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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화재청, 국가무형문화재 제5호 판소리 흥보가 보유자에 정순임·이난초 인정
    예능 분야 8개 종목 전수교육조교 11명, 명예보유자 인정 문화재청(청장 정재숙)은 국가무형문화재 제5호 판소리(흥보가) 보유자로 정순임씨(78)와 이난초씨(59)를 인정했다고 6월 26일 밝혔다. 또한 김영자씨(69), 정회석씨(57)를 판소리(심청가) 보유자로 인정 예고하고, 국가무형문화재 제1호 종묘제례악 등 예능 분야 8개 종목의 전수교육조교 11명을 명예보유자로 인정했다고 덧붙였다. 문화재청에 따르면 정순임씨와 이난초씨는 판소리(흥보가)의 전승능력과 전승환경, 전수활동 기여도가 탁월한 점을 인정받아 30일의 인정 예고기간과 무형문화재위원회 심의를 거쳐 보유자로 인정됐다. 정순임씨는 고(故) 장월중선 명창(1925~1998) 딸로, 고(故) 박송희 전 보유자(1927~2017)에게 흥보가를 이수했다. 이후 2007년 경상북도 무형문화재 판소리(흥보가) 보유자로 인정돼 지역 내 판소리 전승활동에 힘써 왔다. 이난초씨는 고(故) 강도근 전 보유자(1918~1996)로부터 흥보가를 이수했으며, 전북 남원을 기반으로 동편제 소리를 계승해 많은 제자를 양성해 왔다. ▶ 해당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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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6-29
  • 국악명가 출신, 국가무형문화재 제45호 ‘대금산조’ 보유자 김동표씨 별세
    국악 명인 가문 출신으로 국가무형문화재 제45호 ‘대금산조’ 보급에 일생을 바친 김동표 보유자가 6월 10일 노환으로 타계했다. 79세. “소리가 듣는 이의 오장육부를 쑤실 정도로 곰삭아야 한다.” 생전 언론 인터뷰에서 고인이 추구하는 대금 소리를 표현한 게 이랬다. 여기엔 우리 국악이 제대로 대접받지 못하던 시절 유랑극단 악사로 일하면서 소리를 다듬어 마침내 무형문화재 보유자로 인정받기까지의 한과 자부심이 배어있다. 고인은 1941년 전남 화순에서 태어났다. 전북 전주로 옮겨 전주북중을 다니다 중퇴하고 16살에 대금을 시작했는데 이를 이끌어준 게 맏형 김동준(1928~1990)이다. 나중에 중요무형문화재 5호 판소리 고법(鼓法)의 보유자가 된 김동준은 전주 국악원을 중심으로 활동하면서 터울이 꽤 나는 동생 둘을 대금에 입문시켰다. 셋째 김동진(1937~1989)과 넷째 김동표다. ▶ 해당기사 자세히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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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6-12
  • 전북도립국악원 '모보경' 교수, 전라북도 무형문화재 제2호 판소리 춘향가 예능보유자로 지정
