서 많이 사용하는 용어이지만 기악에도 해당하는 말이다. 직역하면 “음을 얻는다” 또는 “소리를 얻는다”가 되어서 마치 ‘발성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을 말하는 것처럼 들린다. 득음이란 우선은 발성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을 말한다. 음악가가 음악에 필요한 소리를 충분하게 낼 수 있게 되는 것이 첫째의 필요조건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득음은 발성문제만 해결하는 것을 말하지는 않는다. 신재효가 ‘광대가’에서 말한 득음에 관한 것을 살펴보면 “득음이라 하는 것은 오음(五音)을 분별하고 육율(六律)을 변화하여 오장에서 나는 소리, 농낙하여 자아낼 제 그도 또한 어렵구나”라고 하였다. 여기서 보면 득음은 오음을 분별하고 육율을 변화할 줄 알아야 된다는 것이 먼저 나오는데 이것은 요즘 말로 표현하면 음악언어의 구조를 훤히 알아서 가장 합리적인 표현방법을 구사할 줄 아는 작곡능력이 있어야 된다는 말이다. “오장에서 나는 소리”란 입이나 목에서 나는 소리가 아니라 온 몸에서 나는 소리라는 것이고 “농낙하여 자아낼 제”란 자유자재로 멋지게 꾸며내는 소리라고 생각하면 별 무리가 없을 듯 하다. 그러니까 득음이란 그냥 소리만 잘 내는 것이 아니라 ‘음악의 속’을 훤히 알고 합리적으로, 멋지게, 온몸으로 마음껏 소리를 낼 수 있게 되는 것을 말한다. 음악가가 되기 위해서는 우선 득음을 해야 한다. 그런데 득음이 그렇게 쉽지 않다. 실제 음악가가 되느냐 되지 않느냐는 득음을 하느냐 못하느냐에 달려 있다. 그 만큼 득음은 음악가가 반드시 해결하여야 할 문제이다. 음악가들은 그 득음을 위해서 각기 독특한 혼자만의 연습시간을 가져야 하는데 흔히 <독공>이라고 하여 매일 매일 계속되는 장기간의 연습도 있고 ‘100일 공부’처럼 집중적으로 온통 연습에만 매달리는 방법도 있다. 장우벽(1735~1809)은 영조 때 활약한 가곡의 대가인데 매일 인왕산 바위 위에 올라앉아 장안을 굽어보며 노래를 불렀다 하고 김계선(1891~1943)같은 대금의 명인은 매일 새벽 서울의 남산에 올라가 대금을 연습하였다고 한다. 이들이 연습할 때에는 같은 음악을 반복하여 연습하는데 대개는 신발을 벗어 놓고 조금만 조약돌을 모아다가 한번 불고 돌 하나 신에 넣고 또 한번 불고 돌 하나 신에 넣고 하면서 연습하여 조약돌이 신 하나가득 수북하게 쌓이면 산을 내려 왔다고 한다. 그 만큼 계속 같은 음악을 반복 연습하는 가운데 악기를 다루는 기술이 능통하게 되고 또 ‘음악 속’도 훤하게 알게 되어 무슨 악기든지 다룰 수 있는 힘과 음악을 해석하고 표현하는 능력을 함께 배양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들과 달리 대부분의 판소리 명창들은 집중적인 훈련을 통하여 득음 하였다는 얘기가 많이 전한다. 박동진 명창만 하드라도 100일 공부한 얘기가 유명하다. 박 명창은 처음 소리를 배운 다음 이곳 저곳 다니면서 소리선생도 하고 조그만 자리의 소리도 하면서 조금은 방탕하게 한동안 지냈는데 청년기에 접어들면서 그러한 생활을 크게 반성하고 고향에 돌아가 100일 공부를 시도하였다고 한다. 부친에게 그러한 결심을 얘기하고 아무도 찾아오지 못하게 부탁해놓고는 혼자 산 중턱에 움막을 짓고 독공에 들어갔다. 밥 먹고 잠자는 시간 빼고는 하루 종일 소리만 하는 맹훈련이었다. 그런데 판소리 명창들의 훈련방법은 전력을 다해 통성으로 소리를 지르면서 연습하기 때문에 목에 무리가 가게 된다. 그러면 자연 목이 잠기고 소리가 잘 나지 않게 될 뿐만 아니라 몸에도 무리가 누적되어 병이 나게 마련이다. 박 명창도 그렇게 맹훈련을 하는 중에 몸이 붓고, 이가 솟고, 목이 잠기어 소리가 나오지 않는 고비를 넘기게 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그 고비란 것이 말이 쉽지 본인으로서는 이렇게 소리하다가 산에서 죽는가보다 할 정도로 꼼짝달싹 하지 못하고 앓아 눕는 상태에 이르게 되었다고 한다. 그래도 마음은 오직 득음에 있을 뿐 몸이 아프고 괴로운 것은 별 문제가 되지 않는 모양이다. 그러니까 그런 상태에서도 계속 쉬지 않고 소리를 질러 대며 소리를 끌어내려고 애 썼다는 것이 아닌가?. 그렇지만 몸은 한계가 있는 것이다. 박동진도 마지막에는 소리는커녕 몸을 움직이지 조차 못하고 죽은 듯이 늘어져 있게 되었는데 마침 박동진의 부친이 혹시나 하고 찾아오셨더라 는 것이다. 박동진은 평소에 그럴 때에는 인분 거른 물을 마시면 낫는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기에 그의 부친에게 인분 거른 물을 가져다 달라하였다. 그래서 그것을 마셨는데 정말이지 금방 몸의 부기가 빠지고 회복의 기미가 보이게 되어서 다시 연습에 연습을 거듭하면서 백일공부를 마쳤다고 한다. 박동진 명창은 이 백일공부를 통하여 득음했다는 말을 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그것을 계기로 그 전과는 훨씬 다른 생활태도와 오직 판소리에만 정진하는 자세로 일관했기 때문에 오늘날과 같은 대 명창이 된 것이다. 함동정월이라는 가야금의 명인도 연습을 많이 하기로 소문난 분이다. 함 여사가 김명환씨와 함께 살 때에는 식전에 한 바탕 오전에 두 세 바탕 식으로 거의 종일을 가야금 산조를 몇 바탕씩 타면서 생활했다고 한다. 말하자면 생활이 온통 연습이었던 셈이다. 그래서 함 명인은 보통 사람보다 왼팔이 더 굵고 강하게 발달했고 그녀가 타는 가야금은 줄을 보통 가야금 보다 훨씬 되게 죄어 줄을 고르기 때문에 다른 가야금 연주자들은 그 가야금을 타기 힘들었다고 한다. 그 만큼 늘 같은 곡을 반복하여 타면서도 계속 그 음악의 삼매경에 들어가 음악의 여행을 하기 때문에 지루하기는커녕 늘 새로운 음악의 체험을 하는 것이었다. 그런 음악가들의 경우 연습을 한다는 것이 무슨 장단을 지키고 곡조를 익힌다는 차원이 아니다. 그 산조라는 음악 속에 들어가 장단과 어우러지면서 차츰 차츰 죄이고 절정을 이룬 다음에는 풀고 또 죄이고 풀고 하면서 마음과 몸이 혼연일체가 된 음악여행을 즐기는 것이다. 그렇게 공력을 쌓아 나가기 때문에 이런 분들에게 있어서 음악은 생활이고 도(道)이고 인생 그 자체인 것이다. 또 그런 과정을 통해서 득음을 하고 음악가가 되고 그들의 음악이상에 접근해 갔던 것이다. 득음에 대한 일화는 판소리 명창들에게서 많이 찾을 수 있다. 폭포에 가서 소리를 지르면 처음에는 자기 귀에도 안 들리던 소리가 나중에는 그 폭포 소리를 뚫고 멀리까지 들렸다는 얘기도 얼마든지 있다. 이런 것이 음악가들의 득음과 관련한 얘기들이고 이러한 과정이 국악인들에게는 꼭 필요한 것이기에 소개하였다. 5. “이면”이라는 용어의 의미 국악에서는 “이면”이라는 말을 많이 쓴다. “이면에 맞는다”든지 “이면에 맞지 않는다”는 말을 자주 들을 수 있다. 그런데 이럴 경우 그 이면이란 말의 한자(漢字)는 理面으로 생각하는 것이 옳다. “이면에 맞는다”는 것은 대개 이치(理致)에 합당하다는 의미로 쓰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판소리를 하는데 엎드리어 땅을 치면서 통곡하여야 할 대목인데 그 소리를 그냥 뻣뻣하게 서서 부른다면 그것은 “이면에 맞지 않는다”고 하는 것이다. 춘향가를 창극으로 하는데 춘향을 남자로 하고 이도령을 여자로 했다면 그런 것도 “이면에 맞지 않는다”고 한다. 말하자면 “이치에 맞지 않는 것”은 “이면에 맞지 않는다”고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면에 맞는 소리”라고 하면 좀 복잡해진다. 판소리에서 좋은 소리인지 좋지 않은 소리인지를 따질 때에도 이런 말을 쓰기 때문이다. 이럴 경우는 그 “이면에 맞는 소리”라는 말이 일종의 미학용어처럼 사용되는 것이다. “천리만리”라는 가사를 표현하는데 “천리”는 좀 짧게 부르고 “만리”는 더 길게 “마아아아알리”로 부르는 것이 “이면에 맞는 소리”를 하는 것이라고 한다. 또 놀보가 흥보를 나가라고 할 때에는 막 내쫓는 것이니까 ‘우조’로 불러야 이면에 맞고 흥보가 쫓겨 나갈 때에는 슬픈 마음으로 부르는 대목이니까 ‘계면조’로 불러야 이면에 맞는다. 말하자면 슬픈 대목에서는 슬픈 소리로 부르고 기쁜 대목에서는 기쁜 소리로 부르는 것을 이면에 맞는 소리라고 한다. 마찬가지로 판소리의 극적인 흐름이 ‘어사 출도’ 대목처럼 바쁘게 도망가고 법석을 떨 때에는 그런 극적 상황에 합당하게 빠른 장단으로 노래하고 한가하게 광한루에 올라 사방 경치를 살펴보는 ‘적성의 아침 날’ 같은 대목에서는 느린 진양조로 부르는 것이 “이면에 맞는 소리”를 하는 것이 된다. 만약 그런 상황을 거꾸로 생각하여 ‘어사 출도’ 대목을 진양조로 느리게 부르고 ‘적성의 아침 날’을 빠른 휘모리장단으로 부른다면 그것은 이면에 맞지 않는 것이다. 극적인 내용에 따라서 장단을 어떻게 배열하느냐 하는 것도 이면에 맞게 배열해야 한다는 얘기이다. 가사의 내용이나 극적인 상황에 맞게 소리를 짜고 부르는 것을 “이면에 맞는 소리를 한다”고 하는 것이다. “ 이면에 맞는 소리”란 말은 작곡의 미학용어가 되기도 하고 연주의 미학용어가 되기도 한다. 이럴 경우 이면이란 말의 한자는 理面보다는 裏面으로 생각하는 것이 옳을 것으로 본다. 나는 어느 날 아침 산을 오르다가 문득 그 “이면”을 깨닫게 되었다. 이면의 한자는 理面․裏面․二面을 두루 써도 될 만큼 세 가지 의미를 다 포함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판소리 명창들이 “이면에 맞다”라는 말도 쓰고 “이면에 맞는 소리”라는 말도 쓰고 또 “이면을 그린다”는 말도 쓰는데 이 세 가지의 경우 그 <이면>이란 말의 뜻이 서로 다른 것이 아니라 결국은 같은 것이라는 것이다. 어느 한 가지의 의미만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세 가지 의미를 다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면>이란 용어는 한문(漢文)을 많이 쓰는 전통사회 시절부터 써 온 용어이다. 분명 한자로 된 성어(成語)인데 그 동안 국악계에서는 그 한자에 대한 논의도 없었고 또 어느 것이 옳은지 한자로 표기하는 예도 거의 없었다. 그냥 “이면”이란 말을 써 오기만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용어가 한문성어(漢文成語)인 것이 분명한 이상 한문으로 따져 보아야 하는데 그런 노력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런데 오랫동안 생각해 보니까 “이면”이란 말의 한문은 앞서 예를 든 세 가지 한문이 다 해당하는 용어라는 것이다. 다르게 생각하면 그 동안 판소리계에서 “이면”이란 말의 한문을 사용하지 않은 것은 그렇게 복합적인 의미가 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하게 된다. 