    전북도립국악원 교육학예실의 모보경 교수가 전북무형문화재 제2호 판소리 춘향가 예능보유자로 인정받았다. ▶ 모보경 프로필 이로써 전라북도립국악원에 근무하는 무형문화재 보유자는 전북 무형문화재 제44호 한량무 예능보유자인 김무철 학예연구사에 이어 현직 두 명의 예능보유자가 배출됐다. 모교수는 모친인 최승희(전북지정 도무형문화재 제2호 판소리 춘향가)명창의 영향을 받아 어렸을 때부터 소리를 많이 듣고 자란 환경 속에서 자연스럽게 소리에 입문했다. 최명창 역시 전라북도립국악원에서 판소리 교수(1989~1998)로 재직하다가 은퇴했다. 이로써 자연스럽게 모보경 교수는 어머니가 지정받았던 정정렬제 춘향가를 계승하여 어머니가 걸었던 길을 다시금 걷고 있는 셈이다. ▶ 해당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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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6-11
  • 자전 에세이집 ‘타인의 인력’ 펴낸 좌충우돌 국악계 불도저 '최영진' - 예술가는 ‘관종’이 돼야죠
    자전 에세이집 ‘타인의 인력’ 펴낸 국악인 최영진 씨 정악-민속악-창작음악 두루 섭렵… 유튜브 통해 ‘국악 알리기’도 열심“첫 장구 인간문화재 되는게 목표” “‘스승이 살아계신데 어찌 감히 먼저 책을 내느냐’ 하시는 분들도 있죠. 발칙하다고요? 혁신적이라고 해주시죠.” 국악인 최영진 씨(41)가 첫 에세이집 ‘타인의 인력’(토일렛프레스)을 냈다. 층층시하의 국악계에서 일종의 자서전을, 그것도 40대 초반에 낸 셈이다. 최 씨는 “스승이 음반을 안 냈으면 제자도 음반을, 책을 안 썼으면 제자도 책을 안 내는 게 불문율인 국악계이지만 내 이야기를 꼭 전하고 싶었다”고 했다. ▶최영진 프로필 최 씨는 국악계에서 마당발 코뿔소 불도저로 통한다. 월드뮤직그룹 ‘이스터녹스’ 음악감독, 한배아트컬쳐스 예술감독이자 무형문화재 ‘봉산탈출’ ‘김제농악’ 이수자. “예술가는 관종(‘관심 종자’를 뜻하는 인터넷 속어)이 돼야 한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한 우물만 파라’는 금언을 최 씨는 귓등으로 듣는다. 정악 민속악 창작음악의 세 축을 정신없이 오간다. 어려서부터 나대는 성격이었다. 중학교 체육대회 때 응원단장을 하며 줄다리기 선수들에게 휘모리장단을 알려줬다. ‘덩’과 ‘쿵’의 박자에 힘을 집중하도록 훈련시켜 3년 연속 우승을 이끌었다. 입영 신체검사를 받으러 가려고 탄 시외버스에서는 다짜고짜 마이크를 잡고 초면의 승객들에게 여흥을 부추겼다. 무려 두 시간 반 동안. “자, 안녕하세요. 여러분! ‘남행열차’ 한 곡 뽑겠습니다. 자, 사탕들도 드시고. 다음 순서는….” 전남 여수공고를 거쳐 서울예대 국악과를 나왔다. 초등학생 시절, 집에 있던 장구를 직감적으로 쳐본 게 시작이었다. 책에는 그가 이후 김규형 김청만 박현숙 성애순 양연섭 양승희 조순애 하주화 등 명인을 찾아가 부딪치며 배운 이야기가 빼곡하다. 군악대 시절 대통령 앞에서 대취타를 연주하다 한 실수 같은 좌충우돌 경험담을 진솔하게 담았다. ▶ 해당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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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5-04
  • 경기도무형문화재 경기고깔소고춤 제56호 예능보유자 정인삼 '원형 간직한 한국농악의 지존'
    김인호 선생→이동안→정인보 전통계보 한국민속촌 농악단장 초대 용인과 인연 “전통무용으로 입문해 농악으로 일가를 이뤘다고들 하네요.” 경기도무형문화재 경기고깔소고춤 제56호 예능보유자인 정인삼(79)씨는 남들의 말을 인용해 자신을 설명했다. 현재 우리춤보존회장, 한국농악보존협회 이사장, 전주대사습놀이보존회 부이사장 등을 지내고 있는 그에 대한 별칭은 한국농악의 지존, 한국농악대통령 등 최고의 찬사로 빛난다. 그동안 한국국악협회 부이사장, 한국무용협회 이사 등을 역임한 원로다. 한국 전통문화예술의 중추적 인물인 그를 한국민속촌 연습실에서 만났다. 그는 코로나19로 4월 대구 공연은 취소됐고, 6월 부산 공연이 계획돼 있다며 코로나로 말문을 열었다. 당연히 경기고깔소고춤 공연이다. 지방 공연에 나설 때마다 객석이 뒤집어질 정도로 열광하는 공연이다. 소고춤은 경기도에만 있다. 김량할아버지로 불렸던 전설같은 존재 김인호 선생으로부터 이동안, 정인보로 계보가 이어지면서 한국 전통춤의 본류와 용인무형문화예술의 원형을 간직하고 있다. 처인구 김량장동을 본거지로 활동한 예인 김인호 선생은 구한말에서 일제 강점기에 화성재인청 최고책임자인 대방(大房) 직을 맡았던 당대 최고의 명인이다. 한성순보에 춤을 잘 춘다는 기사가 실리기도 했다. 화성재인청은 구한말 경기권 내 예인 관할 기관으로 악기 연구와 춤 등을 가르친 예술교육기관이다. 김인호 선생은 이동안 선생에게 30여 가지 전통춤과 장단을 전수한 스승이며 화성재인청 대방의 직을 이은 이동안 선생은 제자 정인삼 선생에게 직접 경기도 전통무용 신칼대신무와 진쇠춤, 소고춤을 가르쳤다. 정인삼은 정인삼류의 소고춤을 완성했다. 호흡과 오금의 조화가 생명인 소고춤은 동적이고 얼굴을 활짝 웃는게 특징이다. 10대 때 정형인으로부터 승무와 살풀이를 사사받은 그는 20대 때 박금슬로부터 한국무용의 기본을 배웠다. 농악은 25세 때부터 시작했다. 이명식으로부터 장고를, 박남석에게 꽹과리를, 백남윤에게 소고를 각각 사사받았다. 그런데 그해 열린 제 5회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에 농악으로 출전해 장려상을 수상했다. 그후 농악은 정인삼의 삶이 됐다. “평생 동안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의 연출을 30회 이상 맡았고 대통령상을 제일 많이 받았어요. 30여회의 대회에 나가 서너번 빼고는 모두 입상했어요. 수상한 출전작들은 무형문화재가 돼 지금도 보존되고 있습니다. 저는 어떻하든 입상을 해라. 그래서 어떻하든 문화재를 지정하라. 그래야 맥이 끊기지 않는다. 그렇지 않으면 박물관에 진열된 유물과 다를바 없다. 생활속에서 숨쉬어야 살아있는 문화가 된다고 강조하고 있지요.” 우리 민족의 원형을 담고 있는 농악계승은 그만큼 절박하다는 이야기다. 물론 경연대회의 종목은 농악, 놀이, 민요, 극, 무용 등 여러 장르가 있다. 정인삼씨는 놀이, 민요, 농악의 연출을 맡아왔다. 연출을 하기 위해 고증작업이 필요하다보니 그에게는 농악 자료가 우리나라에서 제일 많다. 사라진 농악을 복원한 것도 많다. 정인삼씨는 지난 1974년 한국민속촌이 처음 문을 열 때 한국민속촌 농악단장으로 초대돼 용인과 인연을 맺었다. 그후 한국민속촌에서 국내외 관광객들에게 최고 기량과 신명을 선보여왔다. 용인에 온후로 민속촌이 위치한 보라리를 떠난 적이 없다. 당연히 농악을 떠난적이 없다. 벌써 46년째다. “처음에 올 때부터 이곳 민속촌에 묻힐 각오로 왔어요. 민속촌 안에다 산소를 쓰겠다고 생각했죠. 농악을 위해 일생을 바치겠다는 각오였습니다. 70~80년대 얘긴데 당시 우리민족에게 가장 무서운 게 남북대치였어요. 그런데 그보다 더 무서운게 전통문화가 사라지는 것이었죠. 내 한몸 기꺼이 전통문화에 바쳐야겠다는 각오였죠.” 6.25 이후 먹고 살기 바빠 전통을 계승해야 할 청소년들이 죄다 공단에 취직했고, 서양문물이 급격히 들어오면서 전통문화가 점차 사라져갔다. 그는 고등학생들에게 농악을 가르쳐 농악의 맥을 이었다. 오늘날 농악계의 유명인은 대부분 그가 길러낸 사람들이라고 보면 된다. ▶ 해당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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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4-22