어떻게 보기에 “이면”이란 말에 세 가지 한문의 뜻이 다 있다는 것일까?. 먼저 “이면”을 二面으로 생각하는 사고가 필요하다. 사전 조건이라는 한 면과 그것을 나타낸 현상으로서의 한 면을 생각하자는 것이다. 가사(사설)라는 사전 조건을 음악으로 작곡했을 때의 현상이 서로 잘 맞으면 “이면에 맞는 소리”가 된다. 또 그 작품을 합당하게 창(唱)으로 표현했을 때에도 “이면에 맞는 소리”가 된다. 그리고 작곡이 잘 되었다든지 창으로 잘 표현되었을 때에는 그것이 “이치에 합당하게 된 것”이니까 “理面에 맞는다”라는 말과 같은 뜻이 되기도 한다. 또 그렇게 작곡이 잘 된 ‘소리 대목’을 잘 표현한 연주가 이루어졌을 때 “이면을 잘 그렸다”고 말하는데 그런 경우의 “이면”은 한문의 裏面에 해당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사전 조건과 표현된 현상이 잘 맞으면 “二面이 잘 조화된 것”이고 “裏面을 잘 그린 것”이고 또 “理面에 맞는 소리가 된다”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아이디어는 음악이란 표현의 예술이기 때문에 무엇을 표현했을 때 그 <표현된 내용>은 결국 <사전 조건을 표현한 것>이라는 생각이다. 그 사전 조건이란 판소리의 경우 가사의 내용이 가장 중요한 것이지만 그 가사를 어떤 기준에서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서 여러 가지 현상이 나타날 수 있는 것이다. 춘향가의 ‘신연맞이’대목을 동초 김연수명창은 세마치라고 하는 빠른 진양조장단으로 작곡했는데 다른 판소리 작품들은 대부분 자진모리로 되어있다. 이런 것이 바로 같은 사설이지만 작곡자의 해석에 따라서 다른 조건이 되어 다른 현상으로 나타나는 예이다. 해석의 문제 역시 중요한 것이지만 <사전 조건>에 포함시키면 된다. 그 동안 판소리에서 “이면에 맞지 않는다”고 하면 평가 점수에서 불가(不可) 판정을 받은 것과 같은 것으로 생각해 온 것이 사실이다. 그 만큼 “이면에 맞는 소리”를 하는 것이 중요하고 “이면에 맞는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아는 것이 중요한 것이었다. 민속악에서 “이면의 뜻을 모른다”고 하면 그것은 음악에 대한 안목이 전혀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제 여러분께서는 “이면”이 한문성어로 ‘二面’․‘裏面’․‘理面’의 뜻을 함께 가진 포괄적인 용어라는 것을 알았을 것이고 <사전 조건>과 <표현된 현상>이 잘 조화되었을 때 “이면에 맞는 소리를 했다”고 말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6. 20세기에 출현한 새로운 공연물 <창극> 한국의 20세기는 외래 문물이 물밀 듯이 밀려들어 온 한 세기였다. 1900년대의 시작은 대륙으로부터 들어오는 중국문화의 영향력이 감소되는 한편 일본을 거쳐 들어오는 서양문화의 영향력이 크게 증대되는 한 세기였다. 이런 문화의 변혁기에 나타나는 새로운 공연물이 앞으로 얘기하려고 하는 우리의 ‘창극’이다. 창극은 ‘창(唱)’과 ‘극(劇)’이 합쳐진 공연물이다. ‘음악극’이라 말해도 좋고 ‘창악인들이 개발한 연극성이 강한 공연물’이라고 해도 좋은 것이다. 창극 이전에도 우리에게는 훌륭한 음악과 극을 결합시킨 공연물이 있었다. 판소리가 바로 그것이다. 판소리는 가장 경제적으로 큰 효과를 내는 수준 높은 공연물인데 한 사람의 명창(가객)과 한 사람의 고수가 공연 전체를 이끌어 나가는 것이다. 우리 조상들은 몇 백 년 동안 이러한 판소리를 다양하고 수준 높게 발달시켜 많은 사람들이 즐기게 했다. 춘향가․심청가․흥보가․수궁가․적벽가․등이 다 그러한 판소리 작품들 아닌가?. 그런데 20세기를 맞으면서 우리네 판소리와 다른 외국 공연물이 서울에서 공연되기 시작한 것이다. 지금의 청계천2가쯤에 해당하는 수표교 다리 건너편의 청국관에서는 중국의 전통 연극이 자주 공연되었고 1902년에 협률사라는 이름으로 지어졌다가 나중에 원각사라고 부르게 되는 서양식의 극장이나 광무대․연흥사․단성사․장안사 같은 서양식 극장에서도 일본의 신파극이나 가부키나 신연극 등이 자주 공연되었다. 이처럼 극장이 많아지고 그런 곳에서 새로운 공연물을 공연하는 것 자체가 우리 문화계에 던져주는 변화의 파장은 클 수밖에 없었다. 창극의 시작 1902년에 지어진 협률사는 우리 나라 최초의 서양식 극장이다. 처음에는 고종의 즉위 40주년을 기념하는 칭경식 축하 공연을 그곳에서 할 작정이었다. 그래서 궁중 소속으로 있는 관기(官妓)나 예능이 뛰어난 예기(藝妓)들을 모으고 경․서도 명창이나 판소리 명창들을 모아서 다양하고 큰 공연 준비를 한다. 첫 번째의 공연은 전염병이 돌게 되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왕실이 지은 신식 극장에서 많은 예술가들이 돈을 받으며 공연을 할 수 있었다는 것은 대단한 의미를 갖는 것이었다. 초창기의 공연물들은 기생들의 노래나 춤과 경기명창들의 재담과 판소리하는 사람들이 배역을 나누어 하는 창극 등이 주 공연물이었던 것 같다. 그런데 협률사는 1906년에 문을 닫게 되고 1908년에 협률사를 내부 수리하여 원각사라는 이름으로 다시 개관하게 되는데 이 때의 운영진은 친일세력들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인직을 비롯한 친일 연극인들이 원각사를 무대로 신연극 등을 공연하였는데 그래도 그 곳에는 김창환 등의 명창 40명과 기생 24명이 이동백을 단장으로 하여 전속 단체를 구성하고 판소리․민속무용․창극 등을 공연하였다. 그리고 1909년 말 원각사의 전속 단체마저 폐지되자 협율사 명창들은 김창환․강용환․유공열 등을 중심으로 하는 파와 송만갑․이동백․김창룡 등을 중심으로 하는 파로 나뉘어 전국 순회 공연에 들어간다. 이 협률사의 공연이 전국적으로 대단한 인기를 끌고 창극 보급에 크게 공헌하지만 1910년 한․일 합방이 발표되자 모두 공연을 중단하고 흩어지게 된다. ‘창극’이라는 이름의 유래 창극이라는 명칭도 1910년대에는 신연극(新演劇)이나 신파극에 대한 구연극(舊演劇) 또는 구파극(舊派劇)이라고 했었다. 그러다가 1930년대가 되면서 조선성악연구회가 발족되고 판소리와 창극을 개발한 것이 새로운 공연물로 각광을 받게 되는데 이 무렵에는 판소리나 창극 모두를 창극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말하자면 정노식은 판소리의 역사를 쓰면서 「조선창극사」라고 했고 조선성악연구회에서는 ‘창극좌’라는 명칭으로 단체를 만들어 창극 활동을 하였다. 그러니까 창극이라는 용어는 한동안 판소리와 창극을 함께 지칭하는 용어로 사용되기도 했다는 말이다. 그러다가 창극이 인기를 얻고 많은 창극단이 생긴 다음 해방을 맞으면서 서양적인 것이 본격적으로 들어오니까 창극이라는 말 대신 국극(國劇)이라는 말을 많이 사용하게 되어 ‘여성국극단’이 생겨나게 되고 또한 인기를 얻게 된다. 이런 연유로 현재의 국립창극단이 1962년 국립극장 소속 단체로 처음 발족할 때에는 국립국극단이라는 명칭을 사용했었다. 지금 사용하고 있는 ‘국립창극단’이라는 명칭은 1973년부터 사용하기 시작한 이름이다. 초창기의 음악극은 판소리를 하는 남도명창들에 의하여 개발되었다고 할 수 있다. 청국관에 가서 중국의 경극 등을 자주 구경한 강용환은 원각사라는 새로운 무대가 만들어지고 판소리인들이 함께 공연할 공연물을 모색할 때에 <춘향전>을 입체창으로 하여 여러 사람이 배역을 나누어 연극에 가까운 공연물을 만든 것이다. 지금의 창극과는 훨씬 다른 형태라고 할 수 있다. <춘향전>이라는 판소리를 그냥 그대로 배역만 나누어 여러 사람이 창을 하는 음악극인 것이다. 그래서 그후에 등장하는 ‘창극’이란 말이나 ‘국극’이란 말이 다 판소리인들이 판소리를 바탕으로 하는 음악극을 가리키는 용어로 사용되어 왔다. 그런데 요즘은 ‘창극’이라는 말이 서양음악에서 사용하는 뮤지컬이나 오페라와 다른 우리 나라 음악을 사용하는 전통적인 음악극을 가리키는 용어로 사용하게 되었다. 경․서도 명창들이 창작 창극으로 공연한 <남촌별곡(南村別曲)>도 창극이라는 명칭을 사용했었고 경기명창들이 만들어 공연한 <장대장타령>도 역시 창극이라는 명칭을 사용했었다. 그러니까 지금은 ‘창극’이라는 용어가 전통음악을 사용하는 음악극 모두를 가리키는 용어로 정착되어 가고 있는 시기라고 할 수 있다. 창극의 시발점 ‘협률사’ ‘협률사’라는 용어도 여러 가지 의미로 사용되었다는 것을 집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 그 유명한 이화중선도 남원에 협률사가 들어와서 공연하는 것을 보고 집을 뛰쳐나와 판소리의 길을 걷게 되었다고 했고 많은 명창들이 협률사의 순회공연에 대단한 감동을 받고 명창이 되어야겠다는 결심을 했다고 하는 얘기를 들었다. 그렇다면 협률사라는 명칭도 처음에는 1902년에 국고에 해당하는 왕실의 내탕금(內帑金)으로 지은 극장 이름이었는데 나중에는 송만갑의 협률사처럼 창극의 공연 단체를 가리키는 용어로 사용되었던 것을 알 수 있다. 박황은 ‘협률사’라는 용어가 중국인들이 쓰는 ‘협률창희(協律唱戱)’에서 온 말이라고 설명한 바 있는데 백현미도 협률사라는 용어의 한자가 ‘協律社’나 ‘協律司’로 쓰이고 있어서 그 뜻이 극장을 가리키는 것인지 무슨 회사와 같은 단체를 가리키는 것인지 아니면 어떤 조직의 한 부서를 가리키는 것인지 분명치 않다고 한 바 있다. 어쨌든 협률사라는 용어는 우리네의 창극이 처음 출발하는 출발점과 함께 나타나는 중요한 용어이고 그 뜻이 다양하게 사용되었던 것은 틀림없다. 때문에 가능하면 협률사의 의미를 어느 정도 파악하는 것이 필요하고 창극이라는 명칭도 제대로 알고 사용하면 좋으리라고 생각된다. 역사란 과거의 기록이지만 미래를 위하여 꼭 알아야 하는 것이다. 창극을 제대로 발전시키기 위해서도 반드시 창극이 걸어 온 역사를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오늘날의 창극이 어떤 과정을 거쳐서 그렇게 형성되었는지 미래의 창극은 어떻게 가꾸어 가야하는지를 알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창극이 걸어 온 역사를 재조명해 보고 반성하고 비판하면서 새 시대에 맞는 창극다운 창극 만들기에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故 최종민교수 (철학박사, 국립극장예술진흥회 회장, 동국대문화예술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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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음악이 된 판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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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대 전인삼 교수 4월27일 '82회 춘향제'서 '동편제 춘향가 복원발표'
- "'동편제 춘향가' 복원 위해 4년을 매달렸어요" "동편제 판소리 5바탕중 '흥부가'와 '수궁가', '적벽가'는 전승이 활발한 반면에 '춘향가'와 '심청가'는 안타깝게 전승이 단절돼 왔는데 복원에 매달린 지 4년만에 동편제 춘향가를 발표를 하게 돼 감회가 새롭습니다."춘향제전위원회 주최와 전남대 소리문화연구소 주관으로 열리는 '제82회 춘향제'(4.27~5.1)에서 동편제 춘향가 복원발표회를 갖는 전인삼 교수(판소리ㆍ전남대 국악과)는 소감을 이처럼 밝혔다. "대학에서 제자들을 양성하는 틈틈이 복원에 매달렸다"는 전 교수는 "동편제 춘향가는 시조인 송흥록을 비롯해 송광록, 송우룡, 송만갑, 박봉술 명창으로 이어졌다"면서 "1971년 박봉술 명창(1922∼1989)이 녹음만 남겨놓았지만 제자양성이 전혀 안되는 바람에 전승이 끊어졌다"고 말했다.특히 전 교수는 "남원지역에 전승되는 '열녀춘향수절가'와 박봉술 명창의 춘향가는 거의 유사한 특징을 갖고 있는 데 완벽하다고는 말을 못하지만 소신있게 복원하는 데 주력했다"고 강조했다.--> 광남일보 해당기사 더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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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대 전인삼 교수 4월27일 '82회 춘향제'서 '동편제 춘향가 복원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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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대 전인삼 교수 4월27일 '82회 춘향제'서 '동편제 춘향가 복원발표'
- "'동편제 춘향가' 복원 위해 4년을 매달렸어요" "동편제 판소리 5바탕중 '흥부가'와 '수궁가', '적벽가'는 전승이 활발한 반면에 '춘향가'와 '심청가'는 안타깝게 전승이 단절돼 왔는데 복원에 매달린 지 4년만에 동편제 춘향가를 발표를 하게 돼 감회가 새롭습니다."춘향제전위원회 주최와 전남대 소리문화연구소 주관으로 열리는 '제82회 춘향제'(4.27~5.1)에서 동편제 춘향가 복원발표회를 갖는 전인삼 교수(판소리ㆍ전남대 국악과)는 소감을 이처럼 밝혔다. "대학에서 제자들을 양성하는 틈틈이 복원에 매달렸다"는 전 교수는 "동편제 춘향가는 시조인 송흥록을 비롯해 송광록, 송우룡, 송만갑, 박봉술 명창으로 이어졌다"면서 "1971년 박봉술 명창(1922∼1989)이 녹음만 남겨놓았지만 제자양성이 전혀 안되는 바람에 전승이 끊어졌다"고 말했다.특히 전 교수는 "남원지역에 전승되는 '열녀춘향수절가'와 박봉술 명창의 춘향가는 거의 유사한 특징을 갖고 있는 데 완벽하다고는 말을 못하지만 소신있게 복원하는 데 주력했다"고 강조했다.--> 광남일보 해당기사 더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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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대 전인삼 교수 4월27일 '82회 춘향제'서 '동편제 춘향가 복원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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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제16회 송만갑판소리고수대회 개최
- 1. 일시 : 2012년 10월 5일(금)~10월 6일(토) 2일간 ※국악인 추모제 : 10. 04(목) 17:00 동편제전수관 시상식 : 10. 06. 16 : 30 실내체육관 특설무대 2. 장소 : 동편제전수관, 실내체육관 특설무대 3. 주최: 구례군 4. 주관 : (사)한국국악협회구례지부 5. 후원 : 문화체육관광부, 한국문화예술위원회, 국악방송, 전라남도, 전라남도교육청, (사)한국예총, (사)한국국악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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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제16회 송만갑판소리고수대회 개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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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극의 스타와 판소리명창
- 창극은 스타의 산실이었다. 초창기에는 판소리로 이름 높은 명창들이 창극을 시도했기 때문에 김창환·이동백·송만갑은 그 자체 스타이고 명창이었다. 정정열까지도 명창이 스타가 된 경우이지만 오태석은 조금 달랐다. 오태석은 판소리명창으로 보다는 창극의 스타로 유명했다. 그가 출연한 춘향전(방자역)이나 수궁가(원숭이역) 등에서는 관객들이 오태석의 연기를 보기 위해 극장을 찾을 정도로 인기가 높았다. 여성국극이 성공할 수 있었던 것도 박귀희·김소희(햇님·달님) 같은 스타가 있었기에 가능했고 그 후의 임춘앵이나 김진진·김경수도 명창이라기 보다는 스타성으로 크게 명성을 떨쳤다. 반대로 임방울은 대단한 명창이었지만 창극에서는 스타가 되지 못한 경우이다. 하여 창극의 스타와 판소리명창은 약간 차이가 나는 개념이라는 것을 전제로 이야기를 엮어 보기로 하겠다. 1962년 국립국극단이라는 이름으로 지금의 국립창극단이 만들어 질 때에는 영화나 TV 등 새로운 공연물이 늘어나면서 판소리와 창극이 극도로 위축된 시기였다. 이 무렵 김창구를 비롯한 국립극장 관계자들이 창극과 판소리를 함께 보호 육성할 방안으로 국립창극단을 만들었다. 김연수가 초대 단장을 맡고 당시 한 참 활동하던 김소희·박초월·박귀희·김경애·김득수·강종철·김정희·남해성·박봉선·박초선·임유앵·장영찬·정권진·한농선·한승호·허희 등이 단원으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이들 중 몇 사람에 대해서는 창극과 판소리에 공헌한 점을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우선 단장을 맡았던 김연수(1907~1974)에 대한 얘기부터 해 보겠다. 김연수는 일제강점기 ‘쑥대머리’ 한 방으로 스타가 된 임방울과 쌍벽을 이루며 창극과 판소리 두 분야에 크게 공적을 남긴 인물이다. 그는 어려서 한문을 배워 유식한 편이었고 성격이 따지기를 좋아하고 남에게 지기 싫어하는 성품이라 많은 일화를 남긴 사람이다. 29세의 늦은 나이에 순천의 성군수 집에서 유성준에게 수궁가를 배울 때 선생님이 가르쳐주는 수궁가의 가사가 틀렸다고 우겨서 유성준이 그 곳을 떠나게 했다는 얘기가 유명하고 그 일 때문에 서울로 올라와서 조선성악연구회에 출입하게 되었다. 이 무렵 조선성악연구회에는 정정열이 있어서 창극좌를 만들어 창극을 재건하고 흥행에 성공을 거둘 때인데 김연수는 그 단체에 끼어 활동하면서 본인도 나중에 정정열처럼 창극을 각색·연출·작창 할 수 있는 능력을 가져야겠다는 포부를 가지게 되었다고 한다. 김연수는 그런 생각을 가진 사람이었기 때문에 그 후에도 늘 지도자의 위치에서 단체를 운영하기도 하고 판소리를 새롭게 만들어 보려 애썼는데 그 결실의 하나가 국립창극단이 출범했을 때 단장이 되어 판소리를 창극으로 각색·작창·연출하는 일이었다. 그리고 판소리도 본인의 미학에 맞게 사설과 곡조를 다시 짜서 새로운 판소리를 만들었다. 본인은 춘향가만 발표했었고 나머지는 모두 오정숙이 차례차례 완창으로 발표했는데 수궁가를 완창하기 직전 김연수는 작고하고 말았다. 오늘날 동초제 판소리라고 하는 춘향가·심청가·흥보가·수궁가 등은 오정숙이 공을 들여 퍼뜨려 전주지역을 중심으로 전국에 퍼져나가고 있는데 오정숙의 제자 이일주·조소녀·민소완(성준숙)·김소영 등이 거점이 되어 활발하게 전수하고 있다. 김연수는 토막창극을 재미있게 각색하여 무대에 올린 것으로도 유명한데 지금 그런 작품은 대부분이 전승되지 않고 있다. 판소리로 1964년 인간문화재가 되기도 했던 김연수는 판소리 작품 여러 바탕을 남겼고 많은 창극작품을 무대에 올렸던 초대 국립창극단의 단장이었다. 김소희(1917~1995)는 13~4세 때부터 소녀명창으로 당시 경성방송국에서 판소리 한 대목을 방송할 정도로 실력을 인정받았다. 1935년 콜롬비아레코드에 취입하기 위해 정정열 일행으로 일본에 갈 때는 일행이 정정열·이화중선·임방울·박록주·신숙·한성준이었으니 김소희가 최연소 10대 후반의 나이였다. 김소희는 송만갑·정정열·박동실 등에게 판소리를 배우고 가곡과 거문고·가야금·양금 등을 배워 국악전반에 실력을 갖추고 있었다. 어려서부터 총명하고 무엇이든지 잘 하면서 공부하기를 좋아하여 한문과 서예를 신호열선생에게 배워 서예작품이 국전에 3년이나 입선하는 개가를 올리기도 했다. 이런 학습과 경륜을 가진 김소희였기 때문에 창극과 판소리에 기여한 공적 또한 적지 않다. 해방 후 여성국극이 폭발적인 인기를 누리는 시기가 있었다. 그런데 그 기폭제가 된 것은 박귀희와 김소희가 출연한 햇님·달님이라는 작품이었다. 그 작품은 실제 박귀희와 김소희를 모델로 하여 김아부가 대본을 만든 것으로 대중들의 대단한 성원을 받았고 박귀희는 남자역할로 굉장한 스타덤에 올랐었다. 박귀희를 실제 남자로 착각하고 사모하는 여성들이 줄을 이어 찾아다닐 정도로 유명했었다. 그처럼 여성국극 붐을 만들었던 김소희는 그 후 국립창극단의 여러 창극작품을 작곡하는 작창을 맡아 하기도 했다. 김소희가 한 일은 여러 방면에 걸쳐 참으로 다양하고 많다. 여성국악동호회를 만들어 활동했고 그들이 힘을 합쳐 국악예술학교를 만들고 이사장을 한 일이라든지 말년에 국악협회 이사장을 한 일 등도 중요한 일이다. 그러나 그가 남긴 가장 큰 업적은 판소리의 격을 높이고 판소리를 국내·외에 선양한 일이라 하겠다. 해방공간에서는 건국의 핵심인사들과 미군정청 관계자들이 회식이라도 하게 되면 김소희·박귀희 등이 그런 자리에 나아가 판소리와 가야금병창을 들려주곤 했는데 그것이 한국의 문화를 알리는 중요한 일을 하는 것이었다. 또 1962년에는 한국민속예술단의 일원으로 파리를 비롯한 유럽 여러 나라를 순회 공연했고 1964년에는 삼천리가무단의 일원으로 미국 여러 도시를 순회 공연했다. 1972년 봄 뉴욕 카네기홀에서는 판소리 연주도중 청중들이 기립박수를 할 정도로 크게 감동을 주기도 했는데 서울에 돌아 온 다음 나에게 “저들은 한국말을 모르면서도 판소리에 그처럼 감동을 받는데 한국 사람들은 왜 그런 음악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지 모르겠어요.”