  • 스포츠닥터스 자문위원 '전해옥', 가야금병창의 다양한 장르를 다채로운 연주형태로 감상하는 ‘회향’ 정규음반 발표
    지난해 경연대회 대통령상 차지한 ‘명창’ 스포츠닥터스에 음반수익금 일부 기부 “희망의 노래 되길” 국가무형문화재 제23호 가야금산조 및 병창 이수자인 `가야금병창 연주가` 전해옥이 정규음반을 발표했다. ▶ 전해옥 프로필 이번 음반은 오디오가이 `울림` 프로젝트 국악부문 선정작으로 오디오가이레코드사에서 레코딩 및 마스터링 지원을 통해 제작해 CD로 발매됐다. 지난달 13일부터 교보핫트렉스 강남점, 광화문점, 대전점을 비롯한 각종 음반판매사에 유통·공급되고 있다. 3월 넷째 주 예스24 주간 베스트셀러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해당 앨범은 지난달 30일부터 국내 디지털 음원사이트에 공개됐으며, 향후 한국의 전통음악을 사랑하는 전 세계 팬들을 위해 4월 해외 디지털 음원으로도 선보일 예정이다. 전해옥은 지난해 제29회 김해전국가야금경연대회에서 영예의 대통령상을 수상해 명창대열에 오른 중견 국악인이다. 제35회 남원춘향국악대전 대상 수상과 더불어 제40회 전주대사습놀이전국대회 가야금병창부문 장원을 수상하는 등 실력을 인정받았다. 현재 (사)가야금병창보존회 이사 및 대전지회장과 (사)대한민국전통예술전승원 그리고 국악세계화연구소에서 이사를 맡아 전통예술의 전승 및 보급에 일조하고 있다. 이뿐 아니라 다문화대안학교 R-School과 대전광역정신건강복지센터에서 홍보대사로 활동하고 있으며 2010년 창단한 가야금병창그룹 소리디딤에서 리더를 맡아 국내외 공연 및 방송 등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전해옥은 “이번 음반은 사랑하는 가족과 가르침을 주신 스승님들을 비롯해 응원해 주신 많은 분들에게 보답하고자 ‘회향’을 타이틀로 기획했다”며 “타이틀곡은 흥보가 중 ‘제비점고~제비노정기’ 대목이다. 최근 코로나19로 국내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모두가 어려운 시점에서 흥보제비가 물고 온 ‘보은표 박씨’처럼 이번 음반이 많은 이들에게 큰 복을 가져다주는 희망의 씨앗이 되길 바란다”고 전했다. 앨범은 가야금병창의 다양한 장르를 다채로운 연주형태로 감상할 수 있다. 수록곡은 단가 ‘백발가’와 판소리 흥보가 중 ‘구만리~제비노정기’, 적벽가 중 ‘화용도’와 같이 전통 가야금병창곡과 기존 판소리에 가야금을 얹어 새롭게 병창으로 만든 ‘군사설움타령’, ‘액맥이타령’ 등 아직 가야금병창 음반으로 미발매된 곡들로 구성됐다. 또 전해옥의 스승인 국가무형문화재 제23호 가야금산조 및 병창 예능보유자 강정숙 명인이 불교경전 ‘마하반야바라밀다심경’을 재해석한 ‘반야심경’을 사제가 함께 최초로 레코딩 작업해 더 주목받는다. 한편 전해옥은 홍보대사로 있는 다문화대안학교 R-School과 국제 NGO 단체인 스포츠닥터스에 음반수익금 일부를 기부할 예정이다. 앞서 전해옥은 스포츠닥터스가 대한병원협회·대한개원의협의회와 함께 코로나19와 사투를 벌이는 ‘전 세계 의료진과 시민들을 응원합니다!’ 릴레이 응원 캠페인에도 동참했다. ▶ 해당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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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4-06