라고 했었다. 김소희는 명창으로서의 프라이드도 대단했다. 그는 13세에 판소리를 시작한 것으로 잡고 있기 때문에 63세되던 1979년이 국악생활 50주년이 되는 해였다. 한국 최초로 김소희는 국악생활 50주년 기념공연을 세종문화회관 소강당에서 최종민의 사회로 뜻 있게 잘 마쳤다. 그런데 그 후 김소희명창은 큰 무대에 서지 않으려 했다. 내가 왜 그러느냐고 말하면 “나는 명창으로서의 자존심이 있습니다. 내 소리가 나의 마음을 따라 주지 않아 제대로 고음이 나지 않는데 나의 청중들에게 실망스러운 내 모습을 보여줄 수 없습니다. 그래서 무대에 서지 않으려는 것이니 그리 아세요.”하는 것이었다. 참으로 깨끗하고 고고한 김소희명창의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제자 복이 없다고 한탄 한 적이 있다. 제자들 중 오정숙은 김연수에게 가고 성창순은 정응민에게 가고 안향련·김동애·박소영은 고인이 되었다. 신영희·안숙선·박윤초·유수정·이명희·한정하·이영태·오정해·김미숙 등이 판소리의 길을 가고 있을 뿐이다. 국립창극단 출신의 명창을 꼽으라면 박동진을 빼 놓을 수 없다. 박동진은 1975부터 1979까지 제2대 국립창극단단장을 한 명창이다. 박동진도 어린 시절은 판소리를 공부했지만 먹고 살 방도가 없어 지방의 소리선생이나 여성국극단의 반주악사(장구)등을 하면서 살았지만 1962년부터 1972년까지 국립국악원 악사로 있으면서 정력적인 판소리독공을 계속하여 최초로 대중을 상대로 한 흥보가 완창공연을 통해 판소리 중흥에 불을 지핀 인물이다. ‘68년에 흥보가를 5시간에 걸쳐 완창하고 ’69년에는 춘향가를 8시간 동안 완창으로 명동국립극장에서 공연했다. 이 후 박동진은 언론이 주목하는 판소리의 대명사처럼 되었고 계속된 ‘70년 심청가(6시간),’71년의 수궁가(5시간), 적벽가(6시간)완창으로 그는 ‘73년에 판소리의 인간문화재가 되었다. ’70년에는 성서판소리 ‘예수전’과 ‘팔려간 요셉’등을 발표하여 한국기독교음악의 새로운 지평을 열기도 했다. 이 후 ‘성웅 이순신’ 같은 장편의 서사시는 직접 사설을 짓고 작창 하여 녹음하는 등 판소리 역사에 빛나는 업적을 많이 남겼다. 판소리를 들으러 오는 청중이면 어떤 청중들이라도 쉽고 재미있게 판소리를 감상할 수 있도록 현장에 맞는 소리를 척척 만들어 불러주는 창조능력을 가진 명창이었다. 청중을 울리고 웃기는 능력을 충분이 가지고 있었던 명창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무대에서 즉흥적으로 가사를 만들고 내용을 꾸려서 멋지게 전달하는 실력은 누구도 따를 수 없는 최고의 명창이었다. 박동진에 버금가는 여류명창으로는 오정숙(1935~2008)을 꼽을 수 있다. 박동진이 완창으로 명성을 떨치게 되자 오정숙도 판소리 완창에 도전하게 된다. ‘72년에 춘향가, 73년에 흥보가, 74년에 수궁가, 75년에 심청가를 완창했는데 여류명창이 이처럼 여러 바탕의 판소리를 완창으로 발표한 것은 오정숙이 최초이다. 박동진이 본인의 판소리를 발표했다면 오정숙은 그의 스승 김연수의 작품을 발표한 것이 다를 뿐이다. 이 판소리들은 오늘날 김연수의 호를 따서 동초제 판소리라 부르고 지금 전주를 중심으로 오정숙의 제자들이 잘 전수하고 있다. 오정숙은 1977년부터 90년대 말까지 20여년 국립창극단에 있으면서 많은 배역을 멋지게 해 내었지만 특히 춘향가의 월매 역은 따를 사람이 없을 정도로 명연기를 보여주는 명배우였다. 소리와 연기가 모두 완벽에 가까울 정도 야무지게 활동했던 명창·명배우였던 분이 바로 오정숙이라 할 수 있다. 조상현도 국립창극단 출신의 명창으로 빼 놓을 수 없는 사람이다. 1939년생인 그는 1971부터 1982까지 국립창극단에 있었고 늘 주연을 하며 창극의 대중화에 기여했었다. ‘70년대 말에는 MBC. TV에 창극 프로그램을 만들어 계속 출연하면서 시청자들의 인기를 얻기도 했었다. 무엇보다 그는 한국 최고의 명창이다. 정응민에게 배운 판소리 춘향가·심청가·수궁가를 주로 부르고 박녹주에게 배운 흥보가를 부를 수 있긴 하지만 정응민이 흥보가를 부르지 않아서인지 조상현도 흥보가를 자주 부르지는 않는다. 그의 장기는 춘향가·심청가·수궁가라 할 수 있다. 그는 어떤 청중이라도 “야 - ! 판소리가 참으로 멋있구나.” 할 정도로 감동을 줄 수 있는 명창이다. 발성이 완벽에 가깝고 세세상청을 통성으로 낼 수 있는 유일한 명창이다. 배운 판소리의 작품성이 높기 때문에 본인이 손 댈 필요가 없기도 하지만 본인의 생각(미학)이 멋대로 뜯어고치는 것을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배운 그대로 부르는데 완성도가 높은 판소리를 부른다. 그는 광주광역시 국극단을 만들어 오래 단장으로 있었고 사단법인 판소리보존회 회장으로 역시 오래 활동했다. 다른 명창들처럼 판소리를 개인지도형식으로 한 사람씩 가르치는 교수보다는 다수를 모아놓고 그룹지도처럼 가르치는 강의 식 판소리 교습으로 유명한데 그렇게 가르친 제자들이 수 백 명에 이른다. 조상현은 판소리명창으로 최고의 명창이지만 창극의 배우로서도 최고의 배우라 할 수 있다. 춘향전의 이도령역이나 심청가의 심봉사역을 특히 잘 하고 무슨 역이든지 척척해내는 명배우이다. 내가 국립창극단 출신의 명창들을 몇 사람 소개하는 것은 지금의 후학들이 이런 선배들의 여러 가지 특징 중에 무엇이라도 참고하여 각자의 미래를 더 훌륭하게 설계하고 더 열심히 공력을 쌓았으면 하는 소망이 있어 소개하는 것이다. 지면관계로 너무 간략하게 다룬 것을 죄송하게 생각한다. 故 최종민교수 (철학박사, 국립극장예술진흥회 회장, 동국대문화예술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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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극의 스타와 판소리명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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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16일 한국소리문화의전당 - 2022 전주세계소리축제 개막공연 '백년의 서사'
- 1. 공연명 : 2022 전주세계소리축제 개막공연 '백년의 서사' 2. 장소 : 전북 전주시 한국소리문화의전당 모악당 ▶ 지도보기3. 날짜 : 2022년 9월 16일 (금요일)4. 시간 : 오후 7시 30분 5. 티켓료 : R석20,000원 / S석10,000원6. 문의 : 1522-62787. 공연정보 더보기 ▶ 인터넷 예매하기◆ 출연진 : 소리극단도채비,우도콜렉티브,이아람,황민왕,오정수,박현욱,이창현,디지털시나위,천하제일탈공작소 등 ★ 김창환, 송만갑, 이동백, 김창룡, 정정렬 등 근현대 소리꾼들이 판소리 100년, 시공을 초월해 이질과 동질의 서사를 그려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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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16일 한국소리문화의전당 - 2022 전주세계소리축제 개막공연 '백년의 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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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국립창극단 완창판소리 - 3월 12일 '왕기철의 박록주제 흥보가'
- 1. 공연명 : 왕기철의 박록주제 '흥보가' 2. 장소 : 서울 장충동 국립극장 하늘극장 ▶ 지도보기 3. 날짜 : 2022년 3월 12일 (토요일) 4. 시간 : 오후 3시 5. 티켓료 : 전석 20,000원 6. 문의 : 02-2280-4114 7. 공연정보 더보기 ▶ 예매하기 ◆ 출연진 : ▶ 왕기철 프로필 , 고수 김규형·김학용, 해설·사회 유영대 이번에 왕기철 명창이 부를 ‘흥보가’는 송만갑-김정문-박록주-한농선으로 이어 져온 동편제 계열이다. 힘 있게 내지르는 시원한 소리이자 끝맺음이 간결하고 분명한 것이 특징이다. 왕기철 명창이 국립극장에서 ‘흥보가’를 완창하는 것은 2002년 이후 20년 만으로 더욱 기대를 모은다. 탄탄한 공력과 원숙한 경험을 바탕으로 소리 판을 압도할 왕기철 명창의 모습을 만나볼 수 있는 귀한 무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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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국립창극단 완창판소리 - 3월 12일 '왕기철의 박록주제 흥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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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30일 대구문화예술회관 기획공연, '양수진의 판소리 완창 - 만정제 흥보가'
- 1. 공연명 : '양수진의 판소리 완창 - 만정제 흥보가'2. 장소 : 대구 성당동 대구문화예술회관 비슬홀 ▶지도보기3. 날짜 : 2021년 12월 30일 (목요일)4. 시간 : 오후 7시5. 티켓료 : 전석 10,000원 6. 문의 및 전화예매 : 053-606-61357. 공연정보 더보기 ▶ 티켓링크 예매◆ 출연진 : 완창판소리 소리꾼▶ 양수진 프로필 , 고수▶ 임현빈 프로필영남판소리의 맥을 이어가는 차세대 소리꾼 양수진은 타고난 목과 맑으면서도 힘이 있는 성음이 특징이다. 14세의 나이에 故 모정 이명희 명창 문하에서 흥보가와 춘향가를 배우며 입문하여 가왕 송흥록, 당대의 국창 송만갑, 박록주, 만정 김소희, 모정 이명희로 이어지는 동편제의 계보를 이어받았다. ‘만정제 흥보가’는 동편제의 호탕하고 웅장하면서 진중한 소리 특색과 만정선생 특유의 섬세하고 깔끔한 더늠이 덧붙여져 동, 서편 소리의 좋은 점을 두루 섭렵한 것이 특징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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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30일 대구문화예술회관 기획공연, '양수진의 판소리 완창 - 만정제 흥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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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5일 한국문화의집] 담담풍류_김일구 명인
- 많은 시간을 들여 만든 자료이오니 퍼 가실때는 출처와 함께 링크를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공연명 담담풍류 김일구 명인 장소 한국문화의집 날짜 2018.09.05 (수) 시간 오후 8시 티켓료 전석 만원 출연진 김일구 문의전화 02-3011-1720 공연정보 더보기 ▶ http://goo.gl/G85h5m 담담풍류 말씀 담(談) = 말씀 언(言) + 불꽃 염(炎) 놋화로에 뭉근하게 타오르는 불을 끼고 앉아 벗과 함께 나누는 풍류정담(風流情談) 운치 있는 사랑방에 둘러앉아 허물없는 벗들과 정담을 나눠가는 시공(時空)속의 풍류객이 되어 문화계 명사들이 들려주는 이야기와 공연을 감상하는 렉처콘서트이다. 2018년 담담풍류의 두 번째 무대는 판소리, 아쟁, 가야금, 거문고, 창극에 이르기까지 전통예술의 전 분야에 두루 능한 이 시대 최고의 명인 김일구 선생을 초청하여 전통예술과 인생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다. 그의 국악 인생의 발자취를 돌아보며 예술세계와 수련 과정을 들여다보고, 향후 국악 발전을 위한 방안을 모색하는 시간을 마련했다. 또한 김일구 선생이 직접 판소리, 김일구류 아쟁산조, 강태홍류 가야금산조뿐만 아니라 한갑득류 거문고산조까지 연주하며 다재다능한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할 예정이다. 프로그램 김일구류 아쟁산조 강태홍류 가야금산조 한갑득류 거문고산조 판소리 심청가 中 눈 뜨는 대목 김일구 金一球, 1940년 김일구 명창은 8살 때부터 소리길에 들어섰다. 공대일, 김상룡, 장영찬, 정권진, 성우향 명창 문하를 거치면서 소리를 익혔고, 특히 박봉술 선생으로부터 <적벽가>를 사사 받아 송흥록 – 송광록 -송우룡 – 송만갑 - 박봉술로 이어지는 계보의 적자가 되었다. 또한 장월중선 문하에서 아쟁을, 원옥화 문하에서 강태홍류 가야금산조를, 한갑득 문하에서 거문고 산조를 익혀 판소리는 물론 아쟁, 가야금, 거문고 연주까지 다재다능한 예인으로 꼽힌다. 여성국극단 반주자와 여러 곳의 국악원 강사를 거쳐 국립창극단, 국립국악원에서 활동한 그는 성음이 좋아 판소리 사설의 전달이 명료하고 드라마틱한 목소리와 해학적 연기로 판을 장악해가는 능력이 뛰어나 귀 명창들에게 특히 인기가 높다. 또한 그는 스승 장월중선에게 전수받은 가락을 바탕으로 약 25분정도 추가하여 발전된 ‘김일구류 아쟁산조’를 정립하였다. 각 장단마다 청이 변하는 변청가락과 변화무쌍한 음색의 조화가 특징인데, 이를 두고 故 최종민 선생은 “김일구의 아쟁은 말을 하는 것과 같다”고 평한 바 있다. 여든을 앞두고도 청년 못지않은 열정을 지니고 있는 김일구 선생은 100여 회의 판소리 완창 발표회, 1,000여 편의 창극, 전통예술 공연 무대에 올라 활발히 활약하고 있으며, 전문예술법인 온고을소리청 대표로 국악예술인 인재 양성에 힘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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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5일 한국문화의집] 담담풍류_김일구 명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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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문고의 명인 故신쾌동선생 서거 40주기 추모공연 '금헌의 소리' 6월 20일 국립국악원
- 많은 시간을 들여 만든 자료이오니 퍼 가실때는 출처와 함께 링크를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공연명 거문고의 명인 故신쾌동선생 서거 40주기 추모공연 '금헌의 소리' 장소 국립국악원 우면당 날짜 2017년 6월 20일 시간 19시 30분 티켓료 전석 무료초대 출연진 김영재, 박천경, 김선호 문의전화 02-564-0269 공연정보 더보기 1. 신쾌동류 향제 줄풍류 중 뒷풍류(천년만세, 양청도드리, 우조도두리, 풍류굿거리) 양금 : 이다경, 박소연, 장은경, 양은지 /장단 : 박천경 영산회상 또는 줄 풍류로 알려진 현악 영산회상은 조선 후기 선비들의 풍류방에서 발전되어 오늘에 전해지는 값진 음악 유산중의 하나이다. 신쾌동류 향제 줄풍류는 금헌 신쾌동선생이 유년시절 정밀동과 김용근 선생에게서 익혔던 가락으로 총 15개의 악곡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악곡들은 크게 본풍류, 잔풍류, 뒷풍류등 세 개의 악곡으로 구분된다 2. 신쾌동류 거문고 병창 ‘적벽가 中 새타령’ 거문고: 김영재/ 장단 :김선호 신쾌동선생이 1930년대 이동백. 송만갑. 정정렬 명창들에게 받은 소리를 거문고에 얹어 거문고병창을 창안하시고 수많은 공연을 하셨다 그 이후 김영재 선생에 의해 전승되고 있는 실정이다. 3. 철가야금과 살풀이 철가야금 : 김영재 / 살풀이 : 진유림 / 장단 : 김선호 4. 거문고 창작곡 ‘성묫길’ - 거문고 : 김주란, 정민조, 장은희, 김재경 / 장단 : 박천경 신쾌동 서거 40주년 기념 공연을 위해 김영재 명인이 재편곡한 곡으로 스승의 성묫길에서 얻은 악상을 오선보에 그린 것이다. 봄바람이 비교적 쌀쌀하게 느껴지는때 자유롭게 바람 부는 대로 흔들대는 春草들의 모습이 마치 움직이는 사람들과도 같았다. 말없이 누워있는 고인들의 무덤속에서 저마다의 그리움을 안고 누군가를 기다리는 듯한 느낌이 들어 이 곡을 쓰게 되었다. 계면조로 되었으며 느린 중모리장단과 술대로 트릴 기법을 사용하여 기존의 술대법을 바꿔보려 했다. 또한 산조연주법을 생각하여 2. 5.8ㅅ괘를 주로 쓴다. 전체적으로 슬픔이 깔려있어 좀 어두운 면이 있으나 기존 봄에서 느끼는 상식적임을 일부러 피해보고자 한 것이 특징이라 하겠다. 오늘 연주는 신쾌동류 거문고 산조 보존회원들과 함께 한다. 5. 판소리 추모곡 ‘거문고 소리’ - 판소리 : 정회석 / 고수 : 김선호 국가무형문화재 제5호 판소리(춘향가)이수자인 정회석 명창이 ‘거문고’를 주제로 작창하여 무대에 선보인다. 6. 신쾌동류 거문고 산조 - 신쾌동류거문고산조보존회 회원 일동 / 장단 : 김선호 신쾌동류 거문고 산조의 특징은 대체로 평, 우조가 많으며 힘이 있고 선이 굵은 가락들로 짜여있다. 그리고 계면조 역시 담담하면서도 우직한 느낌의 평계면과 우계면조가 많다. 따라서 아주 슬픈 진계면조는 상대적으로 적은 편이라 할 수 있다. 연주기법에 있어서는 특히 농현이 어렵고 깊이가 있어 호쾌한 맛이 난다. 오른손의 술대 사용도 대점, 중점, 소점 등이 명확하게 구분되어 있기 때문에 연주 모습에 있어서도 품격을 유지해야 하고, 그래야 가락을 연결하는 데도 무리가 없다. 신쾌동류 거문고 산조는 다양한 기교가 조화된 결정체라 할 수 있다. 가락의 붙임새, 선이 굵은 농현, 품격 있는 술대법, 고루 갖춘 조성 그리고 산조 전체 구성에 있어 탄탄한 짜임새들은 신쾌동류 만이 갖는 특징을 잘 나타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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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문고의 명인 故신쾌동선생 서거 40주기 추모공연 '금헌의 소리' 6월 20일 국립국악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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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창 송순섭과 함께하는 판소리 ‘적벽가’ - 5월 22일(일) 국립부산국악원 예지당
- 많은 시간을 들여 만든 자료이오니, 퍼 가실때는 출처와 함께 링크를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1. 공연명 : 명창 송순섭과 함께하는 판소리 '적벽가’ 2. 장소 : 부산 연지동 국립부산국악원 예지당 ▶ 지도보기3. 날짜 : 2016년 5월 22일 (일요일)4. 시간 : 오후 3시 5. 티켓료 : 전석 10,000원◆ 출연진 : ▶박근영 프로필, 이하나, 정향자 <판소리 다섯 바탕전>의 두번째 공연은 ‘적벽가’는 ‘삼국지연의’을 바탕으로 조조와 공명, 유비 등 영웅호걸들의 무용담과 병사들의 애환을 담고 있는 판소리이다. 다섯 바탕 중 가장 호방하고 남성적인 고음이 많고 풍부한 성량을 필요로 하는 곡으로 송순섭 명창의 동편제 특유의 힘있는 소리를 남성적인 장쾌함과 툭툭 던지는 시원한 발성으로 표현, 완숙의 경지에 든 무대를 선사할 것으로 기대된다. 송순섭 명창은 중요무형문화재 제5호 판소리‘적벽가’ 예능보유자로 송만갑ㆍ박봉술 선생으로 이어진 정통 동편제 '적벽가'의 맥을 잇고 있다. 한자어가 가득한 사설을 정확하게 해석하기 위해 수십년간 학자들과 함께 토론하고 연구하면서 가장 잘 정리된 창본(唱本)을 제작해온 ‘적벽가’의 권위자다. 송순섭 명창과 박근영(대전시 무형문화재 제17호 판소리고법 이수자)고수의 무대에 앞서 전반부에 제자 이하나(중요무형문화재 제5호 판소리 적벽가 이수자) 소리꾼과 정향자(중요무형문화재 제5호 판소리 적벽가 이수자) 고수의 무대를 함께 구성하여 스승과 제자, 그리고 맛깔나는 고수들의 추임새가 있는 화합의 무대를 보여준다. 송순섭 명창과 제자 이하나가 함께하는 ‘강인한 통성의 소리 <적벽가>’ 무대는 4시간 분량의 판소리 ‘적벽가’를 약 2시간 가량의 유명한 눈대목으로 구성하였다. 첫 무대는 적벽대전을 앞두고 군사들을 격려하기 위해 조조가 잔치를 베푸는 장면에서 전쟁터에 끌려나온 이름없는 군사들이 자신들의 설움을 토로하는 ‘군사설움’대목으로 송순섭 명창의 제자이자 부산의 소리꾼 ‘이하나’의 소리를 들려준다. 후반부는‘ 송순섭 명창’의 시원한 소리로 삼국지연의 중 조조가 중국의 패권을 손에쥐기 위해 승승장구 하던 중, 십만대군을 이끌고 손권과 유비의 연합군과 싸우는 극적인 전쟁장면을 묘사한 ‘적벽대전’을 극적으로 풀어나갈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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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창 송순섭과 함께하는 판소리 ‘적벽가’ - 5월 22일(일) 국립부산국악원 예지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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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정 판소리 독창회 '미산제 흥보가' 4월 14일 (목) 서울 부암아트홀