  • '난감하네' 원곡자 국악인 조엘라, 보이스퀸 '인생역전'
    30년 국악인, 음악 경연프로그램 '보이스퀸' 통해 스타덤 국악인 조엘라(37)는 CF에 삽입돼 큰 사랑을 받은 '난감하네'의 원곡자다. MBN '보이스퀸'에서 이 곡을 직접 부른 뒤 주목을 받았고, 준우승을 하면서 일약 대중문화계 셀럽이 됐다. '보이스퀸'에 출연하기 전까지 얼굴도 이름도 낯설었지만 지금은 누구나 다 알아보는 유명인이다. ▶ 조엘라 프로필 그는 여전히 자부심 많은 국악인으로, 준우승의 영광보다 '난감하네'의 원곡 가수로 대중의 관심을 받게 된 게 더 기쁘다. 조엘라는 "방송에서 이 노래를 한번만 부를 수 있다면 떨어져도 괜찮다고 생각했다"면서 "원곡자가 누구인지를 확실히 알리게 된 것만으로 너무 행복했다"고 말했다. 조엘라는 "오디션 프로그램에 출연한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국악을 널리 알리고 싶었기 때문"이라며 "국악이 누구라도 쉽게 접할 수 있는 장르가 됐으면 좋겠다"는 소망을 밝혔다. 그러면서 자신을 가수가 아닌 '소리꾼' '국악인'으로 불러달라고 주문했다. 조엘라는 결혼식 당일인 지난해 10월6일 드레스 차림으로 '보이스퀸' 첫 녹화에 달려와 화제가 됐다. 그는 "결혼날이 하필 오디션 첫 녹화날과 겹쳤다"고 했다. 그는 또 "4개월전인 6월에 결혼일정을 잡았고, '보이스퀸' 출전 지원서는 9월에 썼다"면서 "제 인생 터닝포인트가 될 중요한 두 가지 이벤트가 똑같은 날짜로 겹치게 될 줄은 정말 몰랐다"고 말했다. 조엘라는 평범한 국악인으로 살면서 꾹꾹 눌러온 끼를 오디션프로그램에서 맘껏 발산했다. 이후 자신을 바라보는 대중적 시선이 크게 달라졌음을 실감한다. 방송 오디션 프로그램을 통해 인생 역전을 일군 국악인 조엘라를 직접 만났다. 스페셜인터뷰는 지난 3일 서울 광화문 그의 소속사 아츠엔터테인먼트 사무실에서 2시간 동안 진행됐다. -방송 오디션프로그램을 통해 일약 유명 스타로 떠올랐다. '보이스퀸' 준우승 이후 스스로 느끼는 일상의 변화가 궁금하다. 국악을 좋아해주는 분들이 너무 많아진 느낌이에요. '국악인이 이런 노래도 이렇게 맛깔스럽게 부를 수 있구나' 하고 관심을 가져주는 것만으로 행복해요. 애초 입상할 거란 생각은 꿈에도 안 했으니 준우승만으로도 엄청난 성과이고 성공이에요. 단지 국악인으로서 국악과 판소리를 알리고 홍보할 수 있다면 된다는 생각이었고, 방송에 나오기 전까지 저를 아는 사람들이 없었으니까요. '보이스퀸' 출연 전까지 저 스스로 국악은 늘 주류가 아닌 비주류란 인식을 갖고 살았어요. 그게 바뀐 거죠. 조엘라는 '보이스퀸' 입상 이후 소속사가 두 곳이 됐다. 원 소속사인 아츠엔터테인먼트(김보성 대표) 외에 방송과 공연 등을 매니지먼트할 새로운 기획사 로이엔터테인먼트와 1년6개월간 한시 계약했기 때문이다. 음악경연프로그램에 도전할 당시만해도 전혀 예상치 못했던 신분 바뀜이다. 또 그동안은 판소리나 국악의 특정 장르에 국한돼 살아왔다면 이제는 팬심을 몰고다니는 대중 엔터테이너로 주목을 받는다는 사실도 크게 달라진 부분 중 하나다. 그는 "이런 변화는 8살 때 소리를 시작한 이후 처음"이라고 말했다. -순수 국악인으로 살다가 대중 음악프로그램 오디션에 참여한다는 게 쉽지는 않았을 것으로 짐작이 간다. 용기를 낸 계기가 따로 있는지 궁금하다. 처음 도전을 결심했을 때만해도 솔직히 설렘보다는 두려움이 앞섰어요. 어려서부터 판소리와 국악을 공부한 지 30년이 됐지만 대중 음악과 맞대결한다는 건 낯설게 느껴졌으니까요. 물론 경연이 모두 끝나고 준우승을 한 지금은 저도 생각이 많이 바뀌었죠. 오히려 자신감을 갖게 됐어요. 무엇보다 오늘 인터뷰에도 함께 동행해준 남편한테 공을 돌리고 싶어요. 남편이야말로 제가 용기를 내고 도전할 수 있는 토양이고 밑거름이었어요. 당시엔 결혼 직전이었지만 누구보다 저를 잘 알기 때문에 강력히 푸시를 해줬고, 한번 부딪쳐 도전해볼 만하다는 자신감을 갖게 된거죠. 조엘라의 '보이스퀸' 도전은 지난해 9월 결혼을 한 달 앞둔 남편 원성준 씨가 대신 지원서를 내면서 시작됐다. 두 사람은 뮤지컬에 함께 출연하면서 인연을 맺어 지난해 10월 결혼했다. 국립국악원이 국악적 요소를 가미한 뮤지컬 형식으로 진행한 가족음악극 '마당을 나온 암탉'이다. 조엘라는 "저는 원래 소리꾼 협업 정도만 하는 걸로 알고 참여했다"면서 "그런데 여러 오리떼 중 한명으로 역할을 맡아 연기까지 하게 되면서 남편(원성준, 남자주인공인 천둥오리)과 가까워지는 계기가 됐다"고 밝혔다. ▶ 해당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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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4-06
  • 양금석 "마치 드라마·소설 1편 압축한 듯 국악의 매력은 기가 막힌 가사죠"
    경기민요 이수자·배우 양금석 최근엔 서도민요 배우는 중 목청으로만 부르는 것 아냐 이면을 볼때 진짜소리 나와 ▶ 양금석 프로필 “제가 국악을 좋아하는 이유 중의 하나는 가사가 기가 막힌 작품이 많다는 거예요. 요즘 시대에 들어도 어색하지 않게 인생을 되돌아보게 하지요. 가사의 매력이 철철 넘쳐요.” 그는 경기민요 ‘노랫가락’이 100수가 넘는 시조를 가사로 삼고 있는 점을 들었다. 또 ‘창부타령’ ‘청춘가’ 등의 가사는 삶의 철학을 담고 있다고 했다. 중견 배우이자 국악인으로 활동해 온 양금석. 경기민요 이수자인 그가 요즘 서도소리에 빠져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인터뷰를 청했다. 그는 단국대 대학원 국악학과에서 박사 과정을 밟으며 서도민요를 배우고 있다고 했다. “제 국악 공부가 어느 정도인지를 알고 싶어서 대학원에 입학했어요. 서도소리 명창 유지숙 교수님 지도를 받고 있어요. 나이 들어 학교 공부를 하려니까 돌아서면 잊어버리지만(웃음),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양금석은 연극계에서 두각을 나타낸 후 드라마에서 30여 년을 꾸준히 활동해 온 연기자다. 오는 5월부터 지상파에서 방영할 드라마에 출연하기 위해 현재 연습 중이기도 하다. 그가 1990년대 말에 민요를 배운 것은 어렸을 때부터 우리 전통 가락을 좋아했던 까닭이었다. 연기 활동이 바쁜 탓에 소리 공부를 쉬었으나, 2005년 경기민요 대가인 이춘희 명창을 사사하면서 본격적으로 입문했다. “왜 어려운 공부를 시작했느냐고 물어보는 이가 많은데, 저도 모르게 국악 쪽으로 끌린 것이에요. 그냥 좋았으니까요.” 그는 2008년 국악 대가들 앞에서 시험을 보는 과정을 거쳐서 경기민요 이수자가 됐다. 이후로 이런저런 공연에 참여했는데, 그는 경기 12잡가(雜歌) 중에 6개를 공연했던 것을 특별히 기억했다. 경기 잡가는 세련된 가사와 미려한 창법이 특징이다. 서서 노래하는 입창(立唱)과 달리 앉아서 부르는 좌창(坐唱)이 일반적이다. “2012년쯤 서도소리를 배우기 시작했어요. 김광숙 문화재(서도소리 중요무형문화재)에게 개인적으로 배운 것인데, 저에게 잘 맞았어요.” 서도소리는 황해도, 평안도 등 서도(西道) 지역에서 전승된 민요나 잡가, 시창(詩唱) 등을 말한다. 