- 많은 시간을 들여 만든 자료이오니 퍼 가실때는 출처와 함께 링크를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1. 공연명 : 이현정 판소리 독창회 '미산제 흥보가' 2. 장소 : 서울 종로구 부암아트홀 ▶ 지도보기3. 날짜 : 2016년 4월 14일 (목요일)4. 시간 : 오후 7시 30분 5. 티켓료 : 20,000원6. 문의 : 02-391-96317. 인터파크 예매하기 ▶ http://me2.do/53kqPetC◆ 출연진 : ▶ 이현정 프로필 , 고수 ▶ 최광수 프로필 흥보가는 판소리 다섯 마당 중 재담소리와 민속적 특징이 적절히 있어, 일반인들에게 호응도와 친밀감이 가장 많은 소리이다. 가난하지만 마음씨 착한 아우 흥보는 제비다리를 고쳐주어 복을 받고, 마음씨 고약한 형 놀보는 부자가 되기 위해 제비다리를 고의로 부러트려 벌을 받는다는, 전형적인 권선징악의 교훈을 담고 있는 사설이다. 동편제인 〈미산제 흥보가〉는 송흥록, 송광록, 송우룡, 송만갑을 통해 전승된 소리이다. 송만갑의 〈흥보가〉는 김정문에 의해 전승되었고, 김정문에게 이어진 소리는 박록주, 박초월, 강도근 등에게 전승되었다. 오늘 발표할 이현정의 소리는 박초월(1917~1983) → 김수연(1947~) → 이현정에게 전승된 〈미산제 흥보가〉이다. 흔히 동편제라 하면 기교를 부리기보다는 통성으로 힘 있게 내지르는 것이 특징이나, 박초월이 남긴 〈미산제 흥보가〉는 애원성이 전반에 흐르고 있어, 동편제의 소리 바탕위에 서편제 소리의 특징도 엿보인다 하겠다. 따라서 이번 공연에서는 정교한 붙임새에 동편제의 우람함과 서편제의 아련함이 융합된 〈미산제 흥보가〉의 진수를 감상하게 될 것이다. 연창대목은 〈미산제 흥보가〉 처음부터 제비노정기까지이다. 사회 김수미 (부암아트 국악예술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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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정 판소리 독창회 '미산제 흥보가' 4월 14일 (목) 서울 부암아트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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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선유' 경상도 동편제 판소리 복원 및 재현 공연, 10월 12일 하동군 평사리 최참판댁
- 1. 공연명 : '이선유' 경상도 동편제 판소리 복원 및 재현2. 장소 : 경남 하동군 악양면 평사리 최참판댁 ▶지도 보기3. 날짜 : 2014년 10월 3일 (금요일)4. 시간 : 오후 2시 5. 티켓료 : 무료 초대6. 문의 : 010-2761-7887 7. 공연정보 더보기 ▶ http://me2.do/GgoFF2OA◆ 출연진 : 최난경(연출) , 김문희, 이선희, 박민정, 노민아, 문수현 (소리) 손정진(북 하동공연), 박명언(북 서울공연) ◆ 이선유 명창과 경상도 동편제 판소리지조 있는 소리꾼, 이선유이선유(1873-1949)는 경남 하동 출신의 동편제 명창으로 국창의 반열까지 오른 훌륭한 명창이다. 하지만 일제 강점기 때 동편제의 향유층이 양반사대부에서 일반 대중으로 바뀌게 되면서 이선유의 소리는 기로에 서게 된다. 이러한 격변하는 시대적 흐름 속에서도 이선유는 끝까지 동편제 소리의 지조를 지킨다. 그 결과 이선유는 대중들로부터 철저히 외면당하게 되었고, 진주권번 소리선생을 하면서 제자 양성에 애썼지만 정작 자기 소리를 잇는 제자를 두지 못하게 된다. 하지만 이선유는 인생 말년에 가서 소리의 가치를 인정받아 무려 1시간 20분 분량의 음반을 내고, 판소리 명창으로는 최초로 자신이 부른 판소리 다섯 마당이 온전히 담겨있는 '오가전집' 이라는 창본을 남기게 된다. 이선유의 말년에 비로소 탄생한 음반과 창본은 옛 동편제 소리의 유일한 맥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경상도 동편제 판소리동편제는 교통이 불편하던 시절, 섬진강 동쪽 지방에서 송흥록의 법제를 중심으로 전승되던 소리제로 기교는 적게 쓰고 웅장하고 힘찬 소리를 내는 것이 그 특징이다. 흔히 동편제라고 하면 전라도 동쪽 지방을 떠올리게 된다. 하지만 경상도 서남쪽 지방도 과거에는 동편제 지역이었다. 이선유가 태어난 하동은 이선유,유성준과 같이 걸출한 동편제 명창을 두 명이나 배출한 동편제 고장이요, 이선유가 활동하다 세상을 떠난 진주도 역시 동편제의 창시자인 송흥록을 비롯한 기라성과 같은 동편제 명창들이 활동하던 고장이다. 일제 강점기에는 이선유, 유성준, 송만갑 등의 동편제 명창 밑에서 신숙, 오비취, 김수악 등의 여류 명창이 배출되기도 하였다. 진주 사람들은 1970년대까지만 해도 아침이면 진주 남강 변이나 비봉산 자락에서 소리꾼(기녀)들이 목 푸는 소리를 들었노라고 회상하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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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선유' 경상도 동편제 판소리 복원 및 재현 공연, 10월 12일 하동군 평사리 최참판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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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선유' 경상도 동편제 판소리 복원 및 재현 공연, 10월 3일 국립국악원 풍류사랑방
- 1. 공연명 : '이선유' 경상도 동편제 판소리 복원 및 재현2. 장소 : 서울 서초동 국립국악원 풍류사랑방 ▶지도 보기3. 날짜 : 2014년 10월 3일 (금요일)4. 시간 : 오후 5시 5. 티켓료 : 무료초대6. 문의 : 010-2761-7887 7. 공연정보 더보기 ▶ http://me2.do/GgoFF2OA◆ 출연진 : 최난경(연출) , 김문희, 이선희, 박민정, 노민아, 문수현 (소리) 손정진(북 하동공연), 박명언(북 서울공연) ◆ 이선유 명창과 경상도 동편제 판소리지조 있는 소리꾼, 이선유이선유(1873-1949)는 경남 하동 출신의 동편제 명창으로 국창의 반열까지 오른 훌륭한 명창이다. 하지만 일제 강점기 때 동편제의 향유층이 양반사대부에서 일반 대중으로 바뀌게 되면서 이선유의 소리는 기로에 서게 된다. 이러한 격변하는 시대적 흐름 속에서도 이선유는 끝까지 동편제 소리의 지조를 지킨다. 그 결과 이선유는 대중들로부터 철저히 외면당하게 되었고, 진주권번 소리선생을 하면서 제자 양성에 애썼지만 정작 자기 소리를 잇는 제자를 두지 못하게 된다. 하지만 이선유는 인생 말년에 가서 소리의 가치를 인정받아 무려 1시간 20분 분량의 음반을 내고, 판소리 명창으로는 최초로 자신이 부른 판소리 다섯 마당이 온전히 담겨있는 '오가전집' 이라는 창본을 남기게 된다. 이선유의 말년에 비로소 탄생한 음반과 창본은 옛 동편제 소리의 유일한 맥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경상도 동편제 판소리동편제는 교통이 불편하던 시절, 섬진강 동쪽 지방에서 송흥록의 법제를 중심으로 전승되던 소리제로 기교는 적게 쓰고 웅장하고 힘찬 소리를 내는 것이 그 특징이다. 흔히 동편제라고 하면 전라도 동쪽 지방을 떠올리게 된다. 하지만 경상도 서남쪽 지방도 과거에는 동편제 지역이었다. 이선유가 태어난 하동은 이선유,유성준과 같이 걸출한 동편제 명창을 두 명이나 배출한 동편제 고장이요, 이선유가 활동하다 세상을 떠난 진주도 역시 동편제의 창시자인 송흥록을 비롯한 기라성과 같은 동편제 명창들이 활동하던 고장이다. 일제 강점기에는 이선유, 유성준, 송만갑 등의 동편제 명창 밑에서 신숙, 오비취, 김수악 등의 여류 명창이 배출되기도 하였다. 진주 사람들은 1970년대까지만 해도 아침이면 진주 남강 변이나 비봉산 자락에서 소리꾼(기녀)들이 목 푸는 소리를 들었노라고 회상하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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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선유' 경상도 동편제 판소리 복원 및 재현 공연, 10월 3일 국립국악원 풍류사랑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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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20일 한국문화의집 KOUS에서 '동편제 심청가 40년만에 복원 및 재현 발표회'
- ▶ 전인삼 프로필 ▶채수정 프로필판소리 인간문화재 박록주 명창이 마지막 간직했던 동편제 심청가를 40여년만에 복원하는 발표회가 개최된다. (재)전통공연예술진흥재단이 주최하고 채수정 예술단이 주관하는 동편제 박록주 바디 심청가 복원 및 재현발표회가 2013년 11월20일 오후 5시 한국문화의 집 KOUS에서 전인삼, 채수정 출연으로 열린다. ▶ 공연장 지도보기박록주 명창의 심청가는 송흥록-송만갑-김정문-박록주로 이어져온 대표적인 동편제 판소리로 판소리 음악문화의 격변기인 20세기를 거치면서도 시대적 흐름에 크게 영향받지 않고 송흥록으로부터 이어지는 옛 동편제의 사설과 선율적 특징을 잘 보존하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가치가 크다. 이번에 복원하는 심청가 음원은 국악음반박물관이 제공한 것으로 박록주 명창이 1976년 72세에 녹음한 것인데 전승이 끊어져 가던 동편제 심청가를 당대 최고의 원로 명창이 기록으로 남겨 오늘날 부활의 불씨를 전해준 대단히 귀중한 자료임에 틀림없다. 자세한 사항은 채수정판소리연구소(02-572-2835)나 송미경(010-3782-9048)씨에게 문의하면 된다. 공연 기사 더보기 ☞ http://me2.do/FPDxqy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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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20일 한국문화의집 KOUS에서 '동편제 심청가 40년만에 복원 및 재현 발표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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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도 민요 '육자배기' - 송기덕 명창 (1913년 녹음)