수심가, 몽금포타령, 배뱅이굿 등이 잘 알려져 있다. “경기민요가 감정을 밖으로 표출하는 소리로 대체로 맑고 경쾌하며 흥겹다면, 서도소리는 감춰진 슬픔이 어쩔 수 없이 조금씩 나오는 듯한 느낌을 주지요. 서도 지역에 전쟁, 재난이 많아서 먹고 살기 힘들었던 탓에 소리에 한(恨)이 맺혔다고 하더군요.” 어렸을 때부터 슬픈 노래를 좋아했던 그는 한의 정서가 진하게 배어 있는 서도소리에 애정이 깊다고 했다. 그가 국악 공연을 한 영상을 유튜브에서 찾아보니, 경기민요를 할 때는 즐거움이 가득해 보이고, 서도소리를 하는 무대에선 깊고 그윽한 표정을 짓는 게 인상적이었다. 그는 “소리도 연기의 일부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우리 소리는 드라마, 소설 1편을 압축시켜 놓은 작품들입니다. 단순히 목청으로 부르는 것이 아니라 그 이면을 중시할 때 진짜 소리가 나온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혹시 나중에 후배들을 가르치게 된다면, 우리 노래가 품고 있는 이야기를 어떻게 표현해야 하는지에 중점을 두고 싶어요.” ▶ 해당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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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3-24
  • 전남도립국악단 제7대 예술감독에 류형선 작곡가 위촉
    전남도는 3월 6일 국악분야 국내 최정상급 실력자인 류형선(55) 작곡가를 전남도립국악단 제7대 예술감독으로 위촉했다고 밝혔다. ▶ 류형선 프로필 류형선 신임 예술감독은 앞으로 2년 동안 전남도립국악단의 지휘·교육 및 공연기획을 이끌어 가게 된다. 전남도에 따름녀 음악적 역량과 악단 운영능력을 두루 갖췼다는 평가를 받은 신임 류 감독은 한양대 작곡과 음악학사 및 한국예술종합학교 음악과 창작전공 예술전문사 학위를 취득했다. 이후 서울대 음대,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후학을 양성해오다 지난 2014년부터 2년간 국악분야 예술기관의 최고봉이라 할 수 있는 국립국악원에서 창작악단 감독을 역임하기도 했다. 또 지난 2011년부터 2년간 국악방송 ‘꿈꾸는 아리랑’을 진행한 바 있으며, 현재 서울 정동극장 이사와 숨 엔터테이먼트 예술감독으로 재직 중이다. 대표곡으로 ‘모두야 꽃이야’, ‘나무가 있는 언덕’, ‘비에 젖은 해금강’과 다큐멘터리 영화 ‘북간도의 십자가’ OST 등이 있으며, 이러한 실력을 인정받아 KBS국악대상과 기독문화대상을 수상한바 있다. ▶ 해당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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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3-09
  • “대한민국 제1의 창극단으로 성장시키겠다” 조영자 전북도립국악원 창극단장 포부
    “우리 창극단을 대한민국 제1의 창극단으로 성장시키겠습니다. 이를 위해서는 관계기관들의 다각도의 관심과 협력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창극단장으로서 안팎으로 열심히 뛰고, 소통할 생각입니다.” ▶ 조영자 프로필 전북도립국악원의 각 실단 중에서 창극단을 이끌 적임자를 찾는 일은 쉽지 않다. 그도 그럴 것이 창극단 27명의 단원 중에서 대통령상 수상자가 11명이나 되는 등 대한민국에서 내로라하는 소리꾼들이 모여있는 최고의 단체로 평가받고 있기 때문이다. 올해 초 임용돼 국악원과 창극단을 두루 살피고, 이제 막 호흡을 가다듬은 조영자(63) 창극단장을 만나 앞으로의 운영방안을 들었다. 3월 2일 조 단장은 “중책을 맡게 됐다는 생각보다 단원들과의 첫 만남에서부터 이 귀한 보배이며 좋은 인재들과 함께라면 멋진 작품을 올릴 수 있겠구나하는 생각이 들어 가슴이 뛰었다”면서 “진심은 진심으로 통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창극단을 사랑으로 이끌고 나가겠다”고 말했다. 조 단장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는 ‘소통’이다. 그는 서로가 서로를 위하고, 앞에서 당당하게 의견을 개진하고, 작품에 들어갔을 때는 집중해서 마음과 뜻을 모아 한 방향으로 달려가는 일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주역은 단역들이 뒷받침 해주는 점에 대해서 감사한 마음을 갖고, 단역은 주역이 빛날 수 있도록 각자의 위치에서 고군분투해야 완벽한 하모니를 이룰 수 있는 법이다. 조 단장은 “단원 한 사람 한 사람을 빛날 수 있게 만드는 무대에 대한 고민이 크다”면서 “관객과 같이 어우러질 수 있는 좋은 작품을 만드는 일이 가장 최우선의 과제다”고 말했다. 올해의 경우 지난해 세운 공연계획에 따르지만, 여력이 있다면 올 하반기와 내년에 조 단장의 색깔을 담아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킬 작품을 보여줄 생각이다. 구체적으로 어떠한 작품인지는 아직 노코멘트다. 단, 전통은 절대적으로 전통으로 그 맛을 살리고, 창작은 창작으로 그 맛을 살리고자 한다. 어중간하게 중간에 서 있는 일은 조 단장의 체질에 맞지 않다. 그는 “제목에서부터 대중을 확 끌어당길 수 있는 공연을 올릴 생각을 하고 있다”고 말해 궁금증을 더했다. 조 단장은 또 “국악의 저변확대를 위해서 유아극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면서 “전래동화와 다양한 캐릭터들을 활용한 기획작품을 제작해 선보인다면, 방학기간을 활용해 학부모들이나 도민들이 서울로 향하는 수고로움을 덜 수도 있을 것이고 되레 우리 고장으로 사람을 끌어들일 수 있을 것이다”고 기대했다. 여기에 단원들의 기량 향상을 위한 연수프로그램으로 연기와 기획·연출 수업을 진행할 생각이다. 창극단의 소리 수준은 더할 나위 없지만, 연기 역량은 늘 아쉬웠던 부분이다. 또한 정년 후에 단원들이 자신들의 기량을 사장시키지 않고, 국내외의 크고 작은 무대에서 적극적으로 활동하는 일이 공립예술단 출신이 지녀야 할 사회적 책무라고 생각한단다. 이를 위해서는 기획과 연출에 대한 공부도 소홀히해서는 안될 것이라는 이야기다. 조 단장은 “단발성 연수 프로그램으로 그 효과가 어느 정도 가능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알고 하는 것과 모르고 하는 것은 다르다고 생각한다”면서 “단원들이 이 같은 부분에도 관심을 갖고, 공부하기 시작한다면 창극단의 발전은 물론이고 지역문화예술계에도 긍정적인 효과를 낼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 해당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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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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