- 국악음반박물관 소장 유성기음반 판소리 국창 송만갑 아들 송기덕 명창, 장고: 박춘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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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도 민요 '육자배기' - 송기덕 명창 (1913년 녹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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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소리 춘향가 中 농부가 - 故 송만갑 명창
- ▶ 故 송만갑 (宋萬甲) 명창 판소리 춘향가 '농부가' 송만갑 명창의 첫 녹음이자 그의 장기였던 곡이고 판소리 역사상 최초의 음반(1907~1908년 녹음)으로 지금까지 단 한 장만 발견된 국보급 유성기음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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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소리 춘향가 中 농부가 - 故 송만갑 명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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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쾌동류 거문고산조 - 변성금 (2013 KBS국악대상 연주현악상 수상)
- ▶변성금 프로필 1967년 중요무형문화재 제16호 거문고산조의 보유자로 지정되었던 故신쾌동(申快童 1910-1978)은 전북 고창 출신으로 1929년 백낙준의 문하에서 4년 간 거문고산조를 수학하였다고 하며, 송만갑과 정정렬 명창에게서 배운 판소리를 거문고에 옮겨 거문고병창이라는 새로운 분야를 개척하기도 하였다. 흔히 백낙준을 거문고산조와 창시자로 꼽는데 비해 신쾌동은 거문고산조를 부흥시킨 명인으로 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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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쾌동류 거문고산조 - 변성금 (2013 KBS국악대상 연주현악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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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소리 흥보가 중 박타령 - 송만갑 명창
- ▶ 故 송만갑 (宋萬甲) 명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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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소리 흥보가 중 박타령 - 송만갑 명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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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가 '진국명산' - 송만갑 명창 (1934년 녹음)
- 동편제 판소리 명창 송만갑(宋萬甲, 1865~1939년) 단가 '진국명산'(고수:한성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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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가 '진국명산' - 송만갑 명창 (1934년 녹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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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가빈 (박애란) 프로필 - 판소리
- ☆ 박가빈 (박애란) 프로필 사진 전공ㅣ분야 판소리 수련과정ㅣ학력 최난수, 유미리, 윤진철, 염경애 선생 사사남원국악예술고등학교 졸업이화여자대학교 음악학사 이화여자대학교 음악석사 이화여자대학교 음악박사 활동 경력 서울창의예술교육센터 예술강사 역임국립전통예술중학교 강사2021년 조상현바디 강산제 심청가 완창 수상 경력 2018 제19회 공주 박동진판소리명창·명고대회 판소리 일반부 장원 (문화체육부장관상)2020 제24회 송만갑판소리·고수대회 명창부 최우수상2022 제26회 송만갑판소리·고수대회 명창부 대상 (대통령상) 홈페이지ㅣSNS 동영상 보기 https://youtu.be/-v9X1MuEz30 [인터뷰, 심청가 中 심봉사 눈뜨는장면]https://youtu.be/N8LMDFMZ49A [강솔잎 작곡. 벚꽃 흩날리는 늦은 봄날 - 소리 박가빈, 25현가야금 김바니]https://bit.ly/3KkLWwH [박가빈 유튜브채널] 기타 ◆ 본 국악인 프로필은 국악인 측에서 직접 제공한 자료 또는 공개된 정보를 토대로 정리한 내용이며, 공개된 정보를 수집, 정리한 것은 잘못된 정보를 포함할 수 있습니다.내용 수정 및 사진 교체, 혹은 삭제를 원하시는 경우에 연락 주시면 즉시 반영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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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가빈 (박애란) 프로필 - 판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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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현 - 판소리, 고수
- ☆ 이주현 프로필 사진 전공ㅣ분야 판소리고법, 고수, 판소리 수련과정ㅣ학력 권혁대, 오광오, 장보영 선생 사사 (판소리고법) 천희심 명창 춘향가, 故 남해성 명창 수궁가, 김화자 명창 흥보가, 허은선 명창 적벽가&심청가 사사남원국악예술고등학교 졸업전주 우석대학교 예술대학 국악과 졸업 활동 경력 현재 목포 장보영국악연구소 회원연리지예술단 회원 수상 경력 2014 서편제 보성소리축제 고수경연대회 일반부 대상포항천하명인국악제전 판소리 명창부 최우수상2021 제25회 송만갑 판소리고수경연대회 명고부 1위 (문화체육관광부장관상) 홈페이지ㅣSNS 동영상 보기 https://youtu.be/gdRNCjla62Q [소리 김찬미, 고수 이주현] 기타 ◆본 국악인 프로필은 국악인 측에서 직접 제공한 자료 또는 공개된 정보를 토대로 정리한 내용이며, 공개된 정보를 수집, 정리한 것은 잘못된 정보를 포함할 수 있습니다.내용 수정 및 사진 교체, 혹은 삭제를 원하시는 경우에 연락 주시면 즉시 반영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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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세미 - 판소리
- ☆ 박세미 프로필 사진 전공ㅣ분야 판소리 수련과정ㅣ학력 주운숙 선생 사사경북 고령고등학교 졸업부산대학교 한국음악학과 졸업 및 동대학원 석사과정대구시무형문화재 제8호 심청가 이수자 활동 경력 고령문화원 판소리반 강사 수상 경력 2016 제20회 송만갑 판소리고수대회 일반부 대상2017 제5회 전국밀양아리랑경창대회 일반부 대상2020 제47회 대한민국 춘향국악대전 판소리 일반부 대상 (문화체육관광부장관상)2021 제12회 장수논개전국판소리경연대회 명창부 최우수상 홈페이지ㅣSNS https://www.instagram.com/sorissem_20 [인스타그램] 동영상 보기 https://youtu.be/2gBPWWCvciI [심청가 中 심황후 부친 기다리는 대목]https://han.gl/EvXuM [국악인 박세미 유튜브채널] 기타 ◆ 본 국악인 프로필은 공개된 내용을 수집, 정리한 것으로 잘못된 정보를 포함할 수 있습니다. 내용 수정 및 사진 교체, 혹은 삭제를 원하시는 경우에 연락 주시면 즉시 반영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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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귀영 - 판소리
- ☆ 백귀영 프로필 사진 전공ㅣ분야 판소리 수련과정ㅣ학력 최승희, 김경호 선생 사사남원국악예술고등학교 졸업전남대학교 예술대학 국악학과 졸업부산대학교 일반대학원 졸업전북무형문화재 제2-5호 판소리 춘향가 이수자 활동 경력 현재 진도군립민속예술단 창악부 상임단원 수상 경력 2011 제12회 국창 권삼득선생 추모 전국국악대제전 권삼득상 (문화체육부장관상) 홈페이지ㅣSNS https://han.gl/XxMWK [페이스북] 동영상 보기 https://youtu.be/satPPRV7eJU [송만갑 바디 박봉술제 적벽가 (고수 박준호)] 기타 ◆ 본 국악인 프로필은 공개된 내용을 수집, 정리한 것으로 잘못된 정보를 포함할 수 있습니다. 내용 수정 및 사진 교체, 혹은 삭제를 원하시는 경우에 연락 주시면 즉시 반영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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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귀영 - 판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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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창선 (류창선) - 판소리
- ☆ 유창선 (류창선) 프로필 사진 전공ㅣ분야 판소리 수련과정ㅣ학력 남원국악예술고등학교 졸업한양대학교 국악과 졸업한양대학교 대학원 국악학과 재학국가무형문화재 제5호 판소리 흥보가 전수자 활동 경력 유창선 동편제 흥보가 완창발표회 (11살)정동극장 뮤지컬 '적벽' 노숙역사)정가악회 판소리대학전 (한양대 대표)신진국악실험무대 - 류창선의 그냥노래2009~2011 광주MBC얼씨구학당 고정패널2015 문화체육관광부 예술장학생2021 국립민속국악원 소리판 '류창선의 동편제 강도근바디 흥보가 완창발표회' 수상 경력 남원전국학생판소리경연대회 초등부 대상 어린이판소리왕중왕전 대상완산전국국악대제전 판소리 중등부 대상송만갑판소리.고수대회 고수 학생부 대상남해성전국판소리경연대회 중등부 대상진남전국국악경연대회 판소리 중.고등부 대상금파강도근전국판소리경연대회 중등부 대상팔마고수대회 학생부 대상 (교육부장관상)금파강도근판소리경연대회 고등부 대상송만갑판소리.고수대회 판소리 고등부 대상전국국악경연대회 판소리 고등부 대상남도민요경창대회 고등부 대상국창박초월전국판소리경연대회 고등부 대상남해성전국판소리경연대회 고등부 대상춘향국악대전 판소리 학생부 대상 (교육부장관상)동아국악콩쿠르 판소리 학생부 은상동아국악콩쿨 판소리 학생부 금상온나라국악경연대회 성악부분 금상 (문화체육관광부장관상) 홈페이지ㅣSNS 동영상 보기 https://han.gl/flmZN [앞날창창류창선 유튜브채널]https://youtu.be/excWTxTU1dI [판소리 수궁가 中 일개한퇴] 기타 2008년 광주월계초등학교 4학년때 판소리 ‘흥보가’를 3시간여에 걸쳐 완창하여 국악신동으로 많은 화제를 모았었다. ◆ 본 국악인 프로필은 공개된 내용을 수집, 정리한 것으로 잘못된 정보를 포함할 수 있습니다. 내용 수정 및 사진 교체, 혹은 삭제를 원하시는 경우에 연락 주시면 즉시 반영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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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창선 (류창선) - 판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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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진 - 판소리
- ☆ 김유진 프로필 사진 전공ㅣ분야 판소리 수련과정ㅣ학력 조통달 선생 사사목원대 한국음악학부 졸업 (판소리 전공)중앙대학교 일반대학원 석사 수료국가무형문화재 제5호 판소리 춘향가 이수자 활동 경력 현재 광양시립국악단 단원 수상 경력 2008 제16회 임방울전국국악경연대회 판소리 일반부 우수상2018 제48회 개천예술제전국국악경영대회 판소리 일반부 대상 (국회의장상)2021 제25회 송만갑판소리고수대회 명창부 우수상 홈페이지ㅣSNS 동영상 보기 기타 ◆ 본 국악인 프로필은 공개된 내용을 수집, 정리한 것으로 잘못된 정보를 포함할 수 있습니다. 내용 수정 및 사진 교체, 혹은 삭제를 원하시는 경우에 연락 주시면 즉시 반영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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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가을 - 판소리, 퓨전국악
- ☆ 김가을 프로필 사진 전공ㅣ분야 판소리, 퓨전국악 수련과정ㅣ학력 한정하, 박춘맹, 전정민, 안숙선 선생 사사전남 보성중학교 및 보성고등학교 졸업중앙대학교 전통예술학부 졸업 활동 경력 2021 국악대학전 ‘내일의 예인’ 독주회 (서울돈화문국악당)소리꽃가객단 멤버퓨전국악그룹 '퀸' 보컬 국악뮤지컬집단 타루 멤버 수상 경력 2013 제17회 송만갑 판소리 고수대회 학생부 대상2014 제17회 서편제 보성소리축제 전국판소리 고법 경연대회 학생부 교육부장관상2015 진도문화예술제 제18회 남도민요 전국경창대회 학생부 대상2017 제20회 서편제 보성소리축제 전국판소리경연대회 대학 및 일반부 우수상2018 제19회 박동진 판소리 명창 명고대회 최우수상 홈페이지ㅣSNS https://han.gl/0Mj7l [퓨전국악그룹 퀸 블로그] https://taroo.com [타루 홈페이지] 동영상 보기 https://youtu.be/wSzZfDDTPrQ [국악을 세계에 알리는 소리꾼 '김가을'] https://youtu.be/SFEb8We2RGo [사랑가] https://youtu.be/NcSbdBDRhxc [소리꽃가객단 (김우정,홍서영,양혜원,신예주,김가을) - 사철가]https://youtu.be/DLjMIYN8K4c [조선판스타 - '살다가(SG워너비)+따라간다(심청가)'] 기타 2021 한국문화의집 공연 <청춘가(靑春歌)>의 최종우승팀인 '소리꽃가객단'은 2021년 싱글 '소리꽃 가객단' 으로 정식 데뷔한 여성 5인조 국악그룹이다. (멤버 - 김가을, 홍서영, 양혜원, 신예주, 이나경) ◆ 본 국악인 프로필은 공개된 내용을 수집, 정리한 것으로 잘못된 정보를 포함할 수 있습니다. 내용 수정 및 사진 교체, 혹은 삭제를 원하시는 경우에 연락 주시면 즉시 반영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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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정미 - 판소리
- ☆ 정정미 (정수목) 프로필 사진 전공ㅣ분야 판소리 수련과정ㅣ학력 경북예술고등학교 졸업영남대학교 음악대학 국악과 (판소리) 학사 및 석사 활동 경력 대구광역시 무형문화재 제8호 판소리 전수조교 (사)영남판소리보존회 이사장 (사)한국국악협회 대구광역시지회 국극분과위원장 수상 경력 제1회 군항전국국악경연대회 문화관광부장관상진해전국국악대전 표창장 수상 (지도자부문)대한민국 모범인 대상 '문화예술부문 대상'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장상)2021 제25회 송만갑 판소리.고수대회 판소리 부문 명창부 대상 (대통령상) 홈페이지ㅣSNS http://pansoriyn.com [영남판소리보존회 홈페이지] 동영상 보기 기타 어머니가 대구시무형문화재 제8호 판소리 故이명희 예능보유자이며,딸 박은채도 소리를 하고 있다. ◆ 본 국악인 프로필은 공개된 내용을 수집, 정리한 것으로 잘못된 정보를 포함할 수 있습니다. 내용 수정 및 사진 교체, 혹은 삭제를 원하시는 경우에 연락 주시면 즉시 반영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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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정미 - 판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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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옥진 프로필 - 판소리
- ☆ 배옥진 프로필 사진 전공ㅣ분야 판소리 수련과정ㅣ학력 김명신, 조소녀, 송재영 선생 사사 전북대학교 한국음악학과 졸업 활동 경력 현재 전라북도립국악원 창극단 단원 수상 경력 1999 장흥전통가무악전국제전 장관상 2000 제1회 국창권삼득전국국악대제전 장관상 2000 제5회 완산국악대제전 판소리부문 국무총리상 2018 제22회 송만갑판소리고수대회 명창부 대통령상 홈페이지ㅣSNS 동영상 보기 https://youtu.be/ADK-RXZ0tKk [흥부가 - 송만갑 판소리·고수 대회 축하공연] 기타 ◆ 본 국악인 프로필은 공개된 내용을 수집, 정리한 것으로 잘못된 정보를 포함할 수 있습니다. 내용 수정 및 사진 교체, 혹은 삭제를 원하시는 경우에 연락 주시면 즉시 반영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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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지 - 판소리
- ☆ 김수지 프로필 사진 전공ㅣ분야 판소리 수련과정ㅣ학력 조소녀, 성우향, 송순섭, 전정민 선생 사사 전주예술고등학교 졸업 중앙대학교 국악과 연희예술학부 졸업 국가무형문화재 제5호 판소리 춘향가 이수자 활동 경력 전) 사)한국판소리보존회 과장현) 한국예술진흥원 대표현) 사)한국민속전통진흥회 상임이사 수상 경력 제10회 광주임방울전국국악제 판소리 초등부 대상제15회 KBS어린이판소리왕중왕전 대상(KBS전주방송사장상)제5회 국창권삼득 선생 추모 국악대제전 중등부 대상제9회 국창 송만갑선생 추모 전국판소리경연대회 중등부 최우수상제10회 남도민요전국경창대회 고등부 최우수상 제19회 금파강도근전국판소리경연대회 일반부 최우수상 제17회 서편제보성소리축제 전국판소리경연대회 일반부 최우수상 제7회 판소리명가 장월중선명창대회 일반부 종합대상 국회의장상제15회 전국 숲쟁이국악경연대회 일반부 판소리 부문 장원 홈페이지ㅣSNS https://www.instagram.com/suu___jii [인스타그램] 동영상 보기 https://han.gl/rlgAY [판소리하는수지tv - 유튜브채널] 기타 청와대안전행정부주최 제 4346주년 개천절 경축식행사 생방송 -피날레2013년~2017년 제 43,44,45,46, 47회 판소리유파대제전 - 연출가 2013년~2017년 다수 대회 총괄 감독 ◆ 본 국악인 프로필은 공개된 내용을 수집, 정리한 것으로 잘못된 정보를 포함할 수 있습니다. 내용 수정 및 사진 교체, 혹은 삭제를 원하시는 경우에 연락 주시면 즉시 반영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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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소리 김정민 홈페이지
- 영화 '휘모리' 주인공, 제19회 송만갑 판소리·고수대회 대통령상 수상 http://www.kimjungm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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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소리 김정민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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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례동편제소리축제 및 송만갑판소리·고수대회 소개 안내 http://guryesori.gurye.go.kr/ea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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